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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 항공 착륙사고의 '영웅'과 '역적'들

박영국 기자
입력 2013.07.10 15:53
수정 2013.07.11 11:31

[기자의 눈]죽음 눈앞 절박한 상황 속에 우리가 봐야할 것들

'영웅'은 본받아야 하되 '역적'은 비난보다 타산지석 삼아야

아시아나항공 214편 여객기 사고에서 헌신적으로 승객들을 대피시킨 캐빈매니저 이윤혜씨가 7일 오후(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 홀리데이인 시빅 호텔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한 뒤 기자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이윤혜씨를 비롯해 유태식, 김지연, 이진희, 한우리씨 등 5명은 다른 승객들과 함께 승객들을 부상자부터 차례로 비행기 밖으로 탈출시켰고 정신을 잃은 동료 7명을 대피시킨 다음 맨 마지막으로 기내에서 나왔다. 이윤혜씨는 꼬리뼈 골절상을 입었다.ⓒ연합뉴스

큰 이슈를 몰고 오는 대형 사고들은 항상 많은 후일담을 낳는다. 대중은 사고의 객관적인 개요 못지않게 주관성이 개입된 뒷얘기에 큰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그 후일담에는 필연적으로 ‘영웅’, 혹은 ‘역적’이 등장하게 마련이다.

지난 7일 새벽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발생한 아시아나 항공기 착륙 사고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영웅’은 단연 객실승무원들이다. 특히 사고기 캐빈 매니저였던 이윤혜 사무장은 ‘천사’로까지 묘사되며 한국은 물론 미국 현지에서도 화제 인물로 떠올랐다.

사고 직후 현지 언론들을 통해 전해진 “몸집도 작은 여승무원이 얼굴에 눈물이 흐르는 채로 승객들을 등에 업고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었다”는 탑승객의 증언과 “캐빈 매니저는 비행기에 불이 붙기 직전까지 승객들을 대피시키는데 최선을 다했고, 마지막까지 비행기를 지키면서 혹시 남은 승객이 있는지 살폈다”는 샌프란시스코 소방국장의 이야기는 이번 사고로 인한 충격 이상의 감동을 국민들에게 선사해줬다.

물론 이 사무장 외에도 12명의 객실승무원 모두가 승객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영웅이었다. 이들은 급박한 상황에서도 모든 승객을 탈출시킨 뒤에야 비행기에서 빠져나왔다.

겉보기에는 아름답고 가냘프게만 보이는 객실 승무원들이지만, 유사시에는 그녀들(남성도 있지만, 여성이 대부분이니)이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는 ‘철인’으로 변신한다. 항공사에서 객실 승무원을 모집할 때 연약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체력 테스트를 실시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승무원 외에 승객들 중에도 ‘영웅’은 존재했다. 다수의 현지 언론들은 갈비뼈가 부러진 상황에서도 다른 승객들을 대피시킨 뒤에야 몸을 피한 외국인 남성의 소식을 전했다.

아시아나항공에 따르면, 이번 항공기 사고 당시 ABP(협조 승객)들이 탑승 승무원들과 협조해 다른 승객들을 대피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ABP란 비상구 바로 옆 좌석에 앉는 승객으로, 항공사 측에서 발권시 주로 젊고 건강한 남성에게 사전 동의 하에 비상구 옆좌석을 배정해 사고 발생시 승무원들과 함께 승객들의 탈출을 돕도록 하고 있다.

비상구 바로 옆자리지만, 사고 발생시 가장 먼저 탈출하는 게 아니라 끝까지 남아 승무원들과 함께 다른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을 짊어져야 한다.

승무원들은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하는 게 직업적인 사명이지만, ABP는 같은 승객 입장에서 다른 승객을 위해 희생한다는 점에서 더 숭고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은 ‘영웅’들이 있는 반면, 한순간에 ‘역적’으로 몰린 이들도 있다.

불행이 닥쳤을 때 미담으로 위로받길 원하는 한편,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원하는 것도 대중의 심리다.

중국에서는 한 탑승객이 사고 와중에도 자신의 짐을 챙겨 나왔다는 얘기를 버젓이 SNS에 올려 가뜩이나 자국인 사망자 발생으로 애통해 하고 있는 중국 내 여론에 기름을 끼얹었다.

국내에서도 일부 승객들이 짐을 들고 비행기를 빠져 나온 모습이 포착돼 논란이 됐다. 특히, 한 여성 승객은 커다란 여행용 가방(캐리어)을 들고 하이힐까지 신고 나온 사진이 SNS를 통해 퍼지면서 공분을 사고 있다.

승무원 안전 수칙에 따르면 항공기가 비상 사고를 당했을 때 승무원들은 승객들이 신발을 벗고 짐을 포기한 채 슬라이드를 타고 비행기를 빠져나오도록 해야 한다.

짐을 챙기느라 시간을 지체할 경우 뒤쪽 승객의 탈출까지 늦어질 수 있고, 무거운 캐리어나 날카로운 구두굽이 튜브 소재의 슬라이드를 파손시켜 뒤따라오는 승객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짐에 아무리 중요하고 값비싼 물건이 들어있다 하더라도, 다른 이의 생명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지 몇 장의 사진 만으로 상황을 유추해 ‘마녀사냥’을 일삼는 것에는 찬성하고 싶지 않다. 벌써 ‘아시아나 캐리어녀’라는 별명이 붙은 한 여성 승객은 사진을 통해 희미하게나마 얼굴까지 노출됐다. 해당 승객도 피해자 중 하나일 뿐인데, 변명의 여지도 없이 공개적으로 대중의 비난을 받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미담 사례건, 그렇지 못한 이야기건 화제가 되는 사건에 다양한 후일담들이 뒤를 잇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누군가를 비난하기보다는 향후 자신이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되도록 그런 일이 벌어지지 말아야겠지만) 참고할 모범사례, 혹은 타산지석으로 삼는 게 우리 모두를 위해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이번 아시아나항공 사고를 통해 전해진 후일담들이 위기 상황일수록 질서를 지키고 남을 먼저 배려하는 풍토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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