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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년전 '지상 최고 최대의 힐링 센터' 에피다우로스

박경귀 (사)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입력 2014.11.30 09:51
수정 2014.11.30 10:05

<박경귀의 ad Greece 32>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성역, 환상적 원형극장까지

고대 그리스 문명은 유럽 문명의 시원이자 인류 문명의 원천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창조해낸 독창적인 문화와 문명의 자취는 숱한 고전과 유물, 유적으로 고스란히 우리에게 남겨졌습니다. 여기엔 그리스의 12신과 영웅은 물론 현인과 보통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겨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의 열광과 환희, 고통과 좌절로 점철된 뜨거운 삶의 궤적이기도 합니다. 그리스 역사문화 탐방은 그리스 고대 문명과 영욕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신화기행이자 미학기행입니다. 오늘날 혼돈에 빠진 우리의 삶을 반추하고 새로운 지혜를 탐색하는 ‘나를 찾는 여행’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발견하느냐는 각자 자신의 몫입니다. 열린 눈, 열린 마음으로 함께 떠나보시지요. ad Greece!!< 편집자 주 >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그리스 본토에서 가장 먼저 미케네 문명 시대를 열었던 아르골리스 지방은 아르골리스 만에 연한 풍요로운 아르고스 평원을 중심으로 번영을 누렸다. 이렇게 아르골리스 반도의 서쪽에는 미케네, 아르고스, 티린스와 나프플리오가 번성했다. 반도의 동쪽 해안에는 나름대로 독립성을 유지한 고대 도시 에피다우로스(Epidaurus)가 있었다. 티린스에서 40km 떨어진 아르골리스 반도의 동쪽 해안에 에피다우로스 시가지가 있다. 앞에는 에게 해의 사로니코스 만이 펼쳐진다. 에게 해 2시 방향으로 아이기나 섬을 바라보고 있고, 그 너머 아테네가 있는 아티카 반도를 마주하고 있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성지, 에피다우로스

고대 에피다우로스는 해안에서 남서쪽으로 9km 쯤 들어온 산 중턱의 너른 골짜기에 형성되었다. 에피다우로스는 한 때 아이기나 섬을 지배하기도 했지만, 아이기나가 해군력에서 앞서가면서 경쟁하게 되고, 이를 견제하기 위해 아이기나와 적대적이던 아테네와 우호적인 관계를 가졌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보면, 에피다우로스가 흉년이 들어 나라가 어려워지자, 델포이 신탁에 따라 아테네의 올리브 나무를 얻어 풍요의 여신인 다미아(Damia)와 아욱세시아(Auxesia) 신상을 건립하여 봉안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에피다우로스는 아테네의 에렉테우스 왕에게 매년 공물을 바쳤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 인연도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스파르타와 적대하면서 아테네 편에 선 이유의 하나가 될 수 있을 듯싶다.

아무튼 에피다우로스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외진 동쪽에 위치한 까닭에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국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에피다우로스는 그리스 본토에서 의술의 고장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에피다우로스 인들은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를 섬겼고, 아스클레피온(Asclepion)를 중심으로 번성하였다. 요즘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은 시가지를 이루는 현대 도시 에피다우로스가 아니라 산 계곡 너른 들판에 형성되었던 고대의 아스클레피오스 성역이다. 티린스에서 약 30km 동남쪽에 위치한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원래 신이 아닌 인간이었다. 그는 음악의 신이자, 의술의 신이던 아폴론과 텟살리아의 왕 플레기아스의 딸 코로니스(Coronis)의 아들이었다. 아폴로도로스는 '비블리오테케'(Bibliotheke)에서 아스클레피오스의 탄생 과정과 의술을 익히게 된 경위를 이렇게 설명한다.

