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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에 끼얹고 박주영 물어뜯고 '정당한가'

이충민 객원기자
입력 2014.01.08 08:51
수정 2014.01.08 16:26

아사다 마오-가가와 신지, 시련에도 무한칭찬

김연아-박주영, 언제나 도사리는 가혹한 마녀사냥

김연아(왼쪽)와 박주영은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스타지만, 고운 시선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 연합뉴스 /데일리안 DB

'가깝고도 먼 이웃’ 한국과 일본은 상반된 정서를 지녔다.

스포츠 스타를 향한 ‘양극단 시선’이 대표적인 예다. 일본은 대외적으로 자국 선수를 철저히 보호한다. 가가와 신지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2년차 슬럼프에 허덕여도 일본 축구계는 “가가와 장점을 살릴 줄 모르는 모예스 감독의 전술상 문제”라고 책임을 전가한다.

일본 피겨 간판 아사다 마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도 마찬가지다. 아사다가 고국에서 ‘거품 점수’를 받거나 실수투성이에 불과한 트리플 악셀에 집착해도 일본 빙상계는 “김연아와 큰 격차 없다. 노력하는 만큼 소치 올림픽에서 보상받아야 한다”고 기를 살려준다. 반면, 한국은 의견이 좀처럼 하나로 모이지 않는 편이다. 잘 나가다가 어느 순간 삐거덕거리면 비난 수위를 높이며 선수의 자존심에 위협을 가한다.

‘피겨퀸’ 김연아가 대표적이다. 김연아가 국내대회에서 비공인 세계신기록(80.6점)을 세우자 한 평론가는 “홈그라운드 이점이 작용한 거품 낀 고득점”이라며 달아오른 국민 정서에 얼음물을 끼얹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엔 선수생활을 잠시 접고 아이스쇼와 CF 활동이 잦아지자, 돈벌이에 집착한다며 거세게 몰아붙였다. 심지어 김연아의 학교생활까지 거론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을 향한 국민적 기대가 높지만, 올림픽 이후 여론이 또 어떤 향방으로 흘러갈지 가늠하기 어렵다.

박주영을 향한 마녀사냥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아스날에서 실패했다고 해서 박주영 축구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다. 실제로 홍명보 감독은 2012 런던 올림픽에 박주영을 데려갔고, 박주영은 실전감각이 부족함에도 스위스전 결승골, 일본과의 3·4위전 결승골을 터뜨려 한국에 사상 첫 동메달을 안겼다.

그럼에도 국내 많은 축구전문가들은 박주영을 매몰차게 평가한다. 축구 팬들도 너덜너덜해진 박주영 살점을 한 입씩 베어 물기 바쁘다. 자성의 목소리, 애국심을 배제한 객관적 평가는 나쁘지 않지만 지나쳐서 문제다. 미들스보로 시절 ‘품바’ 취급당한 이동국에 대한 냉소적 시선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박주영을 따돌린 아스날 벵거 감독의 판단이 무조건 옳은 건 아니다. 벵거는 학구파 명장임이 틀림없지만, 지나치게 고집스런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비판이 따라붙는다. 선발 11명에 집착하다보니 후보 자원은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됐다. 니콜라스 벤트너, 안드레이 아르샤빈, 마루앙 샤막은 한목소리로 “벵거의 의중을 모르겠다. 기회를 준다고 말하고서 벤치에 쳐 박아 놓는다. 그의 언행불일치에 화가 난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급기야 엠마누엘 프림퐁은 지난해 10월 트위터에서 ‘리그컴 출전이 가능한가’라는 한 팬의 질문에 “내가 영국인이고 백인이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심장한 글을 남기기도 했다. 물론 벵거 감독은 인종차별 스킨헤드족이 아니다. 프림퐁 발언 또한 실언에 불과하다. 다만, 벵거의 동양인 선수 평가기준이 일본으로 한정돼 서운할 뿐이다.

동양인 축구선수에 대한 벵거의 가치관은 일본 J리그 시절(1995-96 나고야) 정립됐다. 나고야를 1년간 맡으면서 그의 머릿속엔 '일본=아시아 톱 인프라' 공식이 선명히 각인됐다. 실력 또한 일본이 아시아 최고라고 말했다. 지난 1996년 아시아 위너스컵에서 나고야가 K리그 전통의 강호 울산을 5-0 대파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다. 맨유에서 활약한 박지성이 ‘J리그 출신’이라는 점도 질 높은 일본 축구환경 확신에 힘을 실어줬다.

문제는 일본 선수들의 단점도 꿰뚫었다는 사실이다. 학구파 감독답게 벵거는 “일본의 협동성과 조직력은 뛰어나지만, 개인기술이 부족하고 체력이 약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결국, 벵거의 머릿속엔 일본인=동양인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편견이 각인되고 말았다. 벵거의 고정관념은 자신이 영입한 이나모토 준이치, 미야이치 료, 박주영 홀대로 이어졌다. 한국과 일본의 운동신경은 극명히 다른데 벵거의 눈은 ‘거기서 거기’라는 잣대를 유지한다.

박주영은 챔피언스리그 마르세유전 부진으로 아스날 전력에서 제외됐다. 벵거가 박주영에게 유럽 출신들만큼 기회를 줬다면 어떻게 변모했을까.

일본 축구계는 이나모토에 이어 미야이치 료마저 아스날 투명 인간이 되자, 상처받은 료의 기를 살려주는 길을 택했다. 벵거를 향해 “키워주겠다고 데려가 놓고선 아스날 마케팅에나 이용한다”고 성토했다. 반면, 한국은 “벵거의 판단이 무조건 옳고, 박주영은 틀렸다. 그의 노력은 비효율적일 뿐”이라고 자학하고 있다. 심지어 박주영의 구단 행사 참여나 이발소 출입까지 문제 삼으며 조롱하고 있다. 타국에서 서러움을 받는 그들에게 필요한 건 조롱이 아닌 격려다.

이충민 기자 (robingibb@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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