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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의 이순신 딜레마 '줄일 수도 키울 수도...'

김헌식 문화평론가
입력 2015.04.04 10:18
수정 2015.04.04 10:32

<김헌식의 문화 꼬기>인지도 낮은 류성룡 주인공에 이순신 배제 한계

KBS1TV 주말드라마 '징비록' 동영상 화면 캡처.

드라마에서 주인공보다 다른 인물을 더 기대하는 현상이 벌어진다면, 고충스럽다. 애초의 기획의도나 드라마 흥행을 위해서도 난감해질 수 있다. 특히 정해진 가용자원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불만족의 여운을 남길 여지도 언제나 상존하게 된다. 제작진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창작적인 방향성이나 새로운 인물을 통한 메시지의 전달도 중요하지만, 시청자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전국민을 우선해야 하는 공영방송이라면 말이다.

드라마 '징비록'이 방영되기 전에 류성룡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류성룡을 주인공으로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말에 그가 누구냐라고 묻는 시청자나 시민들이 꽤 있었다. 다만,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감동깊게 혹은 인상적으로 본 시청자들이 그의 존재감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또한 이순신에 대한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류성룡을 모를 리 없었다.

이순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그를 결정적으로 발탁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류성룡에 대한 관심은 이순신을 넘어 설 수 없는 것이라는 게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많은 시청자들은 류성룡이 천거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순신 때문에 류성룡이 입지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나마 세간에 알려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드라마 '징비록'에는 이순신이 등장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이 드라마는 이순신이 아니라 류성룡의 진면모를 부각하는데 목적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이순신을 등장시키는 순간 이 드라마는 류성룡이 아니라 이순신에게로 무게중심이 급격하게 이동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류성룡이 아니라 이순신 드라마가 된다. 애초 기획 의도가 어긋나게 된다.

그런데 이순신을 함부로 등장시킬 수 없는 고충도 있다. 이순신의 중량감이 매우 큰 것에 비해 그에 걸맞는 배우를 누구로 해야 하는지 어려운 선택이 된다. 깜짝 출연 혹은 카메오 출연으로 처리할 수 없는 노릇이 된다. 이순신은 그만큼 사람들의 뇌리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특히 임진왜란 중에 가장 혁혁한 공헌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순신이 임진왜란을 좌우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는 사실을 모두 공유하고 있는 터이다.

또한 요구되는 서사전개와 제작 환경의 불일치도 고충스럽다. 이순신과 해상 전투는 임진왜란을 그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당연히 등장해야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영화 '명량'의 흥행으로 이를 기대하는 시청자들이 매우 많아져 버렸다. 이 영화 때문에 잔상과 여운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드라마 '징비록' 속에서 이순신의 해전을 다시금 보기를 원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무엇보다 영화 '명량'에서는 이순신의 해전 가운데 명량 대첩 하나만 다뤘지만, 드라마 '징비록'에서는 이순신의 전 생애를 다룰 수 있는 여지가 있어 보였다. 류성룡은 이순신과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고, 이순신의 전투 과정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순신의 삶보다 길었기 때문에 이순신의 전생애를 커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 '징비록'은 이순신을 배제했다. 류성룡의 드라마라는 점을 확실하게 부각시키려는 것이었다. 특히 임진왜란 과정에서 이순신의 활약을 부각시키는 제작방향에서 적극 거리를 두었다. 이에 두 가지 흠결이 발생하고 만다. 이순신을 배제하고 임진왜란의 본질을 얼마나 드러낼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시청자들이 인식하고 기대하는 것을 도외시할 때 드라마가 어떤 공영성을 갖게 되는가 하는 점이다. 또한 류성룡의 관점만 부각하는 것은 류성룡의 신화화가 이뤄지는 셈이 된다. 당연히 그것에 얼마나 시청자가 공감, 호응할 수 있을 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것을 제작진이 몰랐을 리 없다.

드라마 '징비록'은 태생적인 운명은 이순신에게 있었다. 이순신을 적극 등장시켰다면, 초반부에 폭발력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류성룡 드라마가 아니라 이순신 드라마가 될 것이다. 또한 컴퓨터 그래픽이나 특수효과면애서 영화 '명량'에 비교당할 것이다. 텔레비전 드라마가 이를 충족시킬 수 없는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이는 시청자의 이반을 낳을 수 있는 잠재 요인이기도 했다. 드라마 '징비록'에게 이순신은 골치 아픈 존재가 되었던 셈이다. 시청률을 잡으려면 이순신을 등장시켜야 하지만 어설프게 등장시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난다.

그렇다면 '징비록'은 시청률을 오로지 류성룡에 기대어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이나 업적의 측면에서 류성룡을 부각시킬 수 있는 것들 중에는 그렇게 임팩트 있는 점이 많지 않다. 임팩트를 강조하는 이유는 당연히 드라마는 드라마틱 혹은 극적인 사실이나 설정이 많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결국 류성룡을 신화화하는 작업을 우직하게 밀고 나갈 수밖에 없는 셈이다. 류성룡 카드를 계속 밀고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시청자들에게 설득력있게 영향을 미치려면 우직함이 미덕이 되게 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 적극 동의하는 시청자가 다수일 리는 없다. 류성룡은 정도전 보다 낯설다. 절대시간과 노출횟수가 필요하다. 즉 시청률에 관계없이 류성룡을 적극 보여주고 장렬히 산화하는 수순이 되겠다. 정말 우리 시대에 류성룡의 메시지가 정말 필요한 것이라면, 역사속 숨겨진 진실이 정말 그럴 가치가 있다면 기획 의도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류성룡보다는 이순신이 우리 시대에 여전히 많은 것을 함의하고 있다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숨겨진 진실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선택은 류성룡 카드로 돌파하기이겠지만, 시청자들에게 아쉬움을 강하게 남길 것이다. 다만, 류성룡에 대한 대중문화의 주목을 위한 징검다리임에는 분명하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 기자 (codess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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