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김태술, AG 금메달 우승 설계자 될까
입력 2014.09.29 16:05
수정 2014.09.29 22:24
8강 리그 필리핀전서 최고 퓨어가드 진가 발휘
듀얼가드 전성시대 속 정통 1번 명맥 잇는다
최근 한국 농구는 자신의 공격력을 살려 게임을 풀어나가는 이른바 듀얼가드들의 전성시대다.
듀얼가드들은 1번 포지션을 맡아 패싱 게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선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요소가 많다. 패싱-득점력을 겸비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포지션이다.
대표적 듀얼가드 양동근, 김선형 등은 각자의 소속팀을 리그 강호로 올려놓은 것은 물론,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대표팀의 주축으로 활약 중이다. 바야흐로 국내 가드진의 흐름은 듀얼가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많은 팬들은 이른바 전통 1번으로 불리는 퓨어가드를 갈망하고 있다.
양동근이 등장하기 이전 농구계를 이끌었던 1번 사령관 강동희-이상민-김승현 등은 천재적인 패싱 센스와 넓은 시야를 통해 경기 전체를 조율하던 이른바 설계자였다. 이들에게서 펼쳐지는 마술과도 같은 플레이에 팬들은 열광했고 많은 환호를 보냈다.
자신이 직접 상대 진영을 때려 부수는 듀얼가드도 멋지지만 교향악단의 지휘자처럼 선수 전원의 플레이를 조율해주는 든든한 퓨어가드의 매력은 또 다른 짜릿함을 선사한다. 2002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끈 주축 1번들도 이상민-김승현이라는 퓨어가드들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국내에는 이러한 정통 1번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포인트가드도 적극적으로 공격에 참여하는 흐름의 영향도 있지만, 쟁쟁한 선수들을 자신의 손끝으로 컨트롤할 만큼 역량 있는 기량이 소유자들이 줄어든 영향이 가장 크다.
‘매직키드’ 김태술(30,전주 KCC)은 국내농구에서 몇 안 되는 실력파 정통 포인트가드 중 한명이다. 김시래(LG), 김기윤(KGC) 등 가능성 있는 선수들이 조금씩 등장하고 있지만 양동근-김선형 등 정상급 듀얼가드들과 맞설 수 있는 대형 1번은 김태술이 유일하다.
강동희(1966년생)-이상민(1972년생)-김승현(1978년생)-김태술(1984년생)로 연결되는 최고 포인트 가드의 6년 주기설 주인공인 김태술은 커리어 초반에는 선배들에 많이 미치지 못한다는 혹평을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가를 드러내며 정통 퓨어가드의 자존심을 지켜나가고 있다.
김태술의 진가는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8강 리그 H조 필리핀과의 경기에서 제대로 드러났다. 부상과 부진 등으로 희미한 존재감을 보이던 그는 아시아 정상권 가드들이 즐비했던 필리핀과의 경기에서 노련한 경기조율은 물론 중요한 고비마다 상대 흐름의 맥을 끊는 득점을 성공시키며 국내 최고 퓨어가드로서의 위용을 과시했다.
제프리 찬, 루이스 테노리오, 짐 알라팍 등 필리핀 가드들은 빠른 발과 정확한 외곽슛을 앞세워 경기 내내 한국 대표팀을 괴롭혔다. 스피드와 운동능력이라면 국내 정상급인 양동근-김선형도 이들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김태술은 차분하고 센스 넘치는 플레이로 필리핀 가드들과 맞서 대표팀에 승리를 가져왔다. 필리핀 가드들처럼 폭발적인 스피드로 코트를 휘젓고 다니지는 못했지만 동료들에게 안정적인 볼 배급을 통해 템포를 조절했고 중요한 순간 송곳 같은 어시스트로 경기흐름을 휘어잡았다.
개인 공격력에서도 김태술은 필리핀 가드들에게 뒤지지 않았다. 미들라인에서 던지는 김태술의 뱅크슛은 국내 리그에서도 명품 공격 기술로 통한다. 선패스 위주로 공을 돌리다가 수비수가 떨어졌다 싶으면 지체 없이 던지는데 정확도가 매우 높다. 상대하는 선수 입장에서는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김태술은 뱅크슛을 통해 여러 차례 득점을 성공시킨 것을 비롯해 3점슛을 2개나 꽂아 넣으며 16득점을 올렸다. 경기가 잘 안 풀릴 때는 빈공간을 파고들어 자유투를 얻어냈고 공의 낙하지점을 제대로 읽고 찾아가 빅맨들 틈에서 리바운드를 따내기도 했다. 특유의 빠른 손을 바탕으로 가로채기에 이어 속공득점을 올린 장면에서는 김승현의 한창 때 모습마저 오버랩 됐다.
김태술이 이상민-김승현 등 정통 1번 선배들이 그랬듯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끄는 설계 기술자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농구팬들의 시선이 매직키드를 향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