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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욱에 진영에 사초 실종...이게 다 네탓이다

이상휘 선임기자
입력 2013.10.04 11:24
수정 2013.10.04 11:30

<칼럼>여의도는 지금 '핑계없는 무덤'…머리부터 숙여라

국회의사당 전경.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삼체'가 있다.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도 있다

삼체는 허세와 권위를 풍자한 말이다. 첫 번째 “체”는 ‘없는데 있는체’, 두 번째 “체”는 ‘모르는데 아는체’, 세 번째 “체”는 ‘못사는데 잘사는체‘다.

‘핑계없는 무덤’은 나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격언이다. 역시 허허로운 자기방어적 발상에서 비롯되는 말이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고, 결혼을 해 싸움이 잦으면 궁합을 탓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조상탓을 한다.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말은 있다’는 속담도 같은 맥락이다.

잘못된 결과는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삼체는 ‘못난 자신을 감추는 것’이요, 핑계없는 무덤은 “잘못된 행동에 대한 변명‘이다.

적당히 허세가 있어야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표현이다. 나는 괜찮은데,주위와 주변 탓에 잘못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민족의 잘못된 의식을 비꼬는 말들이다.

솔직함이 있어야 당당해지는 것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유달리 우리 민족의 민요에는 신세타령이 많다. 변명이 많다는 말이다.

“내 탓이요,내 잘못이요”라고 하지 않는다. 남이 무시할까봐 없는체도 모르는체도 하지 않는다. 쓸데없는 자존감이 강하다는 해석이다. 잘못과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철저한 자기방어적 인식을 꼬집는 것이다.

사료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다.

조선조 숙종때 김창업의 ‘연행일기’에서다. 김창업이 청나라에 갔을 때 중국 땅에 사는 안씨 가문을 언급한 이야기다.

중국 안 씨 가문에 대대로 전해오는 ‘안씨가훈십조’가 있었다고 한다. 이 가훈십조는 안씨들이 대대로 철저하게 지켜온 가풍이었다.

이 중 눈에 띄는게 있다. “잘된 일은 반드시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잘못된 일은 반드시 내 탓으로 돌려라”는 대목이다. 후손들은 성실하게 가훈을 지켰다. 이 때문에 중국 땅에서는 ‘안씨’들을 공경하고 예를 갖추었다고 전해진다. 아무리 못살고 못 배워도 말이다.

세상이 시끄럽다. 남북정상회담록이 대통령기록관에 없다. 중요한 사초가 사라졌다. 야당에서는 ‘왜 하필 이때 검찰이 이런 발표를 하느냐,국면전환용 아니냐“ “봉하이지원에 있으니 없어진게 아니다”는 등등의 변명을 한다.

채동욱 전 창장은 혼외 아들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도통 아리송하기만 하다.

진영 전 장관은 왜 중도에 사표를 던졌는지 청와대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속시원한 답이 없다.

뭐가 뭔지 국민들은 헷갈리는 것이다. 정직하지 못한 까닭이다. 정치가 바로서야 나라가 발전한다는 말이 있다. 바로선다는 것은 투명하고 솔직한 것을 의미한다.

국민이 혼란스러워하는 것에 누구 하나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이 없다. 행여 나섰다가 돌팔매라도 당할까봐여서 인지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커튼 뒤에서 나오지 않는다.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사태를 더욱 헷갈리게만 하고 있는 것이다. 잘못 되었으면 사과를 하면 될 것인데, 그래서 용서를 구하면 될 것인데 말이다.

우선은 ‘아니다’부터 시작이다. 핑계와 ‘아닌체, 모르는체’부터 하는 것이다. 이러니 자꾸 억측과 유언비어가 난무할 수밖에 없다.

진실은 뭔지도 모르게 흐려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그렇다. 어쩌면 그것을 의도적으로 획책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잘못된 생각이다.

역사와 진실은 어떤 역경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조금은 희석되고 모면할 수 있으나 영원은 없다는 말이다.

지난 시절, 우리가 너무 가난해서 그런지 지나치게 핑계가 많다. 그리고 인정을 하지 않고 방어에만 급급한 모습이 지나치다.

바꿔야 할 것이다. 대통령 기록관에 정상회담록이 없다는게 진실이다. 그러면 그것에 대해 먼저 머리를 조아리는게 도리다.

혼외자 아들이 있든 없든, 공직자로서 국민들에게 혼란을 줬다면 잘못된 일이다.

장관의 도리를 못했다면 그것에 대해 사과를 먼저 해야 하는 것이다.

변명과 핑계가 나라를 아프게 하는 것이다. 솔직하지 않는 허세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굳이 중국 땅 “안씨가훈십조‘를 들먹였다. 우리가 그들보다 의식이 못한게 뭐가 있겠는가 싶어서다.

잘못을 먼저 인정하는 의식, 핑계보다는 진실을 설명하는 진지함, 남의 탓이 아닌 내 잘못으로 먼저 말하는 도리,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것이 사회를 혼탁하게 만들지 않는 기본임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정치권부터 말이다.

이상휘 기자 (shon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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