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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 원효길 따라나선 79세 할머니 사연

최진연 유적전문기자
입력 2013.05.12 10:46
수정

<최진연의 우리 터, 우리 혼>"내 나이도 모르고 살았어" 역사탐방길

“여태껏 내 나이가 얼마진도 모르고 살았어, 내일 모래 팔십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덜컹 내려앉아...”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북한산성 원효봉 마당바위에 남양주시 오남읍에서 온 김동국 할머니(79), 기자가 혼자 오셨는냐고 묻자 “이 나이에 같이 올 사람이 어디 있어” 지난 4월에도 북한산성에 왔지만 비 때문에 답사를 못했다며, 나무지팡이를 흔들면서 건강미를 자랑했다.

원효봉을 오르는 탐방객들

경기문화재단 북한산성문화사업팀이 연중행사로 마련한 ‘원효의 길, 북한산성에 오르다’ 역사탐방 프로그램이 있는 날. 원효봉에는 서울과 수도권에 거주하는 30대부터 60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한 남녀 답사팀들이 이마에 구슬땀을 흘리며 성벽을 타고 넘는다. 일행 중에 최고령 할머니가 함께 있었다. 김 할머니는 지난해도 수개월간 고궁박물관에서 왕실문화교육을 받을 정도로 우리 역사의 애정이 깊다.

탐방객들은 재단 홈페이지 또는 문화사업팀 블러그를 통해 신청했으며 사업팀에서는 30여명을 선착순으로 마감했다. 이들은 북한산성의 역사를 제대로 알기위해 참가했다고 밝혔다.

오전 10시 산성수문지 앞 교육정보센터에 집결한 탐방객들은 북한산성 동영상을 시청한 후 각자 도시락과 생수를 제공받았다. 산성의 각 시설물을 해설할 강사는 한국문화유산연구센터(김재홍 대표)가 맡았다. 답사코스는 수문에서 출발했다.

낙타바위 성벽에서 백운대를 바라보는 일행들

북한산성은 깊은 골짜기가 둘이다. 만경대와 대남문 방향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이 하창터에서 합류해 산 뿌리로 내려오는 곳에 수문이 있다. 지금은 흔적조차 사라진 수문은 1915년 8월 북한산 일대에 쏟아진 집중폭우 때 멸실됐다. 산중턱에 쌓은 중성수문이 터지면서 밀려온 수압이 이곳 수문을 강타했다.

당시 일대의 피해는 엄청났다. 행궁도 그때 사라졌다. 현재 수문 터 능선양쪽에 남아있는 성벽을 비교해 보면 수문의 규모는 3개 정도의 홍예를 갖춘 교량으로 길이 약 15m, 높이가 5m 정도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계곡을 타고 오르면 산속의 유흥가로 명성을 날렸던 산성마을이 있던 곳이다. 관광객과 등산객을 상대로 음식점을 운영했던 이 마을은 2011년 1월 완전 철거됐다. 각종 생활오수가 계곡으로 흘러들어 북한산을 오염시킨다는 민원 때문이었다.

최고령 김동국 할머니가 북한산성에 올랐다

여기서 좌측 길로 들어서면 덕암사다. 조계종 산하의 작은 절로 비구니 승이 거주하는 조용한 도량이다. 특이 이곳은 거북형태의 자연석굴을 대웅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원효대사가 이 석굴에서 좌선해 삼국통일을 기원했다는 전설이 있다.

덕암사를 지나 호젓한 산길을 따라가면 서암문이 나온다. 성안에서 죽은 사람의 시신을 내보내던 문이라 해 시구문으로 부른다. 답사객들의 관심이 많은 곳이다. 암문은 홍예 형태로 축조했으며 수문지에서 180m 정도 올라온 성벽줄기에 있다. 이 일대는 북한산성 전 구간에서 축조당시의 성벽 본래모습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하지만 수문에서 등산로가 개설되지 않아 통제되고 있다.

서암문부터 원효봉 성벽 길은 급경사지만, 산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코스다. 성벽 중간에는 치성이 두 곳에 있는데, 치는 성벽에서 밖으로 튀어나오게 쌓은 돌출된 시설물로 적이 침입할 때 공격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쌓은 것이다.

문루가 사라진 북문에 모인 탐방객들

성벽을 타고 가다보면 전망 좋은 곳에 원효암이 있다. 원효가 참선 수도했다고 이름이 붙여진 곳이다. 이 암자는 영조10년에 지었으며 의상봉과 마주보고 있다. 계곡아래 대서문이 한눈에 조망되는 지형으로 암자보다는 군사요충지로 적합한 장소다.

원효봉(해발 505m)에서 점심을 해결한 답사팀은 낙타바위와 연결된 성벽에 모였다. 현재의 북한산성은 고양시와 서울시에 걸쳐 있다. 전체 둘레는 12.7km 중 절반이 각각 나눠졌다. 고양시 관할은 대서문에서 원효봉, 염초봉, 백운대 인근까지다. 이 구간에서 유일하게 복원된 성벽이 낙타바위 주변이다.

서울시 관할은 정상인 백운대에서 대서문 구간인데 절반이상 복원됐다. 하지만 서울시에서 복원한 성벽은 산성의 본래모습이 아니다. 한양도성의 성벽을 그대로 본떠 쌓았다. 전문가들은 고증절차 없이 마구잡이로 복원해 정체성을 상실했다고 한다. 엄청난 손실이다.

원효봉아래 북문이 있다. 북문은 홍예를 안과 밖 두 곳에 세웠다. 홍예위에 문루는 멸실됐고, 초석도 절반은 사라졌다. 초축 당시에는 문루가 있었었으나 영조시대 때 그린 ‘북한도’에 나타나지 않아 이전에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북문에서 염초봉은 수직 암벽이다. 등산전문가만 출입할 수 있는 구간이다.

북문아래는 조선후기에 세운 상운사가 있다. 한국전쟁 때 불탄 것을 대웅전과 삼성각 등을 새로 건립했으며, 대웅전 옆에는 수백 년 묵은 향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일행은 계곡을 내려와 마지막 답사코스인 대서문으로 향했다.

북한산성 정문인 대서문 여장을 쳐다보는 일행들

산성의 정문인 대서문은 구파발에서 올라오는 곳에 해당된다. 산성의 모든 물자가 이곳을 통해 오갔다. 대서문 문루는 일제강점기에 파손된 채 방치되다가 1958년 당시 최헌길 경기도지사가 복구했다. 대서문 홍예 좌우에는 누혈(수구)을 설치했다.

김재홍 대표는“ 우리나라 성곽에서 볼 수 없는 시설이 북한산성에 있다며, 홍예상부의 여장인데, 다른 곳의 성곽은 작은 돌을 쌓아 여장을 설치했으나 이곳은 하나의 큰 돌을 다듬어 총을 쏠 수 있는 구멍을 뚫어 놓은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수원화성도 세계유산에 등재 되었는데 연간 1000 만명이 즐겨 찾는 북한산성도 세계유산 반열에 오르도록 힘쓰자"며 약 5시간의 걸친 탐방을 마무리 했다.

국립공원으로만 관리되던 북한산성이 변하고 있다. 북한산성문화사업팀 학예연구직 박슬기 교육담당은 “연중 상반기 3회는 산성답사, 하반기 3회는 행궁답사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며, "우리 역사와 우리 자연, 인문학이 숨 쉬는 북한산성에서 무수한 이야기를 듣는 답사여행은 평생 간직해도 아깝지 않을 멋진 추억이 될 것"이라고 했다.

최진연 기자 (cnnpho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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