“아폴론이 코로니스를 사랑하여 곧장 그녀와 교합했으나 그녀는 어버지의 뜻에 반해 카이네우스와 형제 간인 이스키스를 더 좋아하여 그의 아내가 되었다고 한다. 아폴론은 이 소식을 전해준 까마귀를 저주하며 그때까지는 희었던 것을 검게 만들었고 코로니스를 죽였다. 그녀가 화장되고 있을 때 아폴론이 장작더미에서 아이를 꺼내어 켄타우로스족인 케이론에게 데려갔다. 그러자 케이론이 그를 양육해주고 의술과 사냥의 기술을 가르쳐주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사가 된 뒤 기술을 고도로 연마하여 어떤 사람도 죽지 않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죽은 사람들도 일으켜 세웠다. 그는 아테나한테서 고르고의 혈관에서 흘러내린 피를 받아 왼쪽 혈관에서 흘러내린 피는 사람을 죽이는 데 쓰고 오른쪽 혈관에서 흘러내린 피는 사람을 구하는 데 썼는데, 이것으로 죽은 사람들을 일으켜 세웠던 것이다.“


아폴론과 코로니스, Adam Elsheimer(1578~1610) 1607~1608년 작, Walker Art Gallery, 사진 Web Gallery of Art

한편 라케다이몬 지방에 전해지는 전설에 의하면, 아스클레피오스가 레우킵포스의 딸 아르시노에의 아들이라고 한다. 레우킵토스의 선조를 거슬러 올라가면 외가 쪽으로는 페르세우스, 친가 쪽으로는 제우스의 아들 라케다이몬까지 이어진다. 그렇다면 아스클레피오스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지연(地緣)을 가진 셈이다. 에피다우로스 인들은 아스클레피오스가 이곳에서 탄생한 것으로 믿는다. 이런 까닭에 미케네 시대부터 에피다우로스에서 아스클레피오스 신앙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의 신인 아버지 아폴론의 유전자를 타고난 데다, 현인 케이론의 교육을 통해 의학을 체계적으로 배운 것 같다. 그가 인간으로 태어나 신의 반열에 오른 것은 그가 신비한 의술을 통해 고통 받는 인간들을 숱하게 구제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숭배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과 의사의 대명사를 넘어 의술의 신으로 숭배되었다. 이런 환경에 힘입어 아스클레피오스를 숭배하며 의술을 펼치던 사람들이 에피다우로스에 특별한 치료 병동과 휴양시설을 갖춘 의료 센터를 건립하게 된다. 아스클레피온(Asclepion)은 곧 종합 의료센터 기능을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유명했던 아스클레피온은 세 곳에 있었다. 히포크라테스가 태어나 의술을 펼쳤던 코스 섬, 소아시아 지역의 페르가몬과 에피다우로스가 바로 그곳이다.

의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입상, 목욕장 및 도서관이 있는 아스클레피오스 복합센터에서 발굴되었다. 그리스 고대기 작품을 로마시대에 복제한 것이다. 160년 경 작품, 에피다우로스 박물관, ⓒ박경귀

페르가몬(현 터키의 베르가마)의 아스클레피오스 성역에 있는 북쪽 갤러리, ⓒ박경귀

코스 섬의 아스클레피온, 사진 Karelj

치유를 위한 종합 의료 시설들

에피다우로스의 아스클레피오스 성역은 해발 300여 미터의 너른 산정에 펼쳐져 있다. 키노르티온(Kynortion) 산정을 가득 채운 소나무 숲이 주변의 풍광과 어우러져 평화롭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8월의 늦은 오후 해가 긴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한 성역은 더욱 고즈넉했다. 주변이 모두 높지 않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안정감을 준다. 코린트나 아르고스처럼 인마의 왕래가 빈번한 교통의 요지가 아닌 까닭에 치유와 휴양을 위해 이곳이 선택된 것이 아닌가 싶다.

성역에는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을 비롯해 아테나 신전, 아르테미스 신전, 히게이아 신전,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었다. 이집트 신들을 모신 신전도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집트, 리비아 등 아프리카의 도시에서도 이곳을 많이 방문했던 것 같다.

