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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주는 소치' 대관식 망친 추잡함에 날리는 조소

김태훈 기자
입력 2014.02.21 04:50
수정 2014.02.21 09:09

김연아, 완벽한 연기에도 불공정 판정으로 은메달 만족

퍼주기 논란 속 러시아 소트니코바 금메달 차지

‘피겨 변방’의 척박한 환경을 딛고 세계로 뻗어나간 김연아는 가까운 일본은 물론 유럽 피겨계의 보이지 않는 견제 속에 숱한 야박한 판정과 싸워야 했다. ⓒ 게티이미지

‘러시아 퍼주기‘가 결국 여제의 대관식을 망쳐버렸다.

‘피겨퀸’ 김연아(24)가 기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펼치고도 퍼주기 논란 속에 은메달을 받아들였다.

김연아는 21일 오전(한국시각) 러시아 소치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TES) 69.69점 예술점수(PCS) 74.50점으로 합계 144.19점을 받았다.

전날 74.92점을 받은 쇼트프로그램 점수를 더해 총점 219.11을 기록, 무려 224.59점을 받은 아델리나 소트니코바(17·러시아)에 이어 은메달에 만족했다.

카타리나 비트(49·독일) 이후 26년 동안 자취를 감췄던 여자 피겨 싱글 올림픽 2연패 위업을 기대했지만, ‘점수 퍼주기 논란’ 속에 안타깝게 실패했다. 김연아가 따낸 은메달의 가치는 매우 높다. 다만, 일관성 없는 판정에 불만을 있을 뿐이다.

점프에서 넘어지면서 큰 실수를 범했던 율리아 리프니츠카야(16·러시아)가 135.34점을 받을 때부터 찝찝했다. 결정적으로 소트니코바는 착지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음에도 무려 149.95라는 놀라운 점수를 받으며 총점 224.59점을 기록하며 1위로 올라섰다. 김연아가 밴쿠버올림픽에서 세운 세계신기록(228.56점)에 근접한 기록이다.

김연아의 연기는 기술적으로도 완벽했고, 예술적으로도 경지에 이른 감동을 줬다. 한국의 중계진 뿐만 아니라 해외 유수의 방송사 중계팀의 반응도 같았다. 하지만 소트니코바에 퍼준 가산점을 만회하기에는 모자랐다. 쇼트프로그램부터 유난히 박하게 굴었던 터라 제대로 된 판정이 나오기 어려웠다.

정상 등극 후에도 ‘불공정 견제’ 시달려

만 16세였던 지난 2006년 11월 시니어 국제무대 데뷔전을 치른 김연아는 그랑프리 6차대회(에릭 봉파르)에서 시니어 첫 국제대회 정상에 등극했다. 2008 세계선수권을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월드 챔피언’으로 이름값을 드높인 김연아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역대 최고점(228.56)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며 그랜드슬램을 이뤘다.

선수로서 더 이상 도전할 것이 없었던 김연아는 좀처럼 은퇴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스스로에게 진지하면서도 즐겁게 물어보길 몇 차례. 결국, 2012년 7월 기자회견을 통해 소치올림픽 도전을 선언했다.

당시 김연아는 “나 스스로, 또 국민들의 높은 기대치에 따른 부담이 없었던 게 아니다. 하지만 기대치를 낮추고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해 피겨를 목표로 삼는다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최고에 대한 부담 때문에 선수생활을 포기한다면 훗날 큰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아 다시 한 번 피겨를 즐기겠다”며 복귀 배경을 밝혔다.

1988년 카타리나 비트 이후 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금메달리스트들은 누구도 다음 올림픽에 도전하지 않았다. 짧은 선수생명 만큼이나 혹독한 훈련과 인간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수많은 제한을 감내해야 하는 피겨 스케이터들에게 금메달 하나면 충분했다.

그 명예를 바탕으로 프로 전향 후 아이스쇼 등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명예와 부를 축적하며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김연아는 달랐다. 피겨에 대한 열정,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애정으로 현역 복귀와 올림픽을 택했다. 녹슬지 않은 기량과 감출 수 없는 '피겨 끼‘를 바탕으로 김연아는 2년여의 공백을 깨고 현역으로 복귀하자마자 ‘여제의 건재’를 알리며 2013 세계선수권대회 정상에 우뚝 섰다.

하지만 늘 유령처럼 따라다니는 악재가 있었다.‘피겨 변방’의 척박한 환경을 딛고 세계로 뻗어나간 김연아는 가까운 일본은 물론 유럽 피겨계의 보이지 않는 견제 속에 숱한 야박한 판정과 싸워야 했다.

2008년 11월 ISU 그랑프리 시리즈 ‘컵 오브 차이나’에서 김연아는 첫 점프인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 루프 점프에 석연치 않은 '롱에지' 판정을 받았다. 김연아가 트리플 플립을 도약할 때 바깥쪽 날로 뛰었다고 판정한 것.

또 세계신기록(207.71점)으로 우승한 2009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어텐션’ 판정을, 2009-10 그랑프리 파이널 쇼트 프로그램 때는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 콤비네이션 점프에서 토룹의 회전수가 부족했다는 이유로 ‘다운 그레이드’ 판정을 받았다. 몇 차례 리플레이 화면을 봐도 완벽하게 기술을 소화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마치 외면이라도 하듯 전혀 다른 판정을 내려 공정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난해 우승을 차지한 세계선수권 때는 쇼트프로그램 트리플 플립 점프에서 롱에지 판정을 받았다. 스핀에서도 레벨3에 그쳐 70점(69.97)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에 외신들도 “심판들이 김연아 점프에 트집을 잡는다”며 비판했다. 오히려 카롤리나 코스트너(이탈리아)는 트리플 살코를 뛰다 넘어졌는데도 프리에서 134.37점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정상에 서기 전이나 후에도 김연아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소치 동계올림픽을 앞두고도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기술점수를 관장하는 3명의 테크니컬 패널 중 최종 결정권을 가진 테크니컬 컨트롤러가 개최국 러시아인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됐다.

각국 피겨 전문가들은 물론 러시아 피겨 담당 기자들도 김연아와 소트니코바의 채점표를 놓고 일갈했다. 실제로 북미 피겨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유럽 출신 심판이 러시아에서 개최된 이번 소치 올림픽을 벼르고 있었다”며 같은 유럽 선수 밀어주기 의혹 가능성을 제기했다.

세계 최고기량을 보유하고도 불공정과 싸워야 했던 안타까운 현실, 또 그런 어려운 상황을 기피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신뢰로 다시 뛰어든 김연아의 건강한 도전 가치는 메달에 다 담을 수 없다.

고개 숙일 필요도 없다. 이미 김연아가 최강이라는 것은 채점표를 작성한 심판진도 외면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그리고 이날은 소트니코바가 금메달을 획득한 날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여제를 밀어낸 피겨의 수치스러운 역사로 두고두고 조소의 대상으로 남게 됐다.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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