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연출·각본 벵거…아스날 '9년째 용두사미' 이유
입력 2014.03.12 09:59
수정 2014.03.12 22:23
시즌 초 낙점한 베스트11에 지나친 의존도
정작 중요한 경기에 체력 방전 '편협 기용' 도마
아스날 아르센 벵거 감독(65·프랑스)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UEFA 챔피언스리그 ‘4년 연속’ 16강 탈락 등 9시즌 연속 무관 위기에 놓이자 아스날 서포터들도 마침내 인사불성이 됐다.
아스날은 12일(한국시각) 독일 알리안츠 아레나서 열린 ‘2013-14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바이에른 뮌헨과의 원정경기에서 1-1 무승부에 그쳤다. 1·2차전 합계 1-3으로 8강 진출이 좌절됐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였지만 수비에 급급했다. 전반에만 뮌헨에 7차례 슈팅을 허용했다. 정신없이 얻어맞던 아스날은 뮌헨이 때리다 지친 틈을 타 기습적인 슈팅을 두 번 날렸을 뿐이다.
진작 나왔어야 할 뮌헨의 선제골(슈바인슈타이거)이 후반 9분 터지자 벵거 감독은 망연자실했다. 아스날은 포돌스키가 빛바랜 동점골로 추격했지만, 후반 급격한 체력저하로 전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많은 아스날 팬들이 SNS를 통해 벵거 감독의 지키지 못할 약속을 꼬집고 나섰다. 벵거 감독은 뮌헨과의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뒤집기 쇼를 보여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또 심판진을 향해 “(뮌헨의) 속임수에 당해서는 안 된다. 공정한 경기를 원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다시 한 번 ‘양치기 아저씨’가 되고 말았다. 심판 판정은 뒷말 없었고, 아스날은 뒤집기는커녕 무승부도 감지덕지할 만큼 일방적으로 맞았다. 특히, 후반 아스날 선발진의 ‘체력 부침’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아스날 팬들이 가장 문제 삼고 있는 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지독한 선발진 혹사로 정작 중요한 경기에서 체력이 방전된다. 아스날 선발진은 불과 4일 전 에버턴과의 FA컵 8강전 대혈투를 치렀다.
물론 바이에른 뮌헨전은 ‘총력전’으로 나서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는 벵거 감독의 편협한 선수 활용법이다. 평상시 후보군에도 꾸준히 기회를 줬다면 뮌헨전에서 선발진의 급격한 체력 부침 따윈 겪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벵거 감독은 이미 아스날 팀 내부에서도 신뢰를 잃었다. 선발진은 선발진대로 ‘강행군’에 불만을 토한다. 후보군은 기회를 받지 못해 서운한 감정이 쌓여간다. 직접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벵거 감독의 전술을 비판하기도 한다. 선수뿐만이 아니라 일선 지도자마저 벵거 감독의 옹고집이 안타까울 정도라고 입을 모은다.
전 러시아 대표팀 아드보카트 감독(2012유로대회 후 사임)과 덴마크 모르텐 올센 감독 등이 그들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지난 2011년 잉글랜드 일간지 '더 선'과의 인터뷰에서 “벵거가 아르샤빈을 매 게임 20분만 활용했다”며 “아르샤빈은 90분을 능히 소화하는 선수다. 벵거가 (사심 없이) 아르샤빈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아드보가트 감독의 발언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정확한 진단이다. 제니트 감독시절 제자 아르샤빈의 잠재력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아르샤빈은 지구력과 뒷심이 좋은 선수다. 경기종료 직전 곧잘 골을 넣어 ‘추가시간 사나이’로도 불린다.
아르샤빈 또한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처음 아스날에 왔을 때 벵거는 나를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는 나를 차버렸다”며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 벵거는 축구에서만큼은 지독할 정도로 자신의 철학을 고수한다. 주위의 어떤 조언도 귀담아 듣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한다”며 외곬 벵거 감독의 팀 철학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토했다.
아르샤빈 뿐만이 아니다.
니콜라스 벤트너는 최근 덴마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6살 때 아스날에 왔지만 벵거 감독은 나를 가지고 놀았다. 이적을 가로막으면서도 출장시키지 않는다. 도대체 의중을 모르겠다”고 하소연한 바 있다.
벤트너에게 불행 중 다행이라면 아스날과 달리, 덴마크에는 자상한 스승이 있다는 사실이다. 14년째 장기 집권중인 덴마크 국가대표팀 모르텐 올센 감독이다. 올센 감독은 “벤트너 재능을 의심하지 않는다”며 지난 6일 열린 잉글랜드와의 원정 평가전에 호출했다. 이날 벤트너는 선발로 출전해 잉글랜드 문전을 수차례 위협했다.
가나 출신 프림퐁도 아스날 시절 트위터를 통해 “(리그컵 출장 확률을 묻는 팬의 질문에) 내가 ‘백인’이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심장한 글을 남기기도 했다.
영국 언론조차 벵거의 편협한 선수기용을 비판한 적 있다. 최근 박주영이 그리스와의 평가전서 결승골을 터뜨리자 영국 일간지 ‘데일리스타’는 "벵거야 보고 있나. 아스날에서 기회를 받지 못한 박주영이 멋진 골을 터뜨렸다"라고 비꼬았다.
축구는 11명이 선발로 나서지만, 그들이 팀의 전부는 아니다. 주연 못지않은 ‘조연’이 존재한다. 팀원끼리 계속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선의의 경쟁을 펼쳐야 ‘팀 경쟁력’도 강화된다. 그런데 벵거 감독은 시즌 시작과 함께 일찌감치 11명을 낙점하고 리그와 컵, 유럽 대항전까지 돌린다.
감독·연출·각본을 맡은 벵거의 편협한 사고가 만든 아스날 영화가 ‘9년째 용두사미’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