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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선수, 정들어도 결국 이방인인가

이준목 기자
입력 2015.03.31 18:04
수정 2015.03.31 23:13

포웰·해인즈·로드, 큰 업적에도 프랜차이즈스타 불가능

원치 않는 이별에 팬들도 한숨..MVP 선정 기준도 논란

전자랜드 팬들의 절대적인 신뢰와 사랑을 받는 포웰은 KBL 규정에 따라 올 시즌 후 결별이 불가피하다. ⓒ 인천 전자랜드

'2014-15 KCC 프로농구' 플레이오프에서 명승부 못지않게 팬들의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외국인 선수들이다.

프로농구는 다른 종목에 비해 외국인 선수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다. 외국인 선수의 존재와 활약에 따라 팀 성적이 극과 극으로 갈릴 정도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들의 가치를 바라보는 농구계의 시선에는 아직 배타적인 정서가 짙게 남아 있다. 아직도 외국인 선수보다 '용병'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들이 많은데 말 그대로 돈을 받고 고용한 병사라는 의미다. 진정한 팀의 일원이라 보기 보다는 필요에 따라 쓰고 버리는 계약관계에 가까운 뉘앙스다.

물론 일부 외국인 선수 중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용병 수준의 행태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모비스의 2년 연속 우승을 이끈 로드 벤슨은 구단과 대우 문제를 놓고 갈등을 벌이다가 시즌 개막을 앞두고 퇴출됐다.

최근 창원 LG에서 퇴출된 데이본 제퍼슨은 모비스와의 4강 플레이오프 1차전이 끝나고 애국가 스트레칭과 SNS 욕설 파문으로 연이어 구설에 오르내리며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그렇지 않은 선수들도 많다. 대표적인 한국형 외국인 선수로 꼽히는 리카르도 포웰(전자랜드)과 애런 해인즈(서울 SK), 찰스 로드(부산 KT) 등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 모두 한국에서만 수년 이상 활약하며 한국농구 뿐 아니라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까지 풍부한 선수들이다.

특히 포웰은 이번 플레이오프가 낳은 최고 스타다. 전자랜드에서만 4시즌 째 활약하며 외국인 선수로는 드물게 주장까지 역임한 포웰은 뛰어난 실력만큼이나 팀에 대한 두터운 애정을 과시해 화제를 모았다. 올 시즌이 끝나면서 바뀐 외국인 선수 규정에 따라 포웰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점 때문에 홈팬들의 한숨이 깊어졌다.

크리스 메시는 제퍼슨의 공백으로 위기에 처한 LG의 골밑을 든든하게 지키며 성실하고 원숙한 플레이를 선보였다. LG가 모비스를 상대로 최종전까지 시리즈를 끌고 가며 선전할 수 있었던 데는 메시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38세의 노장인 메시는 체력적 부담 속에서도 "팀이 원하면 40분 풀타임도 뛸 수 있다"며 제퍼슨과는 전혀 다른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다.

4강 플레이오프에서 포웰의 전자랜드를 무너뜨린 동부에는 데이비드 사이먼과 앤서니 리처드슨이 있었다. 사이먼은 4차전 도중 어깨부상을 당했다. 당초 인대가 늘어나 출장이 불투명할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사이먼은 5차전에 출장을 강행했고 부상 투혼을 선보이며 팀을 결승행까지 이끌었다.

리처드슨은 사이먼이 5반칙 퇴장 당했던 5차전 4쿼터에 투입돼 승부처에서 맹활약했다. 팀이 1점차까지 쫓기며 아슬아슬한 리드를 이어가고 있던 종료 11초 전 포웰을 앞에 두고 장거리 3점포를 작렬하며 승부에 쐐기를 박기도 했다.

리처드슨은 종료 이후 승리가 확정되고 코트에 쓰러져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승부를 결정지은데 대한 기쁨의 눈물이었지만 외국인 선수 역시 누구보다 승리를 간절하게 갈망하는 팀의 일원임을 보여준 장면이다.

사실 리처드슨은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NBA로부터 러브콜을 받기도 했지만 2라운드에서 자신을 지명해준 동부 구단과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팀 잔류를 선택한 의리파이기도 하다.

흔히 외국인 선수들은 개인 기록만 챙기고 이기적일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국내 선수 못지않게 소속팀에 대한 자부심과 연대가 강하고 한국과 한국농구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도 많다. 팬들이 이런 선수들을 더 사랑하는 것도, 단지 코트에서 보여주는 화려한 기량만이 아니라 그들을 보통 국내 선수들과 다름없는 "우리 (팀의) 선수"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올 시즌이 끝난 후 타의에 의해 팀을 떠나야한다. 몇몇 선수들은 다시 KBL에서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외국인 선수 본인이나 원 소속 구단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강제로 생이별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KBL이 도입한 외국인 선수 3년 제한 규정이나, 올 시즌 이후 실시되는 전면 드래프트제 등은 외국인 선수를 바라보는 한국농구계의 이중적인 시각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2012년 이후 국내 선수-외국인 구분 없이 통합한 MVP 시상에서 한 번도 외국인 선수가 수상하지 못한 것도 비슷한 예다.

팀마다 외국인 선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임에도, 정작 국내 선수와 동등한 기준으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프랜차이즈적인 가치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행태는, 외국인 선수를 그때그때 쓰고 버리는 소모품에 가까운 시선으로 보고 있음을 드러낸다. 외국인 선수를 '우리 선수'이자 한국농구 역사의 일부로서 존중하는 태도가 아쉽다.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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