지병을 치유하기 위해 찾는 방문객들은 일단 이곳에 마련된 대기 숙박시설에 묵었던 것 같다. 이곳에는 측면 길이가 무려 76.3미터 이르는 정사각형 모양의 대형 숙박시설이 있었다. 헬레니즘 시대인 BC 4세기 말에서 3세기 초에 건립된 이 카타고제이온(Katagogion)의 내부는 네 개의 건물로 구획되었는데 환자를 수용하거나 방문객이 투숙하는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임시 병동 및 게스트 하우스 역할을 했던 것이다.

거대한 숙박 시설인 카타고제이온(Katagigion)이 있던 자리, 1883년에 발굴되었다. ⓒ박경귀

특이한 것은 카타고제이온의 네 개의 건물이 쌍을 이루어 구획되었다는 점이다. 남쪽의 두 개의 건물과 북쪽의 두 개의 건물 사이에는 서로 왕래할 수 있도록 통로가 있었던 반면에 남쪽과 북쪽의 건물 간에는 벽체로 단절되어 있었다. 이는 환자의 증상 정도나 방문객의 특성에 따라 머무는 공간을 구분함으로써 병의 전염 등을 예방하려던 것 같다. 지혜로운 건축술이 아닐 수 없다.

카타고제이온 평면도, 아래와 위쪽의 두 개의 공간 사이에 통로가 있는 점을 주목하라. ⓒ박경귀

아스클레피온에는 아스클레피오스 신전과 원형 건물인 톨로스(Tholos), 그리고 아바톤(Abaton) 또는 엔코이메트리온(Enkoimetrion)이라 불리는 지성소(至聖所)가 중심 건축물을 형성하고 있다.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은 거의 소실되어 흔적을 찾기 어렵고, 톨로스 역시 기단 정도만 남았다. 지성소의 벽체와 기둥 일부는 지금도 복원이 진행 중이다. 그 주변에 아르테미스 신전 유허도 흩어져 있다.

엔코이메트리온은 환자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던 건물이었다. 이들은 그곳에서 대기하면서 지성을 드리거나, 심신을 추스른 후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이나 톨로스에서 진료를 받았을 것 같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치료법은 독특했다. 환자가 대기 중에 꾸는 꿈에서 의신 아스클레피오스가 나타나 치료법을 계시한다고 믿었다. 실제로 치료 방법이 계시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 나을 수 있다는 믿음 또한 생기지 않았을까?

아무튼 환자의 꿈에 나타난 치유 방법에 관한 갈망과 희구에 대해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 그 자체도 어느 정도 심리적 치료 효과가 있었을 것 같다. 단순한 물리치료뿐만 아니라 자연 요양과 심리치료 까지 병행한 아스클레피온의 치유법은 당대에 큰 효과가 있는 것을 명성이 났다. 전 세계에서 환자들이 줄이어 방문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아바톤 혹은 엔코이메트리온(Enkoimetrion) BC 4~3세기 건축 추정 ⓒ박경귀

남쪽에서 바라본 아바톤 혹은 엔코이메트리온(Enkoimetrion) ⓒ박경귀

아스클레피온의 톨로스는 매우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이런 원형 건물은 그리스 전역 여러 곳에 있었다. 델포이에도 이와 유사한 톨로스가 있다. 하지만 각각의 톨로스의 기능은 여러 면에서 달랐을 것이다. 아스클레피온의 톨로스는 진료동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환자 대기 장소인 엔코이메트리온이 바로 옆에 있었고, 그 옆에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곳이 종합 의료 센터의 중추 기능을 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원형 건물인 톨로스이다. 현재 남아 있는 기단과 기둥 일부를 복원 중이다. ⓒ박경귀

톨로스의 복원 추정도, 원형 지붕의 꼭지에 아크로터가 설치되어 있다. 에피다우로스 박물관 ⓒ박경귀

톨로스의 건물 꼭대기 설치되었던 아크로터의 복원 추정도, 에피다우로스 박물관 ⓒ박경귀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의 복원 추정도, ⓒ박경귀

