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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연금 차등 지급, 공약 수정 아니라 정상화"

이충재 기자
입력 2013.09.26 17:35
수정 2013.09.26 17:40

한국선진화포럼, '증세 없는 복지 과제' 토론회

26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한국선진화포럼이 개최한 ‘증세 없는 복지의 과제’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한국선진화 포럼 제공

“국민들이 복지 문제에 있어서 ‘얻는 것’과 ‘부담하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26일 서울 중구 명동에서 한국선진화포럼이 개최한 ‘증세 없는 복지의 과제’토론회에선 뜨거운 이슈인 박근혜정부의 복지정책이 도마에 올랐다. ‘증세 없는 복지는 가능한가’, ‘재원 마련은 어떻게 하나’ ‘복지방향은 어디로 가야 하나’는 등 복지논란을 둘러싼 당면 과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토론자들은 박근혜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가 불가능한 현실에서 복지공약의 궤도수정이 불가피하다는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복지수준을 현재보다 끌어올려야 한다’는 점과 ‘재원마련을 위한 조세정의 확립이 우선’이라는 데에도 한 목소리를 냈다. 다만 재원마련 방안 등 세부적인 부분에선 이견을 보였다.

특히 박근혜정부가 65세 이상 국민 중 소득하위 70%에게 월 10만원~20만원의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해 차등지급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선 ‘정상화’라는 주장이 눈길을 끌었다. ‘모든 노인에게 매월 20만원 지급’이란 대선 공약에서 후퇴한 것이 아닌, 나라곳간 사정을 반영한 공약이행 과정이라는 것이다.

"모든 노인에 20만원씩 줬으면 '미래를 안보는 대통령'이라고 얼마나 욕했겠나"

김용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교수는 기초연금 논란과 관련, “65세 이상 가운데 잘사는 상위 30%에게 지급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재정 형편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의 일괄 지급은 소득이 안정적인 계층에는 껌값도 안 되는 금액을 주는 격”이라며 “이 제도가 장기적으로 가능한지도 명확치 않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하위 70%에게만 월 10만원~20만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키로 한 것은 박근혜 복지의 시작”이라며 “돈이 넉넉하게 있으면 다 줬으면 좋지만, 재정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상위 30%에겐 연금을 지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이번 박근혜정부의 발표는 원래의 공약에서 여론의 눈높이에 맞게 낮춘 것”이라며 “공약을 그대로 이행했으면, 연간 3~4조원이 들어간다. 그렇게 했으면 미래를 안보는 대통령이라고 얼마나 욕했겠는가. 나라 망할 일이라고 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복지재원마련 방안에 대해선 “일단 내부 구조조정과 함께 향후 증세도 필요 할 것”이라며 “(야당 등에선) 부자 증세를 주장하지만, 부자 증세로 가능한 재원은 3조∼5조원에 불과하고, 결국 중산층이 증세를 용인하지 않으면서 국가채무를 늘리지 않는 복지 확대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언제까지 현금지급 할 텐가! 고용창출형 사회서비스로 전환해야"

대통령직인수위 고용복지분과 인수위원으로 활동한 안상훈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단순한 ‘현금급여 지급형 복지’가 아닌 ‘사회서비스’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복지국가 모형은 지속가능해야 하는데, 사회서비스를 강조하는 모형에서 정치-경제적 지속가능성이 높다”며 “사회정책의 내용구성을 20세기 현금급여 중심에서 21세기형 고용창출형 사회서비스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복지재원마련 방안과 관련, “권리와 의무의 조화는 보편적 가치이고, ‘세상에 공짜복지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공정한 재원분담의 전제조건으로 조세정의 확보가 필요하다. 단기적으로 증세부터 먼저 말하면, 조세정의확보를 위한 기반구축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사회적 해법으로 “증세를 포함한 부담과 복지의 조화에 관한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선거 때는 복지를 늘이자는 이야기만 할 수 있지, 세금 늘이자는 이야기는 할 수 없다”며 “복지를 선거정치에 맡겨선 안 된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기존 연구에 의하면, 북유럽형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성과가 두드러지지만, 그렇다고 ‘스웨덴식 보편모델’이 정답은 아니다”며 “한국과 스웨덴은 거시적 환경과 고령화 속도, 통일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 등이 다르다. 우리에겐 수준과 속도를 조절하는 한국형 복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복지부채 떠넘기기, 다음 세대를 식민지화 하는 것이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조전혁 명지대 교수는 복지정책과 관련해 젊은 세대에게 ‘아찔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국가채무 갚는 방법 가운데 과거엔 식민지를 두는 것으로 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다. 하지만 가능한 것이... 현재 세대가(복지지출 부채 등을 넘겨) 다음 세대를 식민지화 하는 것이다. 젊은 세대들이 유의해야 할 점이다.”

조 교수는 이어 “복지가 아젠다가 된 것이 최근인데, 복지가 한 번에 이뤄질 수도 없다”며 “현재 복지는 걸음마 단계인데, 성인까지 걸어가는 것 같다. 시작하면서 고치고, 또 고쳐야 할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도 “세상에 공짜복지는 없다. 물론, 현 세대를 위한 무상복지는 국채 발행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나중에 절대적으로 더 큰 부담을 받게 된다”고 꼬집었다.

반면,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부자증세가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유 교수는 “복지지출은 재정위기의 원인이 아니다”며 ‘부자증세론’을 폈다.

유 교수는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선 당연히 세금을 더 내야 하지만, 세금을 충분히 걷으려면 정부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며 “국민들의 조세저항이 강한데, 부자증세를 통해 수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복지국가는 돈이 많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며 “과감한 부자증세를 (통해 할 수 있고), 소득세 최고세율, 부유세 등을 이행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그는 이와 관련, “미국은 과거 소득세 최고세율이 70%였고, 케네디의 감세 이전에는 무려 90%를 웃돌았지만, 당시 자본주의의 고도성장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법인세 최고세율 25%, 조세부담률 22% 제고하는 방안 추진돼야"

황성현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도 “세율 인상 없이 복지공약을 이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소득세의 최고구간을 1억 5000만원 수준으로 낮추고,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는 근로자 비율을 축소하며, 법인세 최고세율을 2008년 이전 수준인 25%로 제고하는 방안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건전재정을 유지하면서 조세부담률을 21.5~22%수준까지 제고할 경우, 경제에 미치는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복지확충이나 안보태세 강화 등을 위한 상당한 재원확보가 가능하다”며 “정부와 여당이 조세정책 기조의 전환을 결정하면, 국회에서 세법 개정안 통과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황 교수는 “박근혜정부가 세율 인상을 포기하고 공약 축소부터 이야기하는 시각에 동의할 수 없다”며 “공약했던 정도의 복지 확대도 없이 늙어가는 우리 경제의 활력을 되찾고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증세 없는 복지 확충’에서 ‘증세 없는’은 수단이고, ‘복지확충’은 목표다. 애당초 수단과 목표가 잘못 조합된 것이 문제지만, 수단을 지키기 위해 목표를 바꾸자는 이야기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증세 없는 복지 확충’이라는 불가능한 정책기조에서 탈피해 부유층을 중심으로 점진적인 증세정책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증세라는 용어부터 제대로 알고 써야 한다”며 “증세는 국어사전에서 ‘세금의 액수를 들리거나 세율을 높임’이라고 정의하는데, 정부는 두 번째 뜻만을 마치 이 용어의 뜻인 것처럼 사용했다. 정부는 세율을 올리지 않았으므로 증세가 아니라는 데서 ‘말장난’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는 국격을 떨어뜨리는 코미디”라고 꼬집었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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