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박정희의 한국적 민주주의 신념을 파헤치다

최용민 기자
입력 2014.09.09 10:08
수정 2014.09.12 11:47

<서평>'비판적 거리두기' 강정인 교수의 현대정치사 비평서

'한국 현대 정치사상과 박정희' 강정인 저 아카넷 간.
한국 사회의 보수와 진보 양쪽 모두에 ‘비판적 거리두기’를 해온 강정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비동시성의 동시성’과 ‘민족주의의 신성화’를 양대 축으로 하는 한국 현대정치사상에 대한 책 '한국 현대 정치사상과 박정희'(강정인 저 아카넷 간)를 내놨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해방 이후 지난 70년 동안 한국이 거둔 민주화와 산업화의 성공 및 통일국가의 미완성을 염두에 두고 해방과 분단 이후 전개된 한국 현대정치의 이념적 흐름을 개관하고 그 특징을 밝힌다.

저자는 특히 박정희의 저서와 취임사, 신년사, 기념사·경축사, 특별담화문, 유시, 치사, 대통령선거 유세 연설 등 박정희의 육성이 담긴 문헌들을 방대하게 조사했다. 이를 바탕으로 책의 핵심 개념인 ‘비동시성의 동시성’과 ‘민족주의의 신성화’를 결부시켜 박정희의 정치사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다.

한국 정치사상의 흐름... 비동시성의 동시성과 민족주의의 신성화

저자는 1부에서 한국 현대정치의 이념적 지형이 겪어 온 총체적 변화를 살펴보고, 이어 그 이념적 지형이 드러난 특징을 ‘비동시성의 동시성’과 ‘민족주의의 신성화’라는 개념을 통해 영국과 프랑스 등 서구의 선발국과 비교해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정교화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중요한 이념 축인 자유주의, 보수주의, 민족주의, 급진주의라는 4대 사상의 성격과 위상에 대해 논한다. 4대 사상은 민주화 과정이나 민주화 이후의 한국정치에서 심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4대 사상이 서구에서 근대 초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지만 한국에서는 서구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고 말한다.

여기서 저자는 한국 현대정치의 현저한 특징으로 ‘비동시성의 동시성’과 ‘민족주의의 신성화’를 제시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근대 국가를 형성한 한국의 정치 특성상 이 둘이 한국의 현대 정치사상을 형성하는데 두드러진 특징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은 서구 자본주의 국가 중심의 ‘세계사적 시간대’와 비서구 후발 자본주의 국가인 한국의 ‘일국사적 시간대’가 낳은 시간차를 의미한다. 즉 같은 시간대를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시간대의 특성이 나타난다는 뜻으로 일명 ‘문화 지체’와 비슷한 개념이다.

‘민족주의의 신성화’는 말 그대로 민족주의가 최고 가치로 숭상된다는 뜻으로 저자는 이 두 개념을 통해 한국의 현대 정치사상사를 전개한다.

특히 저자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에 대해 세계사적 시간대와 한국적 시간대의 충돌에서 기인한 것으로 한국 현대정치의 이념적 지형을 규정하는 ‘구조적 조건’이고, 민족주의의 신성화에 대해서는 한국정치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형성된 ‘내용적 특징’이라고 저자는 규정하고 있다.

박정희의 정치사상... ‘민주주의의 한국화’에 대해서

저자는 2부에서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정치지도자 중 한 사람인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사상을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살펴보고 있다. 박정희 정권은 무려 18년 동안 군림한 해방 이후 남한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정권이기 때문이다.

특히 저자는 박정희의 정치사상을 민주주의, 근대화 보수주의 및 민족주의에 관해 그가 생산한 담론을 중심으로 검토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박정희의 담론이 ‘비동시성의 동시성’과 ‘민족주의의 신성화’라는 이념적 특징을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고찰한다.

저자는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에 대해 보수와 진보가 여전히 격렬하게 논쟁을 벌이는 것을 언급하면서도 각종 여론 조사에서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점을 언급한다. 특히 박정희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 중 하나는 21세기 한국이 근대화의 후발주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민주화와 산업화의 성과를 두루 누리는 국가로 도약했다는 점을 밝힌다.

그러나 한편으로 박정희 정권의 그늘도 여전히 짙게 드리워져 있다고 강조한다.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 인한 경제구조의 왜곡으로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다는 것, 박정희 정권이 심어 놓은 반공 이데올로기로 인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색깔론이 남북한의 평화와 화해 및 통일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속에서 저자는 박정희의 ‘민주주의 담론’을 분석하는데 박정희는 18년 동안 민주주의에 대한 일관된 입장을 견지했다고 설명한다. 그가 고안한 행정적 민주주의와 민족적 민주주의, 여기에 한국적 민주주의가 유사한 개념으로 박정희의 민주주의 담론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적 민주주의는 이러한 민주주의 담론의 정점을 이루고 있고 이는 곧 정당과 의회의 중요성 또는 민주적 정치 권능보다 강력한 지도원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민주정치에서도 하나의 강력한 지도원리가 확립되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같은 보수주의 노선으로 동일성의 사회를 실현할 바에는 민주적 정치권능보다 일관성 있는 강력한 지도원리가 요청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1963년 '국가와 혁명과 나')

특히 저자는 6장에서 박정희의 정치사상을 ‘반자유주의적 근대화 보수주의’라는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는데 이는 박정희가 자신의 권위주의 체제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반공과 근대화를 중심으로 한국 보수주의의 기본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반공을 국시의 제1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할 것"(1961년 '혁명공약 제1조')

특히 1971년 12월 6일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할 때에도 박정희는 안보위기의 관점에서 이를 정당화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라면... 그것을 수호하기 위해 필요한 때는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자유의 일부마저도 스스로 유보하고..."(국가비상사태 선언에 즈음한 특별담화문)

즉 저자에 따르면 뒤늦게 근대국가 건설에 나선 한국은 곧바로 ‘비동시성의 동시성’ 상황에 놓이고 사회가 혼란을 겪는 동안 박정희가 ‘민족주의’를 당대 지배이데올로기로 내세웠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민족주의로 억압적 권위주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한편 국가안보·경제발전이라는 목표 추진을 내세워 반공, (한국식) 민주주의, 보수주의 담론을 적극적으로 생산해냈다. 집권 이후 박정희는 일관되게 민족주의 담론을 펼쳤고, 반공주의적 입장을 고수했고 특히 끊임없이 ‘민주주의의 한국화’를 주장하면서 서구식 민주주의를 부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1987년 민주화를 거치며 보수 우익의 이념을 대변했던 ‘비동시성의 동시성’은 해소되었고 ‘민족주의의 신성화’ 또한 약화했다고 평가한다. 특히 북한에 대한 체제상의 우위가 명백해지고 근대화라는 목표 역시 달성되면서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역시 민주화 이후 퇴조하지 않을 수 없다는 평가다.

아울러 박정희 신드롬도 그의 사상보다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결단력을 중심으로 국정을 이끌어 가는 박정희식 리더십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반공과 안보, 경제발전을 명분으로 한 권위주의 체제의 정당화도 이제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평가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반공과 근대화를 골자로 하는 그의 보수주의 담론이 ‘친북 좌파’ 또는 ‘종북’ 담론 등으로 변형을 거치면서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 보수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즉 이런 박정희 정치사상이 그 뒤 반공과 근대화의 보수 우파 사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저자는 분단 지속과 유산 때문에 반공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반북, 종북논란은 앞으로도 완강하게 지속되리라고 전망하고 있다.

최용민 기자 (yongmin@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