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후 첫 48시간 최후통첩, 김정은 세마리 토끼 노렸다
입력 2015.08.21 17:39
수정 2015.08.21 17:47
①도발 정당성 확보 ②남남갈등 증폭 ③기싸움 기선제압
전문가 "시간제한은 심리적 압박 당당하게 대응해야"
북한이 오는 22일 토요일 오후 5시까지 우리 측의 확성기 방송 중단과 시설 철거를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낸 가운데, 이 같은 조치를 취하게 된 전략적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북한은 20일 두 차례의 포격 도발 직후인 오후 5시경 서해 군 통신선을 통해 보낸 총참모부 명의의 전통문에서 "오늘 오후 5시부터 48시간 내에 대북 심리전 방송을 중지하고 모든 수단을 전면 철거하라"며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군사적 행동을 개시하겠다"고 위협했다. 우리 군이 특정 시점까지 이 같은 요구에 따라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물리적 공격을 가할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그동안 주로 기습적인 도발을 감행해왔던 북한이 이처럼 기한을 명시해 강한 압박에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현재 국방·안보·통일 전문가와 군 출신의 탈북자들은 이와 관련해 여러 가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북한이 48시간이라는 마감을 제시하게 된 것은 다음의 세 가지 의도로 요약된다.
①군사작전에 대한 정당성 확보·사태의 원인과 책임 회피 의도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번 조치가 대내외적으로 군사행동의 정당성을 확보하면서 혹시 모를 충돌 사태의 원인과 책임을 남측에 돌리기 위한 의도라고 분석했다. 추가적인 도발이 불가피한 경우 '48시간이라는 기한을 제시했음에도 남측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시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휘락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교수는 21일 '데일리안'과 통화에서 "북한이 48시간이라는 기한을 둔 이유는 48시간 이후에 취할 자신들의 군사작전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법"이라며 "우리 측에 '48시간이라는 시간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니 너희는 군사작전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려는 의도"라고 견해를 밝혔다.
박 교수는 특히 48시간 최후통첩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일종의 '룰'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 48시간 내 핵사찰 완전수용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낸 사례를 언급하며 "요즘은 군사작전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기습적으로 공격하지만, 과거에는 항상 이런 식의 최후통첩이 있었고 당연히 그렇게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 소장도 북한이 48시간을 제시한 데 대해 "복합적인 목적이 있겠지만, 모든 책임을 우리에게 떠넘기려는 의도도 있다"고 말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의 계기가 된 비무장지대(DMZ) 지뢰 매설 도발은 물론 포격 도발도 부인하면서 이번 사태의 원인과 책임을 우리 측의 대북 확성기 방송에 돌리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실제 북한은 DMZ 목함지뢰 도발 사건뿐 아니라 심지어 두 차례의 포격 도발 사실도 부인하고 있다. 그러면서 20일 오후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겸 노동당 비서 명의의 서한을 보내 우리의 대북 확성기 방송을 '선전포고'라고 주장했다.
지뢰 매설이나 포격 도발은 부인하면서 우리 측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가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셈이다. 이는 철거 요구가 관철되지 않았을 경우, 자신들이 취할 군사작전은 정당하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라는 점을 뒷받침한다.
②남남갈등 유발·증폭
북측이 최후통첩을 제시한 것은 이른바 '남남갈등'을 유발하기 위함이라는 견해도 있다. 48시간 이후에 벌어질 만일의 사태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켜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대북 심리전 중단 요구 여론이 일도록 만들 의도라는 설명이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본보에 "48시간은 남남갈등을 일으키고 증폭시키는 시간으로 볼 수 있다"며 "'북한이 포를 쏜 것을 보니 정말 확전될 것 같은데 이게 모두 우리가 한 심리전 때문이 아니냐'라는 식의 공포심을 조장해 심리전만 하지 않으면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여론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재평 북한민주화의원회 사무국장도 "남남갈등을 유발하기 위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쏜다고 하면 정말 쏜다', '우리를 자꾸 건드리면 안 된다'는 식의 것들을 보여줘 남남갈등을 일어나게 만들고 그것으로 인해 남한이 더 이상 대응하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일 가능성이 있다"고 견해를 밝혔다.
특히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시간제한을 둠으로써 심리적 압박감을 주기 위한 것이 분명히 있다"며 "우리 국민들의 공포감을 최대로 높이기 위해 이런 식의 전략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일부 시민단체들은 21일 우리 군의 대북 심리전 방송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잇달아 개최했다. 이들 단체들은 심리전 방송을 두고 '남북관계를 파탄 내는 행위', '전쟁위험을 증폭시키는 행위'라며 정부에 즉각적인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③남북 간 기싸움에서의 기선제압
복수의 탈북자들은 이번 북한의 조치가 남북 간 기싸움에서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북한의 노림수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에서 물러설 경우 앞으로도 끌려가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지하고 향후 남북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이다.
북한인민군 5군단 출신의 백요셉 남북대학생총연합 대표는 본보에 "북한이 48시간을 제시한 것은 일종의 기선제압이 아니겠나"라고 반문하며 "지금은 국가 간 자존심 싸움으로까지 번진 상황인데 이번에 기싸움에서 밀리면 그 다음에도 또 밀린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 대표는 "북한은 남측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초반에 아예 끝내버리겠다는 계산을 했을 것"이라며 "북한 입장에서 대북 심리전은 가장 아픈 곳이고 이번에 허를 찔렸기 때문에 아예 '초반에 버르장머리를 잡지 않으면 안되겠다'라는 생각을 한 것 같다"고 했다.
최정훈 북한인민해방전선 사령관(인민군 244군부대 정치장교 출신)은 "지금까지 북한은 계속 이렇게 겁박해서 자신들이 바라는 바를 이뤘다는데 이번에 우리 측에서 강경하게 나오니까 협박 수위를 예전보다 훨씬 높여서 더 세게 압박을 가하고 있다"며 "48시간이라는 기한을 정해 대북 확성기를 철거하도록 만들게끔 완전히 겁을 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선을 제압함으로써 남북관계에서 우위를 점해 이번에도 또 다시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까지 남한에서 계속 북한에 먼저 손을 내밀고 국민 안전을 위해 북한과 손잡고자 노력하지 않았나. 북한이 이를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시종일관 이런 식의 협박을 하는 것"이라며 우리 군의 강경 대응 필요성을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