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처형 보고도 '북 인권법' 9년째 표류
입력 2013.12.31 10:50
수정 2013.12.31 14:44
<2013 정치를 결산하다②>애초 통과 의지 없어
인권단체 "정치권 밀당 수단으로 전락 입장차만"
지난 5월 2일 탈북자 출신 국회의원인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과 북한자유주간 추진위원회 인사들이 국회 정론관에서 북한인권법 제정 촉구 성명서를 발표한뒤 나가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의 고모부인 장성택은 최근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에서 국가전복 음모죄로 사형 판결을 받았고, 판결은 즉시 집행됐다. 체포된 지 불과 나흘만에 벌어진 일이다.
장성택의 즉결처형이 알려지면서 전세계는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다시 문제를 제기했다. 권력의 제2인자도 이런 취급을 받는 상황에서 일반인들에 대한 인명 경시는 더하면 더 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란 주장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시민단체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북한인권의 재조명을 위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현재 북한에서 자행되고 있는 일련의 숙청 작업은 더 이상 북한의 인권에 침묵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일깨우는데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회에 계류 중인 북한인권법도 자연스레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여전히 여야 이견으로 연내 처리는 물론 19대 국회내 처리 가능성도 불투명하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지난 24일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발의한 5건의 북한인권법을 상정했다. 하지만 여야간 시각차만 확인하고 법안에 대한 세부 사항은 논의조차 하지 못한 채 결국 법안 처리를 내년으로 넘겼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북한 정권의 반인권적 행태를 막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북한인권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북한인권법이 남북 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북한 주민들의 실질적인 인권개선에도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며 반대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결국 북한인권법을 처리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것”이라고 일제히 입을 모았다. 정치권이 북한인권법을 정쟁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다는 주장이다.
북한인권법, 제17대 국회 첫 발의 이후 여야 이견차로 9년째 계류 중
실제로 북한인권법은 지난 2005년 8월 김문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전 의원(현 경기도지사)이 처음 발의한 뒤 총 10건이 제출됐지만 여야간 이견으로 자동 폐기되기를 반복했다.
17대 국회에서는 북한인권법이 외교통일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한 채 자동 폐기됐고, 18대 때는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의 단독처리로 외통위는 통과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를 넘지 못한 채 폐기됐다.
19대에 들어선 새누리당 윤상현, 황진하, 이인제, 조명철, 심윤조 의원이 순서대로 북한인권법을 발의했지만, 여전히 소관 상임위에 발이 묶여 있다.
새누리당이 발의한 북한인권법안은 △북한인권재단 설립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설치 △국제기구·단체 및 외국정부와 협력 △제3국 체류 북한주민 지원 △북한 인권 관련 민간단체 경비 지원을 골자로 하고 있다.
민주당은 여당의 북한인권법이 남북간 내정간섭 논란을 일으키고 반야당 성향인 탈북단체에 대한 지원에만 치우쳐 있다고 판단, 지난 2011년 6월 북한민생인권법안을 대응 성격으로 제출한 바 있다. 해당 법안이 제18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되자 심재권 의원이 지난해 12월 인도적 지원을 내용으로 하는 ‘북한주민인권증진법안’을 제출한 상태다.
장성택 처형 계기로 다시 불거진 북한인권법, 여야 입장차만 재확인
북한인권법을 대하는 여야의 시각차는 이번 장성택 즉결처형에 대해서도 여실하게 드러났다. 여당은 재차 북한인권법 처리를 촉구한 반면, 야당은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최경환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1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은 김일성가의 세습 왕조체제를 위해서는 어떤 무자비한 짓도 벌일 수 있는 집단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며 북한인권법의 처리를 촉구했다.
최 원내대표는 특히 “국내문제에는 온갖 생트집을 잡는 종북세력은 이번에도 북한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있다”며 “북한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민주당은 북한 자극 운운하며 북한인권법 제정을 기피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탈북자 출신인 같은 당 조명철 의원은 18일 성명을 통해 “권력의 2인자였던 장성택마저 항변 한 번 못해보고 처형당할 정도로 북한에서는 인간의 기본권이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며 “북한의 인권유린과 파괴행위를 더 이상 방치하는 것은 직무유기이자 책임회피”라고 지적했다.
조 의원은 “민주당이 북한인권 상황에 침묵하고 외면하는 것은 과거 민주화와 자유를 위해 쌓아온 업적을 훼손하는 행위”라면서 “민주당의 희생과 헌신으로 이룩한 민주화와 인권이 자신들의 기득권 쟁취를 위한 도구였다는 비난을 듣지 않으려면 북한의 참혹한 인권유린에 대해서도 분노하고 단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민주당은 북한인권법 처리에 부정적이다. 새누리당의 주장을 장성택 처형 이후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박용진 대변인은 18일 현안브리핑을 통해 “북한인권이라는 모자를 쓰고 생색을 내거나 정치적 선동만 앞세우는 태도는 북한인권에도 남북관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민주당은 ‘북한인권법’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북한주민의 실질적 인권향상을 위해 관련법을 제출해 놓았다”고 주장했다.
박 대변인은 이어 “(북한인권법은) 일부 탈북자 관련 단체를 살찌우는 게 아니라 북한주민을 살찌우고 인권을 꽃피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법 개정 논의 공세에 앞서 북한인권 호들갑이 아니라 북한주민 인권향상에 관심을 두는 새누리당의 진정성 있는 태도”를 촉구했다.
“북한인권법 두고 정치적 밀당만 하는 정치권, 애초에 통과시키려는 의지 없어”
이처럼 정치권이 북한인권법 처리를 두고 지지부진하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당초에 의지가 없다”고 혹평을 쏟아냈다.
서재평 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국장은 최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북한 주민들이 인권 유린을 당하는 부분에 국민 여론은 많은 공감이 이뤄졌지만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서로 상반되는 접근법을 갖고 있다”며 “정말 이것을 목숨 걸고 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서 사무국장은 이어 “새누리당은 지난 18대 국회 말미에 북한인권법을 직권상정 하지 않기로 하는 대신에 다른 법안들을 통과시켰다”면서 “북한인권법을 우선시하는 게 아니라 다른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밀고 당기기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정치적 접근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을 향해서도 “북한 주민의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인권법 제정이고, 말 그대로 상징적인 것”이라며 “이를 두고 민주당이 마치 북한을 향해 적대행위를 하는 것처럼 생각하니까 더욱 더 처리가 안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희태 북한인권개선모임 사무국장도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서로 다른 내용의 관련 법안을 내고 있다. 애초에 서로 법안 통과를 위해 협의할 마음이 없는 것”이라면서 “자기들끼리도 합의를 하지 않고, 서로 상대방의 책임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쓴소리를 날렸다.
김 사무국장은 이어 “그냥 ‘북한인권법’이라는 이슈를 갖고 있는 게 좋을 뿐이다. 해결의 의사가 없는 것이다”라며 “어떻게든 통과시키려면 미흡해도 서로 양보하고 해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서로 공격하는데 재미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비판했다.
물망초재단 이사장인 박선영 전 의원은 “국회 구성원들의 속성을 따져보면 당연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각자 정치적인 입장만 고집하는 상황에서 애초에 협의를 통한 통과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