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여전한 대기업 노조의 병폐
입력 2013.12.20 10:58
수정 2013.12.20 12:07
신제품 출시, 인력배치 등 노조 허락 받아야
무리한 단협조항 통해 인사권, 경영권 침해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가 지난 6월 25일 울산공장에서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 투쟁을 위한 출정식을 진행하고 있다.ⓒ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
기업은 근로자들을 필요한 곳에 배치하는 인사권과 관리·운영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경영권을 헌법으로 보장받고 있다. 헌법 제15조(직업선택의 자유)와 제23조(국민의 재산권 보장)에서 인사권과 경영권을 회사의 고유 권한으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기업이 노조로부터 이같은 고유 권한을 침해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강성노조를 둔 기업들의 경우 필요한 곳에 인력을 재배치하는데도 노조의 허락을 받아야하는가 하면, 신제품을 개발해도 노조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 생산할 수 없도록 단협(단체협약) 조항에 명시돼 있다. 업무에 태만하거나 잘못을 저질러도 징계를 내리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부 기업 강성노조는 단협 체결 과정에서 파업 등을 통해 이같은 권리들을 ‘쟁취’했다. 해당 기업들은 노조 측에서 이같은 단협 조항을 내세워 회사 고유권한인 인사와 경영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인력 재배치 노조 협의 통해야…인사권 침해
우선, 인사권과 관련된 단협 조항을 보자. 국내 최대 제조업 사업장인 현대·기아차의 경우 사측이 근로자를 필요한 곳에 배치할 수 있는 권한이 제한돼 있다.
현대차 단협 제43조(배치전환의 제한)를 보면, ‘조합이 부당한 배치전환이라고 생각해 이의 제기시 회사는 이를 조합과 협의한다’고 돼 있다.
이는, 차종별 수요 변동시 인원 재배치에 상당한 걸림돌이 된다. 물론, 노조가 배치전환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조와 협의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돼 기업의 신속한 수요 대응에 지장을 준다.
형제 회사인 기아차도 비슷한 조항이 있다. 기아차 단협 제29조(전환배치)는 ‘회사는 조합원의 전출입시 조합 및 본인과 협의, 변경된 근로조건에 대해서는 사전에 조합 또는 당사자와 협의해 실시한다’고 돼 있다.
대우건설의 경우도 단협 제23조(인사원칙) 6항에 ‘회사는 조합원의 직종을 변경해 전환배치 하고자 할 때는 사전에 본인 및 조합과 협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우건설의 단협 조항은 고용세습에 대한 내용도 담고 있다. ‘회사는 조합원이 업무상 사망 또는 상병으로 인한 퇴직시 본인 또는 그 가족의 요구가 있고 회사에 당해 인력소요가 있을 때는 그 배우자 또는 직계가족 중 1인에 한해 우선 채용하도록 노력한다’는 게 제23조 1항의 내용이다.
이는 울산지법으로부터 무효 판정까지 받은 조항이다.
한라공조 역시 단협 제23조(가족채용)에 ‘회사는 조합원이 업무상 또는 개인상병이나 질병으로 인한 사직 사유가 발생해 가족의 생계가 불가능할 경우 당사자의 요청이 있을 시 결격사유가 없는 한 배우자 또는 직계가족 1인을 고용한다’고 돼 있다.
인사운영의 바탕이 되는 취업규칙마저 노조와 협의해 개정하도록 돼 있는 사례도 있다. 만도의 경우 단협 제18조(취업규칙 개정)에 ‘회사는 단체협약에 준해 취업규칙을 개정해야 하며, 개정시 조합과 협의한다. 단, 조합원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조합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제품 생산도 노조와 협의…경영권 침해
신제품 생산이나 해외공장 운영 등 회사의 ‘경영권’에 해당하는 부분을 노조가 침해하는 경우도 각 기업의 단협 조항에 다수 포함돼 있다.
현대차 단협 제41조(신기술 도입 및 공장 이전, 기업 양수, 양도)는 ‘신기술 도입, 신차종 개발, 차종 투입, 작업공정 개선, 전환배치, 생산방식의 변경 노조와 심의·의결, 신차종 양산 맨아워(M/H) 및 UPH 조정시 조합과 사전 협의’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기아차 역시 동일한 조항이 있다.
이는 회사측이 신차종을 개발해 양산 체제를 갖추더라도 적기 생산·판매에 차질을 빚는 상황을 야기한다. 실제, 최근 들어서도 현대·기아차가 신차 출시 발표를 해놓고도 노조와 생산 협의가 안 돼 수개월 뒤에야 시장에 공급된 사례가 다수 발생해 왔다.
하도급 및 용역 운영에 노조의 허락을 맡도록 하고 있는 현대차 단협 제40조(하도급 및 용역전환)도 노조의 경영권 침해 사례 중 하나다. 이 조항은 ‘생산, 연구, 정비부문의 전부 또는 일부를 외주처리(모듈 포함) 및 하도급 또는 용역 전환 등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계획 수립시 60일 전 조합에 통보하고 노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심의·의결한다’고 돼 있다.
