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 해산 '다른 생각'과 '위협'의 길목에 서다
입력 2013.11.06 10:59
수정 2013.11.06 11:14
<칼럼>뿌리 뽑아야할 종북, 단 사상의 자유는 다치지 않게
엉덩이는 패배적 개념이다. ‘꽁무니를 빼다’, ‘줄행랑을 치다’는 등의 표현에서 비롯됐다. 뒤를 보이는 것이 패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른 의미도 있다. 권위적 개념이다. ‘엉덩이로 깔고 앉는다’, ‘짓누른다’ 는 등의 표현이 그렇다.
엉덩이가 패배적 개념으로, 권위적 개념으로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생물학적 의미가 아닌 것으로도 말이다.
쓸데없는 의미 부여일 수도 있다. 사람의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해석을 하고 분석을 한다. 이성적으로 보기도 하고, 감성적으로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생각이라는 특별한 능력 탓이다. 인류의 역사는 그러한 인간의 특별한 능력 탓에 변화를 해왔다.
생각의 차이로 전쟁을 하기도, 평화를 갈구하기도 했다. 편을 가르기도 하고, 공동체가 되기도 한다. 아마 인류가 생존하는 한 이러한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국가는 생각이 같은 사람만 있는 것인가. 결론은 아니다.
북한이나 일부 특정한 국가들은 그럴 수 있다. 통치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을 정형화하는 것이다. 국가의 사유화다. 군주적 국가와 다름없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헌법에 명시된 내용이다. 국민주권주의며, 수많은 다양성을 가진 국가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키는 수호적 의미다.
통합진보당의 해체가 진행되고 있다. 헌정사상 최초의 일이다.
헌법에 위배된 강령으로 국가체제를 흔들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보수진영은 박수를 치고 있다. 진보진영은 유신과 정치탄압을 운운하며 비난한다.
판단의 기준은 간단하다. “그들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인가”, 아니면 “우리를 위협하는 사람들인가”이다.
단순히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단죄한다면 위험하다. 국민주권과 자유민주주의를 호도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반대라면 정당하다. 공동체는 보호받아야 한다. 적으로부터 방어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이 다른 것이 아니라 영역이 다른 것이다. 정원에 핀 수많은 꽃들을 시들게 하는 독초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통합진보당은 오해를 살만했다. 북한의 이념적 계승을 느낄 수 있었다.
강령 전문에는 ‘민중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진보적인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하겠다’, ‘특권 부패 정치구조 척결과 진보적 민주정치를 위하여’ 등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표현이 많다.
또 ‘일하는 사람이 주인’이라고 하는 이른바 민중 주권주의를 주장했다. 우리 헌법의 국민 주권주의와 배치된다.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종속적 한미동맹체제를 해체하자는 내용도 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자주적 평화통일을 추구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북한의 고려연방제 통일안과 일치한다.
이제 판단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180일 내에 결론이 난다.
끝없는 논란을 일으켰던 그들의 정체가 결정된다. 생각만 다른 사람들인지, 아니면 우리를 위협하는 체제위협의 세력인지를 말이다.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행여 작금에 나타나고 있는 종북논란이 생각과 사상을 협소하게 만들지 않을까하는 염려다.
이번을 계기로 그러한 악순환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좌는 종북 위협세력이며, 우는 애국세력이라는 등식을 고착화시켜서도 안 된다. 민주주의의 다양성은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발전해야 한다. 그것은 끝없는 견제와 비판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다. 모두가 같은 생각만을 갖는다면 미래는 어둡다. 매사가 과유불급이다.
엉덩이를 보고 패배적으로 생각하든, 아니면 권위적으로 생각하든, 그건 내 자유다. 내 생각인 것이다. 존중되어야 할 가치인 것이다.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과는 다르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