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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소녀의 연극배우 도전기

강은혜 2007년 입국, 함경북도 새별군 출신
입력 2015.11.07 10:03 수정 2015.11.09 09:25

<기고>9살때 본 유역비처럼 날 수 있다는 꿈 이루게 돼

연극 서평택시의 한 장면. 가운데가 강은혜 씨.ⓒ남북동행

통일부 인가 비영리민간단체인 남북동행(전 북한인권탈북청년연합)이 올해로 네 번째 남북청년들이 함께 참여하는 연극을 기획·진행했다. 2012년 ‘정명-어항을 나온 다섯 물고기'를 시작으로 2013년 ‘이중사연’, 2014년 ‘오작교’ 그리고 2015년 ‘서평택시’까지 탈북 청년들은 남한의 청년들과 함께 어우러져 연극 무대를 꾸몄다. 특히 올해 연극 ‘서평택시’에는 탈북자 남매가 배우로 출연해 연기를 펼쳤다. 2006년 입국한 함경북도 새별군 출신의 김필주 씨(30)와 2007년 입국한 같은 지역 출신의 강은혜 씨(22)가 그 주인공. 데일리안은 외사촌 지간이자 이번 연극에 배우로서 공동참여한 두 사람의 연극 후기를 두 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주>

중학교 때 우연히 사촌오빠(김필주 씨)의 첫 연극인 '정명'을 보았다. 그때만 해도 '배우'는 TV에서 연기하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다. 항상 웃음꽃이 피어있는 오빠의 모습만 보다가, 무대 위 전혀 다른 격동적인 ‘박동지’의 모습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9살 때였다. ‘신조협려’라는 중국 드라마에서 흰 옷을 입고 날아다니는 여주인공 유역비를 보면서, 나도 날수 있다는 소박한 꿈과 함께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덧 철이 들어 어린 시절 봤던 비현실을 버리고 현실에 맞춰 살았다. 그러다 입시가 끝나고 남은 시간동안 알차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오빠에게 부탁해 ‘남북동행’에서 만든 4번째 연극에 참여하게 됐다.

연극을 하게 된 계기는 우선 대중 앞에 서면 얼음이 되어버리는 소심한 성격을 고치고 싶어서다. 두 번째로 우울한 회색빛 일상에 색깔을 넣어보고 싶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로 살아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마지막으로 배우라는 직업을 직접 체험하면서 나에게 이 직업이 적합한지 알고 싶었다.

모 극단의 연출가를 처음 만나 미팅을 가졌고, 그 극단의 배우 분들과 처음으로 리딩 시간을 가졌다. 눈앞에서 처음 보는 연기자들의 모습은 신기함 그 자체였다. 국어책을 읽듯이 대본을 읽던 나는 그 자리에 끼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연기를 배울 수 있다는 설렘을 안고 기다렸다.

하지만 결국 그 극단과의 합작이 무산됐고 다시 배우 캐스팅을 하게 됐다. 배역 분량도 갑자기 증가해 많이 당황스러웠다. ‘박명선’이라는 캐릭터는 밝은 아이인데, 도저히 밝은 성격이 나오지 않았다.

나도 분명 가지고 있을 성격인데도 말이다. 대본을 읽는 것도 부끄러워 내 차례가 오면 빨리 대사를 끝내고 싶은 마음에 감정 없이 그냥 읽어 내려갔다. 정작 속마음은 잘 하고 싶었는데…

그런 나에게 오빠는 본인이 걸어왔던 길이라고 조언을 많이 해주었다. 다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달랐다. 이해는 되는데 정작 나를 ‘박명선’으로 캐릭터화 하라는 말을 실감하기는 어려웠다.

시간은 흐르고 되는 건 없고 심지어 중심 배역도 어려운데 사이드 배역을 2개나 해야 해서 부담감이 컸다. 동선이 들어가니 모두 예민해 지기 시작했고, 디렉팅은 사람마다 달라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진심으로 후회를 했고, 연습 중간 중간마다 포기하고 싶었다. 괜히 연기의 ‘연’자도 모르는 아이가 들어와 분위기만 망치지 않나 싶기도 했다.

연극 일주일을 앞두고 이대영 교수님께서 직접 지도를 하셨고, 막막하기만 했던 캐릭터에 생동감이 들어갔다. 어색했던 동선도 교수님 말씀을 따라하니 편해졌고, 비로소 ‘연극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40년 동안 연기를 하신 이일섭 선생님을 중심으로 모두 함께 ‘으쌰 으쌰’해 잘 한 것 같다.

첫 무대는 많이 떨렸고,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해 아쉬웠다. 두 번째 날은 더 잘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졌지만 오히려 첫날보다 더 못했다. 교수님 제자 분들이 많이 오셨는데 너무 죄송스러웠다. 셋째 날은 남자친구와 이별을 하면서 무대 위에서 부끄러움을 다 놨더니 오히려 나은 연기가 나왔고, 넷째 날은 또 우울한 상태였다.

마지막 날은 그나마 편하게 했는데 만족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폭풍처럼 순식간에 5일이라는 공연을 마쳤다.

대중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확실히 지우게 됐다. 처음 보는 관객들 앞에서 라이브로 노래까지 했는데 뭐가 더 두려울까. 캐릭터 분석은 못했고, 그냥 나 자신으로 무대에 올랐다. 내 모습을 재미있게 봐줘 기분이 좋은 것도 있었지만, 아쉬움도 있었다.

배우라고 하면 현실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돼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했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 어떤 배역이더라도 그 안에 단편적인 나 자신의 모습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배우라는 직업은 알면 알수록 매력적이었다.

새로운 언니 오빠 선생님들을 만나게 돼 즐거운 시간이었고, 해보고 싶었던 연기를 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공연이 끝난 아쉬움 보다는 후련함이 더 큰 지금, 전문 배우가 아닌 첫 연기 도전자고 아마추어였지만 배우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하고 무대에 오른 것에 대해 미안함도 있다. 그렇지만 정말 좋은 기회였고, 좋은 경험이었다.

글/강은혜(2007년 입국, 함경북도 새별군 출신)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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