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한복판에 부활한 애기봉 트리, 비록 작지만...
입력 2014.11.05 09:46
수정 2014.11.05 09:52
보수 단체 "상부 승인 없이 애기봉 철거한 것에 항의 표시"
시민들이 북적거리는 광화문 한복판에 ‘애기봉 트리’가 등장했다.
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인근 보수 시민단체 농성장 앞에는 종전에 보지 못했던 크리스마스 트리, 일명 ‘광화문 애기봉 트리’가 세워져 있었다.
실제 높이 18m로 알려진 애기봉 철탑에 비해 규모도 작고 모습도 초라해 눈에 곧잘 띄지는 않았지만, 이날 반짝 추위에 잰걸음을 하던 시민들 가운데 몇몇은 성탄절을 50여일 남겨둔 현 시점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등장한 것이 뜻밖이라는 눈치였다.
애기봉 트리가 이곳 광화문 농성장에 설치된 이유는 무엇일까.
광화문 애기봉 트리 설치를 주도한 장기정 자유청년연합 대표는 4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김포 해병 2사단에서 애기봉 철탑을 아무런 상의 없이 철거해 이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광화문 농성장 앞에 3이 저녁부터 트리를 세워놓았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해병 2사단장이 국방부 장관과 대통령의 승인도 받지 않고 철탑을 철거했다면 이는 명백한 ‘하극상’”이라며 “징계까지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그는 “그동안 북한에서 애기봉 불빛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조준 타격하겠다는 말도 있었다”며 “만약 이 같은 북의 위협 때문에 철거를 결정했다면 상당히 비겁한 행동”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애기봉 트리가 놓여진 농성장에는 자유청년연합, 새마음포럼, 인터넷미디어연합, 교육과 학교를 위한 학부모연합 등 4개 단체와 개별 시민이 모여 북한 민주화를 위한 ‘북한인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번 애기봉 트리 설치 역시 북한 민주화 촉구 운동의 일환이다. 트리의 불빛을 밝히는 것에는 북한 정권에 의해 핍박받는 주민들과 아이들을 위한 북한인권법 제정을 촉구하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농성장에서 함께 북한인권법 제정 촉구를 외치고 있는 강인오 씨 역시 애기봉 철탑 철거가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강 씨는 “애기봉 등탑은 북한 주민에게 자유와 평화를 알리는 상징적인 조형물”이라며 “국가적인 상징성이 있는 조형물을 일시의 안전상의 문제로, 그것도 상부의 승인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철거했다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애기봉 트리 설치 계획에 직접 참여했다는 그는 “북한 민주화와 북한 인권 차원에서 애기봉 등탑은 잠시도 지체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광화문 농성장에 미니어처로 세우게 됐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현재 광화문 애기봉 트리를 최소한 내년 2월까지 세워둘 예정이다.
한편, 이날 일부 시민들 중에는 광화문 애기봉 트리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이들도 있었다.
길을 지나다 한참동안 애기봉 트리를 바라보고 멈춰 서있던 60대 김모 씨는 “멀쩡하게 있던 애기봉 등탑을 철거한 것은 아주 답답한 처사”라며 비판했고, 트리를 줄곧 응시하던 정모 씨(64) 역시 “대통령도 모르게 멋대로 철거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국방부는 지난 10월 22일 1971년 경기 김포시 애기봉 전망대에 세워졌던 애기봉 철탑을 43년 만에 철거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시행된 각급 부대 시설물 안전진단 결과, 애기봉 철탑의 철굴 구조물의 하중으로 지반이 약화해 강풍 등 외력에 의해 무너질 위험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애기봉 등탑의 철거 사실이 언론을 통해 전파되자 “수십 년간 대북심리전의 도구로 활용된 철탑을 철거한 것은 국방부의 성급한 결정”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에 더해 10월 27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한민구 국방장관은 “애기봉 등탑이 철거된 후 언론보도를 보고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밝혀 군 보고체계의 허술함에 대한 지적과 함께 충분한 검토도 없이 사단장의 직권으로 철거를 강행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후 한 언론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애기봉 철탑 철거에 관한 언론보도를 보고 받은 뒤 회의석상에서 “도대체 누가 결정했느냐”며 호되게 꾸짖었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청와대 측은 즉각 “아는 바 없다”고 해명했지만, 이 같은 내용은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결국 한 보수 종교단체가 “애기봉 등탑을 다시 세우겠다”고 공언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철거 과정에서의 보고체계에 대한 비난이 심화되자 국방부는 ‘관할 부대인 해병대 2사단장의 독단적인 결정’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해병 2사단 측은 “철거 전 국방부 실무책임자와 사전논의를 했다”고 해명하고 있어 여전히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