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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죄 폐지의 주역, 옥소리는 어떻게 기억될까

김헌식 문화평론가
입력 2015.02.27 07:58
수정 2015.02.27 08:15

<김헌식의 문화 꼬기>명예회복 안되지만 그녀가 싸울 수 밖에 없었던 이유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가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간통죄와 관련한 "형법 241조는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한 26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TV뉴스를 시청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번 간통죄 폐지는 배우 옥소리의 위헌법률심판청구가 결정적이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연거푸 청구를 했고 그 결과 법률폐지까지 이끌어냈기 때문에 더욱 눈길을 끈다. 2008년 이후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무엇보다 옥소리가 형을 선고받은 간통 당사자인 상황에서 이러한 심판청구는 쉽지 않은 일임에 분명했다. 더구나 여성의 입장에서 쉽지 않았고, 많은 비난이 쏟아진 것도 사실이다. 세간의 눈길은 그렇게 살갑지만은 않았다. 왜 그러했을까. 그리고 옥소리의 행위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간통죄는 미묘한 역학을 지니고 있다. 남성에게 타격을 줄 수 있지만 공론화된 경우, 여성에게 더 치명적이었다. 한국의 현실에서 여성보다 남성이 간통을 더 많이 저지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시사적이다. 이러한 점은 여성의 간통보다는 남성의 간통 때문에 이혼소송에 이르는 경우도 더 많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남성의 상대자는 남성이 아닐텐데 말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외도가 더 많다는 뜻이겠다.

유부남과 비혼 상태의 여성과 이뤄지는 간통이기 때문에 더욱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는 거꾸로 여성보다 남성이 간통을 저지르는 경우, 덜 죄책감에 휩싸이게 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게 한다. 사회적으로 흔하게 볼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류이다. 이에 반해서 여성들이 간통을 저지르는 경우, 더욱 도덕적 윤리적인 비난에 시달리게 만든다. 물론 한국에서는 아랍권의 관습법처럼 간통한 여성의 생명을 앗아가는 잔혹한 징벌을 내리지는 않고 있다. 

배우 옥소리의 경우, 다른 일반인이나 연예인과 달리 여성의 몸으로 간통죄로 고소당했고, 징역 8월에 집행 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쌍방 간통에서 자신만 처벌받은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할 법했다. 이에 옥소리는 간통죄에 대해 위헌법률 소송을 헌법재판소에 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다시 위헌법률심판청구를 하게 된다. 형식적 명분으로는 "간통죄는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해 성적 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 징역형만 규정한 법정형이 책임과 형벌간 비례원칙에 비추어 과중하다고 볼 수 없다"라는 합헌결정에 반발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옥소리의 간통 사실은 더욱 널리 알려졌다. 잊을만하면 간통죄와 관련하여 옥소리의 이름이 불거졌다. 흔하지 않는 일이라 여겨져 더욱 각인 효과를 일으켰다. 하지만 응원의 목소리도 있었다. 오히려 해외 외신에서는 옥소리가 인권 침해 법에 대항하는 인물로 그려졌다. 2008년 12월 17일 영국 BBC 인터넷판에서 옥소리 판결 관련 기사는 최고의 관심 기사로 선정되었다.

영국에서는 간통죄를 처벌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은 비정상적인 국가로 평가되었다. 이렇게 큰 화제거리가 된 것은 뉴스의 기본 특징은 희소성 때문이겠다. 대부분의 나라는 간통죄를 인정하지 않고 형사보다는 민사적인 해결을 모색하도록 한다. BBC는 한국은 무슬림 국가가 아닌 나라 가운데 간통을 범죄로 처벌하는 몇 안 남은 나라라고 논평했다. 이제 한국은 간통죄 폐지의 나라가 되었다.

그 폐지에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에 개의치 않고 맞서 나간 배우 옥소리가 있었음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옥소리는 인권운동가도 아니었고, 소셜테이너도 아니었다. 간통죄에 관련하여 자신의 이미지를 어필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이러한 점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형벌적인 관점을 벗어나 민사적인 책임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간통을 한 사실은 법원의 판결로 확정된 바가 있고, 간통죄의 폐지는 형벌적인 전과만 지울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게 되었을 뿐이다.

개인의 사적인 성적 자기결정권과 별도로 불명예를 위해 싸웠다기보다는 불합리한 제도에 항거한 측면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특히 사회적 비난이 더 가해질 수 있는 여성의 입지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간통 사실 자체를 합리화 정상화 할 수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도덕적 윤리적인 인식은 변함이 없거나 더욱 강해질 것이다.

어쨌든 문화적 프레임은 항상 바뀌기 마련이다. 담배에 대한 인식이 호사기호품에서 발암 민폐물질로 바뀌었고, 간통죄가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법으로 인식되는데는 문화적 프레임의 이동이 있었고, 그 가운데는 이를 주도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사적인 동기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말이다. 사적 동기가 어쩌면 가장 진정성을 가질 수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당함에 대한 인식은 관념이 아니라 현실에서 도출되기 때문이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 기자 (codess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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