아르테미스 신전 터 ⓒ박경귀

아스클레피오스 신전 주변에 흩어져 있는 기단들, ⓒ박경귀

아스클레피온의 건축물 가운데 또 하나의 아름다운 건축은 프로필라이아(Propylaia)이다. 체육관과 음악당이 함께 있는 복합 시설의 출입 정문이다. 이 문을 들어서면 중앙에 오데온이 있었고, 작은 음악당 뒤의 왼쪽으로 체육관이 있었다. 환자들이 치유를 위한 체력 단련과 음악과 연극을 감상하는 등 심신의 요양을 하는 종합 시설이 었던 것이다. 또 이곳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대형 경기장인 스타디온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4년 마다 다양한 체육 경기가 벌어졌다. 이곳에서 요양 중인 환자들도 신체가 건강한 이들이 겨루는 경기를 보면서 건강한 삶과 치유에 대한 의지를 키웠으리라.

남쪽에서 바라본 프로필라이아 ⓒ박경귀

서쪽에서 바라본 프로필라이아 ⓒ박경귀

아스클레피온 성역의 남쪽에 위치한 스타디온, 앞쪽의 기둥이 서 있는 곳이 출발선이다. ⓒ박경귀

지상 최고의 공연장 에피다우로스 원형극장

아스클레피온에는 체육관과 목욕장, 그리고 로마 시대에 지은 작은 극장도 있었다. 병의 치유를 위해 적절한 운동 처방은 물론 연극 공연 및 음악 연주 관람 등 정서적 치유 방법이 병행되었다. 1만 4천여 명을 수용하는 대형 원형 극장은 이런 기능을 수행하는 데 활용되었을 것이다. 도시 마다 있었던 그리스 원형 극장은 도시의 민회를 위한 의사당이나 시와 음악, 비극 공연 등을 위한 아트센터 역할을 했다. 에피다우로스에서는 치유를 위한 아스클레피온의 부속 시설로 그 활용도가 더 높았을 것이다.

아스클레피온에 있는 로마 오데온(음악당)이다. 뒤에는 복합 체육시설이 있었다. ⓒ박경귀

대형 원형 극장은 아스클레피온 집적 구역에서 200여 미터 동북쪽에 떨어져 있다. 이 극장은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 원형 극장 가운데 가장 보존이 잘 되었고, 극장의 건축적 기능 또한 최고로 탁월한 걸작이다. 사실 필자도 2014년 2월에 미케네 왕성을 답사하고 나서 이곳을 찾고자 했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보지 못해 아쉬웠었다. 8월에 다시 방문한 이유도 가장 아름답기로 명성이 자자한 이 에피다우로스 원형 극장의 청중석에 앉아 그 아름다움을 직접 느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에피다우로스 원형 극장의 상단 청중석에 앉아 키노르티온 산을 가득 채운 관목과 우거진 소나무 숲을 바라보노라면 세상 시름이 싹 가시는 것 같다. 이곳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외극장이다. 아르고스 지방의 건축가 폴리클레이토스(Polycleitos) 2세가 설계했다. 객석은 2단으로 구획되었고, 하단이 36단, 상단 19단, 모두 55단의 계단석 대리석 좌석이 설치되었다.

그리스 원형 극장은 오케스트라가 위치하는 원형(圓形) 공간이 둥글다. 이후 로마 시대에 들어서 대부분 반원형으로 개조되었다. 검투 시합을 위해 오케스트라와 객석을 구획하는 벽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은 고대 그리스 극장의 원형(原型)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코러스가 오케스트라에서 노래를 합창하면 맨 윗줄에 앉은 관객에게까지 정확하게 들릴 만큼 극장과 객석 배치의 구조가 정교한 반향을 만들어냈다. 지금도 극장에 들어선 관광객들은 오케스트라 무대 중앙에 서서 노래를 부르거나, 손뼉을 치면서 그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는 것을 느껴보면서 신기해한다.

