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연대라는 마약을 이젠 끊을 때가 됐다
입력 2014.08.01 11:09
수정 2014.08.01 11:14
<기자수첩>야합과 뒷거래의 상징이 된것을 야권만 '모르쇠'
급조된 야권연대가 결국 실패로 끝났다. 지난달 30일 전국 15개 선거구에서 치러진 재보선에서 야권은 4석만 얻는 데 그치며 참패했다. 전체 선거구 중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의 연대지역은 모두 3곳. 이 가운데 경기 수원정(영통)에 출마한 박광온 새정치연합 의원만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손학규 새정치연합 상임고문이 나선 수원병(팔달)과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가 출마한 서울 동작을에서 시너지는 없었다. 특히 동작을에선 1~2위간 격차(929표)보다 더 많은 무효표(1403표)가 생겼다. 무효표의 대부분은 노 전 대표에게 단일후보 자리를 양보한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의 표로 추정된다.
수원병에서 손 고문의 성적은 여론조사 결과만도 못했다. 선거에 앞서 실시된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손 전 고문은 김용남 새누리당 의원과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였으나, 본선에선 7.77%p 차로 패배했다.
그나마 수원정에서 박 의원이 승리한 것도 야권연대의 효과라기보단 김진표 전 새정치연합 의원의 후광효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수원정은 본래 김 전 의원의 지역구로, 김 전 의원이 내리 3선을 지냈을 만큼 야권 지지층이 많은 곳이다. 또 지난달 지방선거 때에도 야권 후보에게 몰표를 줬던 지역이다.
당초 야권연대가 성사돼도 박 의원이 임태희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힘든 싸움을 벌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으나, 본선에서 박 의원은 임 전 비서실장을 6.97%p 차로 눌렀다. 결국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된 선거 막바지에 김 전 의원이 박 의원을 지원한 것이 선거 승리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을 것으로 해석된다.
비록 박 의원에게 야권 단일후보 자리를 양보하고 사퇴한 천호선 정의당 대표가 선거기간 내내 7% 내외의 지지율을 유지했으나, 이는 당선 가능성이 큰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유권자의 쏠림현상 때문에 야권연대가 성사되지 않았어도 박 의원에게 일부 흡수됐을 것으로 보인다.
또 박 의원과 김 전 비서실장간 격차가 천 대표의 지지율과 비슷했던 점을 고려하면, 천 대표의 양보 없이도 박 의원이 당선됐을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이번 재보선에서 야권연대는 명백히 실패했다. 시기적으로는 사전투표를 하루 앞두고 성사돼 후보 단일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투표장을 찾은 유권자들이 존재했고, 방법적으로는 정책연대와 가치연대 등의 과정 없이 선거 승리만을 위해 급조돼 유권자들에게 식상함만 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종전의 야권연대는 주로 정책과 공약에 대한 공감대를 전제로 이뤄졌다. ‘4대강 사업 반대’로 뭉쳤던 2010년 지방선거 경남도지사 선거와 ‘무상급식’ 공약을 내세웠던 2012년 국회의원 총선거가 대표적이다. 이 중 2010년 경남지사 선거 때에는 예상을 뒤엎고 야권 단일후보였던 김두관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2012년 총선 때 야권은 유리한 국면 속에서도 새누리당에 과반 의석을 내줬지만, 이를 야권연대의 실패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김용민 막말’ 논란으로 민주통합당이 부진한 가운데에서도 통합진보당은 원내 13석이라는 창당 역사상 최다 의석을 확보했다. 실패한 것은 연대가 아닌 민주당이었다.
같은 해 대통령 선거 때에도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새정치공동선언문을 작성하고, 공약을 조율하는 등 정책연대에 충실했다. 결과적으론 협상이 결렬돼 안 후보가 일방적으로 후보직 사퇴를 선언했지만, 이전까지의 과정은 유권자들의 충분한 공감을 얻었다.
정책과 가치를 전제로 한 연대의 가장 큰 강점은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의석을 빼앗거나 집권여당을 심판하겠다는 차원을 넘어서 공통공약을 통해 미래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성사된 대부분의 야권연대에는 아무런 가치도, 기준도, 철학도 없었다. 그저 의석을 나눠먹기 위한 묻지마 연대에만 치중하면서 가장 아름답지 못하고 구태스러운 모습을 연출했다.
이번 재보선에선 새정치연합의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노 전 대표에게 단일후보 자리를 양보하자 각각 수원병(팔달)과 수원정(영통)에 출마했던 정의당의 이정미 대변인과 천호선 대표가 후보직을 사퇴했다. 후보 단일화와 관련해 아무런 협상 과정도 없이 말 그대로 선거구를 나눠먹은 것이다.
연대해야 할 정책도, 공약도 없다면 뭣 하러 따로 정당을 만들어 후보를 공천하는지 모르겠다. 정당이란 가치를 지향하는 집단이 아니던가. 앞으로도 이런 식의 연대를 계속할 것이라면 차라리 당을 합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이 합쳐지니 새정치민주정의연합쯤으로 말이다.
정당간 연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식의 연대는 안 된다. 단순히 두 개 먹겠다고 한 개를 내어주는 것은 연대가 아니다. 새누리당의 표현처럼 지저분한 야합이고 뒷거래일 뿐이다. 또 이런 식의 연대가 이제 국민에 먹히지 않으리란 걸 당사자들도 알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