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팀, 그 이름의 책임감 (2) - 1996년 드림팀
입력 2006.08.02 23:02
수정
진정한 드림팀은 92년 드림팀이다. 그러나 매 올림픽마다 끊임없이 제기되는 궁금증이 있다. 특히 팬들 사이에서 자주 발생되는 논쟁거리 중 하나가 바로 92년 과 96년 드림팀, 둘의 우위 논쟁이다.
전문가들조차 두 팀의 비교우위를 꺼릴 정도로 실력은 막상막하다. 만약 시간을 초월해 두 팀이 맞붙게 된다면 실력 차가 아닌 부상 등 통제 불능의 변수에 의해 승부가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다.
92년 드림팀을 재조명했던 지난 기사에 이어 이번엔 96년 드림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한다.
▲ 드림팀Ⅲ (96년) - 여전히 최강, 공포의 드림팀
92년 드림팀이 상대팀에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면, 96년 드림팀은 상대팀에 좌절을 안겼다. 대회 8전 전승, 득실점 마진 31.8점이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 유고슬라비아와의 결승전에서 95-69로 가볍게 승리한 미국은 자국에서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경험이 풍부한 레니 윌킨스 감독을 필두로 총 12명 중 8명이 30세를 넘긴 관록의 드림팀이었다. 이에 샤킬 오닐, 앤퍼니 하더웨이(이상 당시 25세), 그랜트 힐(당시 24세) 등 젊은 선수들은 리그에서 최절정의 활약을 보였다.
그는 3만 4천 6백여 명의 관중이 둘러싼 결승전에서 최다 득점(28)을 기록했다. 이는 스테판 마버리(04년 스페인 전-31득점), 찰스 바클리(92년 브라질 전-30득점), 에드리안 댄틀리(76년 유고 전-30득점)에 이어 역대 미국 농구대표 팀 사상 한 경기 최다 득점 4위의 기록이다.
꾸준히 돌파를 시도했던 하더웨이의 플레이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브라질 전에서 나온 하더웨이와 힐의 속공 장면은 가히 대단했다. 하프코트를 넘어선 하더웨이는 힐에게 앨리웁 패스, 힐은 앨리웁 덩크를 시도했고 그것은 순식간에 진행됐다. 아쉽게 볼은 림을 강하게 맞고 튕겨져 나갔지만 드림팀의 위력적인 속공 능력을 여실히 보여준 장면이다.
그해 NBA 준우승으로 전성기를 보내던 게리 페이튼은 최고의 포인트 가드답게 대회 기간 중 팀 내 최다 어시스트인 36개를 기록했다. 스카티 피펜도 득점, 어시스트, 스틸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경기를 조율했다.
96년 드림팀도 약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92년 드림팀의 골밑보다 더 기대를 모았던 올라주원-오닐의 센터 라인업.
그러나 팀 내 최고의 리바운더는 바클리였다. 바클리는 경기당 평균 6.6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올라주원(3.1리바운드)과 오닐(5.3리바운드)보다 골밑에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줬다.
게다가 바클리의 대회 야투 성공률은 무려 81.6% (31/38). 이는 역대 올림픽 미국 농구대표 팀 사상 최고 기록이다. 2위는 68년 스펜서 헤이우드가 기록한 71.9% (64/89)다.
96년 드림팀은 경기당 평균 팀의 총 리바운드 개수에서 1992~2000년까지의 세계대회 중 92년 다음으로 최저 기록을 세웠다. 92년 드림팀(36개)보다 2개가 많아진 38.1개. 압도적인 보드 장악력을 보여주지 못했던 00년(42.6개) 드림팀에 비해서도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외곽 슛 능력도 마찬가지다. 3점 슛 성공률이나 성공 개수 면에서 92, 96, 00년 대회 중 최저치를 기록했었다. 39.3%(48/122)의 성공률은 92년(40%, 54/135)과 00년(42.2%, 54/128) 드림팀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바클리는 3점 슛이 백보드 모서리에 맞는 황당한 상황을 연출해 해프닝을 낳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2년 드림팀과 같이 세계를 압도할 수 있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미국 드림팀의 적은 자신들이었지, 타 국가가 아니었다는 점. 100% 전력 발휘를 하지 않았더라도 세계를 압도할 수 있었다는 것은 미국과 그 외 국가들의 실력 차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런 의미에서 상대 팀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조 드림팀에 이어 미국 농구의 자존심을 한껏 드높였던 96년 드림팀. 92년 드림팀과 함께 역대 최고의 팀으로 팬들은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