오케스트라 무대 중앙에서 동전을 던지면 그 소리가 객석 끝까지 들릴 정도의 탁월한 음향효과가 발휘하도록 한 건축술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의 탁월한 음향적 기능은 현대 건축에서도 신비롭게 여겨져 왔었다. 최근 미국의 음향 전문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에피다우로스의 탁월한 음향효과가 석회암이 저주파를 흡수해 소음을 여과하고 고주파를 반사시켜 반향을 증폭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공연장으로서의 탁월한 기능과 고색창연한 낭만적 분위기 때문에 이곳에서 각종 연극과 음악회가 끊이지 않고 열리고 있는 것 같다. 2400년 전에 건립한 고색창연한 이곳에서 펼쳐지는 음악과 예술의 향연은 감동을 배가시킬 수밖에 없을 듯싶다. 필자가 방문한 날은 일요일이었는데 바로 전날인 토요일에도 특별한 콘서트가 열렸었다. 이곳의 입구에 대형 버스 수십 대가 주차할 수 있는 상당히 넓은 공간의 주차장이 있어 놀랐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리스 유적지는 도시 외곽에 있는 경우에나 관광버스 몇 대 정도가 주차할 정도의 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게 고작인데, 이곳은 1년 내내 각종 공연이 상시로 열리다보니 대형 주차공간을 확보한 것이다.

에피다우로스 원형극장, 키노르티온 산을 가득 채운 관목과 우거진 소나무 숲을 바라보면 시름이 싹 가신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외극장이다. ⓒ박경귀

파노라마로 잡은 에피다우로스 원형극장의 전경이다. ⓒ박경귀

극장 오른편의 석축이다. 정교하게 다듬은 대리석으로 쌓았다. ⓒ박경귀

극장의 입구 좌우에는 관객이 입장하는 대형 관문이 설치되어 있다. ⓒ박경귀

극장 무대 쪽에서 바라본 전경이다. ⓒ박경귀

효험 있는 치료로 명성이 높던 에피다우로스의 아스클레피온은 헬레니즘 시대에 최고의 번성을 누린다. 하지만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쇠락의 길을 걷는다. 로마의 장군 술라(Sulla)가 BC 86년에 이곳을 침범하여 보물들을 약탈했고, 몇 년 후에 킬리키아(Kilikia) 해적들의 노략질도 이어졌다.

하지만 2세기에 신전들이 복원되거나 보수되고 새로운 건축물이 신축되는 등 제2의 번영기를 누렸다. 그렇지만 그 번영은 오래가지 않았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면서부터 그리스의 신앙을 이단시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426년에 테오도시우스(Theodosius)이 그리스 신앙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을 비롯한 이곳의 많은 신전은 폐쇄되고 파괴되기 시작한다. 이후 522년과 551년에 지진이 발생하면서 그마나 남았던 건축물 잔해마저 대부분 소실되기에 이른다.

이후 아스클레피온은 오랫동안 폐허로 방치되다가 1879년부터 1928년까지 발굴되었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적들은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과 1909년 건축된 에피다우로스 박물관에 나뉘어 소장되었다. 아스클레피우스 신전과 주변에서 발굴된 조각과 의료 기구, 건축물의 부조 등 볼만한 유물들이 꽤 있다.

에피다우로스 박물관 입구, 전시 공간은 단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박경귀

에피다우로스 박물관 전실,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에 발굴된 조각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박경귀

에피다우로스 박물관 후실, 톨로스와 주변 여러 신전들에서 발굴된 유물과 건축 구조물과 대리석 기둥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경귀

전시 유물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은 아스클레피오스 전신상, 아테나 여신상, 건강의 여신 히기에이아(Hygeia)과 아프로디테 여신 상이다. 이곳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던 1세기에서 2세기경의 작품들로 옷자락과 몸의 자태에 대한 정교한 묘사가 일품이다.