미국 자동차회사 GM의 한국 생산법인인 한국지엠 역시 생산운영 결정과 같은 경영권 측면에서 노조의 간섭을 받고 있다.
한국지엠 단협 제61조(신차종 양산, JPH조정, M/H기준) 1항은 ‘회사는 신차종 양산, M/H 및 JPH 조정시 안전, 시설 및 환경, 인원 등에 대해 노조 및 부서와 사전 충분한 협의를 통해 시행한다’고 돼 있으며, 2항은 ‘회사는 신차 투입 계획 확정 시 조합에 통보, 설명회를 실시하며, 고용과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칠 사안에 대해서는 노사 협의토록 한다’고 돼 있다.
이는 회사측이 투자시점을 놓치거나 적기 생산·판매 대응에서 차질을 빚는 상황을 야기할 수 있는 조항이다.
강성노조의 경영권 침해 사례.ⓒ데일리안
징계위원회 노사 동수…징계권 침해
강성노조가 있는 기업들은 직원이 업무에 태만하거나 잘못을 저질러도 회사가 징계를 내릴 방법이 사실상 막혀 있다.
한라공조와 만도는 직원 징계시 징계위원회를 통하도록 돼 있지만, 징계위원회 구성원을 노사 동수로 해 사실상 징계를 내릴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한라공조 단협 제30조(징계위원회 구성)와 만도 단협 제26조(징계위원회 구성)는 징계위원회를 노사 각 5인씩으로 구성하는 내용을 공통적으로 담고 있다.
기아차의 경우 아직 사측이 받아들이진 않았지만, 노조 측에서 매년 단체교섭 과정에서 징계위원회 노사동수를 요구하고 있다.
대신, 기아차는 노조가 징계 사유를 제한하거나 징계를 무력화시키는 단협 조항을 갖고 있다.
기아차 단협 제37조(징계) 2항은 ‘판매부진을 이유로 별도의 징계 및 전보조치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측이 업무부진자에 대한 판단이나 조치를 취할 수 없도록 사전 봉쇄한 것이다.
또, 제42조(해고 및 부당징계)는 ‘부당징계 판명시 출근시 당연히 받았어야 할 임금은 물론 해고 기간에 대해 평균임금 200%를 즉시 가산 지급 및 소송 경비 지급한다’고 돼 있다. 사측이 징계를 받은 근로자가 제기한 소송 등에서 패할 경우 받는 부담을 강화해 자체적으로 합당한 징계라고 판단한 경우에도 쉽게 징계를 내릴 수 없도록 하는 조항이다.
현대차 역시 부당징계와 관련해서는 기아차와 동일한 단협 조항이 있다.
“강성노조 횡포, 한국 기업환경 악화 원흉”
인사권과 경영권이 회사의 고유 권한이고, 일부 기업의 단협 조항들이 회사의 경영권 및 인사권 침해 행위에 해당한다는 점은 그동안의 판례를 통해서도 증명된다.
인사명령이 사용자 고유권한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기업이 그 활동을 계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을 재배치하거나 그 수급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 불가결하므로, 대기명령을 포함한 인사명령은 원칙적으로 인사권자인 사용자의 고유권한에 속한다”고 인정한 대법원 판례(대법 2005다3991)가 있다.
또, “전직발령 및 인사발령에 따라 근로자가 제공해야 할 근로의 종류나 내용 또는 장소 등에 변경을 가져오는 불이익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사용자가 업무상 필요해 노동력을 재배치하는 등 그의 인사권한에 속하는 사항”이라는 판례(대법2007다54498)도 존재한다.
행정법원에서도 “근로자의 타지역 이동, 전환배치에 관한 사항은 사용자의 권한으로 노조에서 교섭을 요구하더라도 사용자가 이에 응해야 할 의무는 없다”며, 전환배치는 노조가 침범할 수 없는 회사 권한이라는 점을 인정한 사례가 있다.
회사의 징계권과 관련해서는 “근로자의 상벌 등에 관한 인사권은 사용자의 고유권한으로서 그 범위에 속하는 징계권 역시 사용자에게 인정되는 권한”이라는 판례(대법94다21337)와, “사용자가 근로자를 비노조 조직으로 승진발령하자 이에 불응해 직무를 포기하고 인사발령 취소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인 자에 대한 회사의 징계해고처분은 정당하다”는 판례(대법 91누5020)가 있다.
정리해고 및 구조조정 실시가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 대상이 아니라고 해석한 판례도 있다. “기업의 구조조정 실시 여부는 경영 주체에 의한 고도의 경영상 결단 사항으로서 이는 원칙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이를 반대하기 위한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는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례(대법2002도7225)가 대표적이다.
기업들은 이처럼 회사 고유권한인 인사권과 경영권을 침해하는 강성노조의 횡포가 해당 기업은 물론, 한국 경제와 구성원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인사권 및 경영권을 침해하는 단협 조항들은 명분상으로는 조합원들을 사측의 횡포로부터 보호하겠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노조가 이를 악용해 사측의 정당한 인사권·경영권 행사를 막는 횡포를 부리는 경우가 다반사”라면서, “이같은 강성노조의 존재는 한국의 기업환경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며, 기업들이 생산능력 확충을 물색할 때 한국이 아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