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이 가르쳐준 달리기와 진화에 관한 이야기
입력 2006.06.2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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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소개]베른트 하인리히의 <우리는 왜 달리는가>
동물과 인간의 생리학 연구를 바탕으로 한 실험적인 훈련을 통해 마흔한 살의 나이로 도전한 전미 100킬로미터 울트라마라톤 대회에서 놀라운 기록으로 우승을 거두기까지의 과정을 특유의 우아하고 경쾌한 필치로 그려냈다.
비록 저자 자신은 “보잘것없는 수준에 불과한 자신의 기록을 자랑할 생각이 없다”고 겸손하게 밝혀놓았지만, 스스로 고안한 마라톤 훈련의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어 마라톤에 관한 경험적 훈련 지침서로도 손색이 없다.
마흔한 살에 도전한 전미 100킬로미터 울트라마라톤 대회에서 세계를 놀라게 만든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 달리기에 매료된 과학자의, 세상에서 가장 독특한 마라톤 도전기.
이끼북스의 신간 『우리는 왜 달리는가Racing the antelope』(2001)는 미국의 저명한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의 저작이다. 동물과 인간의 생리학 연구를 바탕으로 한 실험적인 훈련을 통해 마흔한 살의 나이로 도전한 전미 100킬로미터 울트라마라톤 대회에서 놀라운 기록으로 우승을 거두기까지의 과정을 특유의 우아하고 경쾌한 필치로 그려냈다.
이 시대 가장 독창적인 생물학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베른트 하인리히는 뒤영벌의 체온 조절 메커니즘을 밝혀낸 『뒤영벌의 경제학』이라는 책 한 권으로 일약 생물학계에서 거물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동물들의 생리학은 인간의 달리기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
뒤영벌이나 박각시나방과 같은 종들은 땀을 흘리지 않고도 어떻게 외부의 기온에 상관없이 비행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일까? 인간과 같이 살과 피를 가진 새들은 어떻게 수천 킬로미터를 비행하는 놀라운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
세계적인 과학잡지 《네이처》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달리기 능력 보유자, 가지뿔영양은 시속 98킬로미터로 달릴 수 있다. 이는 경주마보다 두 배가량 빠른 속도이다. 그런데 이 같은 속도를 단거리 경주에서뿐만 아니라 장거리에서도 유지할 수 있다는 데 그 비결은 무엇일까?
베른트 하인리히는 이 같은 질문들에 대하여 해답을 찾아가면서 달리기 역학의 비밀을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이 밖에도 더위와 심각한 탈수 상황에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낙타에게서 과잉 열과 부족한 수분에 대한 해결책을 배우고, 구애하는 수컷 개구리의 합창에서는 장거리 경기에서 지구력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
바퀴벌레나 타조, 치타 등의 동물들을 통해서는 달리기 속도와 발의 무게 사이의 연관성을 검토하기도 한다. 또한 최대산소섭취량, 근섬유의 유형, 세포 활동, 두 발 보행의 기능, 식이요법 등 달리기와 관련된 인체 활동의 모든 것을 알기 쉽게 정리하고 있다.
이처럼 동물생리학과 동물행동학에 관한 연구를 인간의 경우와 비교, 분석하면서 얻어낸 성과를 가지고 베른트 하인리히는 직접 장거리를 달려보면서 가장 효과적인 경주 방법을 체득해나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마흔한 살의 나이로 도전한 1981년 시카고 전미 100킬로미터 울트라마라톤 대회에서 6시간 38분 21초라는 당시 세계최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80킬로미터 전미 기록 보유자 바니 클레커를 비롯해 돈 폴, 파크 바너, 레이 크롤위츠 등 쟁쟁한 장거리 마라톤 선수들이 참가한 대회였기에, 첫 출전한 마흔한 살의 과학자가 거둔 우승은 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왜 달리는가』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베른트 하인리히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사건이자 가장 영감을 주었던 일”에 대하여 남긴 기록이다. 특히 책의 말미에 경주를 벌이며 저자가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저자의 생생한 경험담은 따뜻한 감동을 전해준다.
“언론이나 구경꾼의 관점에서 볼 때 울트라마라톤은, 한 눈치 빠른 관찰자가 말한 것처럼, “페인트가 마르는 걸 지켜보는 정도로만 흥미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진실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울트라마라톤은 생리적이고 심리적인 측면에서 지구상의 그 어떤 스포츠보다 더 도전적이다. 울트라마라톤은 몇 분 몇 초의 핵심적 내용으로 환원될 수도 없다. 내가 울트라마라톤에 관하여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느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내가 100킬로미터 경주를 선택한 이유는 그것이 가장 기억할 만한 사건이자 가장 영감을 주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20년이 지나서 울트라마라톤에 관한 책을 쓰려고 하자 당시에 달리면서 했던 생각이 다 기억났다. 당시에는 그 생각들이 기묘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 기억은 여전히 생생했고 나는 펜을 집어들었다.”― 「나오며」(본문 316쪽)
인간성에 대한 가장 매혹적인 통찰
“나는 거의 평생 동안 엄청난 거리를 다양한 강도로 달려왔다. 그것은 아마도 달리고 싶다는 근본적인 단순성에 매료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달리기는 다양한 운동에 통합되어 있다. 그러나 속도와 지구력 사이의 긴장이라는 단순하고도 근본적인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은 오직 달리기뿐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기술이나 신념, 허위를 완전히 제거하고 나면 오직 이러한 본질만이 남는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400미터 결승선을 앞두고 곡선 주로를 내달리는 리 에반스(Lee Evans)를 지켜보는 것만큼 전율을 느끼게 하는 일도 드물다. (중략) 왜냐하면 달리기는 전혀 잡것이 섞이지 않은 순수하고 강렬한 열정이기 때문이다.”― 「2장 고대의 주자와 현대인」(본문 22쪽)
400만 년 전 숲에서 사바나로 이동한 원시 인류가 달리기를 시작한 이래로 “수백만 년 동안 인간이 일차적으로 선택한 운동은 달리기였다.” 『우리는 왜 달리는가』는 달리기와 인간성에 관한 근본적이고도 심오한 사색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책이다.
베른트 하인리히는 경험적이고 과학적이며 철학적인 측면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짐바브웨의 한 동굴에서 다섯 명의 주자를 그린 2, 3천 년된 바위그림(25쪽)을 발견한 그는 “달리기와 경쟁, 최고를 추구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심원한 뿌리를 갖고 있음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리고 달리기를 하는 영장류의 진화에 대해 살펴보고 있는 13장에서는 고대의 주자와 현대인에 대한 관련성을 다양한 가설과 이론을 통해 과학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고대의 주자와 현대의 우리가 달리기라는 매개물로 연결되어 있다는 베른트 하인리히의 발견은 읽는 이에게 따뜻한 풍요로움을 느끼도록 해주며, 인간성에 대한 매혹적인 통찰력을 제공한다. 더불어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하는 인간의 아름다움은 감동을 전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