아스클레피오스 목욕장 및 도서관의 복합 센터에 있던 아테나 여신상, 여신의 오른쪽에 올리브 나무와 의술의 상징인 뱀이 모습이 조형되었다. 160년 경 작품, 에피다우로스 박물관, ⓒ박경귀

아테나 여신상이 왼쪽 어깨 위에 두른 히마티온(himation) 위에 고르곤의 머리가 부조되어 있다. 고르곤은 대개 아테나 여신의 갑옷이나 상의의 중앙에 부조된다. 이 경우는 특이한 사례다. 에피다우로스 박물관, ⓒ박경귀

아스클레피온에서 발굴된 아테나 여신상, 전투를 지휘하는 역동적인 모습이다. ⓒ박경귀

아스클레피온에서 발굴된 아테나 여신상, 전투를 지휘하는 역동적인 모습이다. ⓒ박경귀

건강의 여신 히기에이아(Hygeia)의 대리석 전신상이다. 1884년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에서 발굴되었다. BC 4세기 작품으로 조각가 티모테오스(Timotheos)의 작품을 1세기~2세기경에 복제한 작품이다. 에피다우로스 박물관, ⓒ박경귀

아프로디테 입상, 아프로디테는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의 치유과정에서 기여했다. 19세기 말 아스클레피오스 복합 센터에서 발굴되었다. BC 4세기 작품을 1세기에 복제한 작품이다. 에피다우로스 박물관, ⓒ박경귀

ⓒ아스클레피오스 가족 상, 아스클레피오스는 아들 두 명과 다섯 딸을 두었다. 아들 마카온(Machaon)과 포달레이리오스(Podaleirios), 그리고 딸 라소, 히게이아, 아케소, 아글레이아, 파나케이아가 그들이다. 이 부조의 맨 오른쪽이 아스클레피오스로 보이고, 왼쪽에 앉아 있는 이가 그의 아내 에피오네(Epione), 그리고 그녀 뒤에 딸 파나케이아와 라소가 서 있다. BC 4세기 중반 작품이다. 에피다우로스 박물관, ⓒ박경귀

아스클레피오스 복합 의료센터에서 발굴된 대리석상들, 에피다우로스 박물관, ⓒ박경귀

로마 관리 대리석상, 1882년 톨로스 근처에서 발굴되었다. 40~50년 경 작품, 에피다우로스 박물관, ⓒ박경귀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에 바쳐진 희생 부조, ⓒ박경귀

아스클레피온에서 발굴된 코린트식 기둥 ⓒ박경귀

아스클레피온에서 발굴된 도리아식 기둥 ⓒ박경귀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한 화려한 코린트 양식의 기둥 머리 ⓒ박경귀

에피다우로스는 아스클레피오스 신앙의 중심지였다. 의술의 신은 인간을 생명을 구하고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준다. 그리스 인들이 아폴론 못지않게 열광적으로 숭배했던 이유는 자신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신앙심 덕분에 에피다우로스의 아스클레피오스 성역은 평화의 공간, 재활의 공간, 부활의 공간이 되었다. 자연히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의술의 신에 대한 감사의 봉헌물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에피다우로스는 의료 종합 센터로서의 탁월한 입지를 가졌다. 해상이나 육상 어느 곳으로 부터도 번잡한 영향을 덜 받는 곳이었다. 높지 않는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하고 아름다운 계곡은 세파에 지치고 병마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휴식과 재활의 시간을 만드는 좋은 조건이 되었던 것 같다. 과거의 병동과 요양시설들은 이제 간 곳이 없다.

하지만 에피다우로스의 아름다운 원형극장의 공연을 찾는 이들에겐 여전히 세상의 묵은 때를 씻어내고 삶의 의지를 재충전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이런 공간에서 펼쳐지는 예술 공연을 볼 수 있는 그리스 인들이 부럽다. 에피다우로스의 공연장이 불을 밝히는 한 아스클레피오스는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있다. 언젠가 필자도 이곳 야외극장에서 공연되는 콘서트를 보러 오게 될 날을 고대해 본다.

글/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kipeceo@gmail.com)

박경귀 기자 (kipe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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