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지금 북한에선...간부들 “차라리 노동자 되고 싶다”

김소정 기자
입력 2014.09.11 09:32
수정 2014.09.11 09:34

시장의존도 높아져 당국 통제 불능…장마당 장삿꾼이 신흥부자로 급부상

북한 주민들이 지난 2013년 2월 4일 시장에서 장작을 주고 팔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탈북과 남한 정착을 지원하는 갈렙선교회의 김성은 목사는 최근 촬영한 북한 영상을 13일 공개했다. ⓒ연합뉴스

북한에서 이전에는 재일교포 출신들이 부자였지만 지금은 외화벌이에 종사하는 사람은 물론 생산 노동자와 장마당의 공산품 장사꾼도 신흥 부자로 꼽힌다.

북한에서 주민들의 시장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유통품목 제한 등 당국의 관리가 기능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처음 장마당에서 농산품을 팔기 위해 당국에 300원씩 내던 장세가 품목이 다양화되면서 대폭 오른 점도 시장의 억제와 허용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 북한 당국의 모습을 반영한다.

북한 당국이 한때 시장 억제 정책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장마당이 당의 주요 사업이 될 정도로 시장이 정착된 것도 사실이다.

10일 북한 내부에 정통한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장마당에서 농산품을 팔려면 군 단위 행정기관에 해당하는 인민위원회 소속 시장관리소에 1인당 하루 300원씩을 내야 한다. 하지만 식료품을 팔려면 500원을 장세로 내야하고, 공산품에 대한 장세는 800~1000원으로 정해져 있다고 한다.

이렇게 상인들로부터 거둬들이는 세금이 크게 늘면서 오히려 시장이 군 단위 행정기관을 유지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다. 당초 장마당을 통제할 목적으로 거둬들이기 시작한 장세의 규모가 커지면서 지금은 당과 인민위원회는 물론 보안소의 월급을 충당하고 있는 것이다.

소식통은 “각 군마다 인민위원회 상업국에서 승인한 장마당은 공식적으로 두 개씩이고, 승인된 장마당 두곳에서 장사하는 사람은 하루 평균 2만명에 달한다”며 “제일 싼 장세가 300원씩이니까 시장관리소가 매일 거둬들이는 금액이 엄청나다”고 설명했다.

소식통은 또 “각 군 단위의 당책임비서의 첫 임무가 시장관리소장을 잘 임명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면서 “지난 2009년 화폐개혁과 동시에 한달 반 정도 시장이 폐쇄된 적이 있었지만 당시 주민들보다 오히려 군 급 기관에서 더 아우성이었다”고 전했다.

1990년대 중반 식량배급이 중단되면서 북한 당국이 허용하기 시작한 장마당은 처음에는 물물교환 식으로 운영됐다가 점차 국경무역이 개방되면서 중국 물품이 들어오고, 국가재산을 탈취한 물품들도 장마당에 유입됐다.

시장 허용은 1995년 ‘공장·기업소·기관별로 식량 문제를 알아서 자체 해결하라’는 김정일의 지시가 배경이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이 시장을 통해 부가가치와 교환가치의 원리를 깨닫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주민들이 늘면서 기술 있는 몇 사람이 모여 오토바이 수리점을 차리기도 하고, 배터리를 구비해 전기를 공급하는 간이식 오락실이 문을 여는가 하면, 고리대부업자도 생겨났다. 소식통은 “북한에서는 사채업자가 없으면 돈이 유통 안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면서 “사채업자나 오토바이 수리점 등도 크고 작은 기업소에서 허가를 내주고 이윤의 일부를 공제하는 식으로 당국의 관리를 받는다”고 했다.

게다가 최근 평양시 평천구역에 설립된 3.26전선공장의 경우 독자경영체제를 도입해 잉여제품을 시장에 내다 팔면서 큰 이윤을 남기게 되자 노동자에 대한 월급도 개인의 기술 수준에 따라 차등 지급하면서 많게는 100만원을 받는 노동자가 생겨났다.

노동자 중에 고소득자가 생겨나면서 원래 국영상점에서만 판매가 가능한 냉장고, 세탁기, 텔레비전과 같은 전자제품까지 장마당에서 유통되고 있다고 한다. “상인들은 시장에 제품을 진열하지 않고 제품명을 적은 종이를 갖고 있다가 돈이 있어보이는 손님에게 살짝 보여주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물건을 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북한 간부들 사이에서 “차라리 노동자가 되고 싶다”는 말도 나온다고 한다. 북한에서도 달러만 있으면 외화상점에서 명품을 구입하고 벤츠 등 외제차를 모는 것은 어렵지 않다. 김정은 체제 들어 완공된 평양의 문수 물놀이장의 입장료는 현재 2만6000원이며, 평양시내 고급 요리점의 한끼 식사가 1인당 50달러인 것은 보통이라고 한다.

과거 북한에서 시장 억제 정책은 분명 있었다. 2006년 시장을 통제하고 계획경제 기능을 강화하는 전통 경제정책으로 회귀하려는 시도였다. 부분적으로나마 시장을 허용하는 것이 북한 당국의 체제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08년 이후에는 종합시장 철폐를 시도했고, 2009년 11월 화폐개혁을 단행하면서 대규모 도매시장의 대명사 격인 평성시장을 폐쇄한 적도 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북한은 중국에 거대 인력을 파견한 것을 비롯해 러시아에 2만명, 쿠웨이트에 4000여명, 아랍에미리트에 1000여명, 카타르에 2000여명, 리비아에 250여명, 나이지리아에 250여명 등 외화벌이를 위해 세계 각국에 인력을 송출하는 데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해외에 파견된 노동자들이 버는 외화를 당국이 일부 공제하는 금액도 만만치 않은 데다 노동자 가족들이 시장에서 외화를 유통시키면서 달러들이 고스란히 북한으로 유입되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에서 시장은 이제 당국을 유지시키고 사회를 견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폐쇄하기는 어렵게 됐다. 일각에서 북한의 공급체계가 회복되면 시장을 폐쇄할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이미 당국과 신흥 부자들이 형성시킨 유착관계가 있는데다 각종 뇌물 관행마저 뿌리깊어 간부들이 시장폐쇄를 찬성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더 많다.

북한에서 시장은 처음 당국의 계획과 무관하게 생계를 위한 본능처럼 형성된 것이 맞지만 이제는 당국이 관리하는 형식을 빌어서라도 허용하고 장려할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에서 신흥 부자가 많이 나오고 이들이 중산층을 이뤄서 북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 사회에서 부유층들은 자신의 부를 유지시키기 위해서라도 체제가 바뀌기를 원치 않을 것이라는 견해 때문이다.

김소정 기자 (bright@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