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렁거리는 롯데, 뜬금없는 발야구 속내는
입력 2013.01.2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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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공백 메울 차선의 대책 ‘스피드’
본헤드성 주루사 척결 출발선 해석도
손아섭 등이 포진한 롯데는 2년 전만 해도 8개 구단 중 최고의 공격야구를 구사했다.
배트(타자)와 손(투수)으로 하는 야구에서 가장 안정적인 도구는 무엇일까.
정답은 둘 다 아니다. 가장 안정적인 도구는 의외로 발이다. 발은 기복이 없다. 야구의 구사 수단 가운데 가장 덜 민감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덜 민감하다는 의미는 세밀하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가장 세밀하지 못한 발이 섬세한 스몰볼의 수단이라는 점 또한 아이러니다. 엄밀히 말하면 발이 아니라 주루 스피드다. 발과 스몰볼의 연관성보단 스몰볼과 스피드의 그것이 더 높다.
롯데 자이언츠가 올 시즌 발야구로 정상 도전을 천명했다.
2013 롯데의 새 사령탑이 된 김시진 감독은 올 시즌 팀 도루 목표를 150개로 잡았다. 작년 팀 도루 119개에 약 30개를 추가하겠다는 의미. 150개면 리그 2위 수준이다. 작년 팀 도루 1위 넥센(179)에 이은 2위 LG(140)보다 10개 많은 수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외다. 주전 리드오프 김주찬이 KIA로 이적했다. 팀 내 최다도루(32)를 기록한 가장 발 빠른 김주찬을 내보내고 발야구를 한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일면 수긍은 간다.
바로 '해결사' 홍성흔의 친정 두산 이적이다. 리드오프와 해결사, 팀 공격의 양축이 동시에 이탈한 롯데로선 타선의 응집력이 사실상 작년보다 떨어진 게 사실. 그 전력 이탈의 공백을 메울 차선의 대책이 바로 스피드 야구다.
2년 전 롯데는 국내 프로야구 8개 구단 중 최고의 공격야구를 구사했다. 오릭스로 이적한 '빅보이' 이대호, 홍성흔, 김주찬, 그리고 전준우와 손아섭이 버티고 있는 라인업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중심타자 절반이 빠져나갔다. 타선의 중량감과 위압감이 2년 전과는 달라졌다.
다양한 공격 옵션을 택하지 않아도 방망이 하나로 야구가 되는 팀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보다 다양하고 섬세한 공격 옵션을 구축해야만 승부가 가능한 롯데로 변했다.
작년 넥센을 이끈 김시진 감독은 발야구에서 넥센의 가능성을 발견한 바 있다. 준족의 좌타 3인방 서건창-장기영-정수성, 그리고 '달리는 거포' 박병호와 강정호의 조합으로 넥센은 팀컬러 대변신에 성공했다. 지는 데 익숙했던 넥센이 이기는 습관을 학습하게 된 단초가 바로 발야구였다.
손은 슬럼프가 있지만 발은 슬럼프가 없다. 롯데의 체질 개선을 위해 발보다 더 강력하고 안정적인 도구는 없다는 게 김시진 감독의 지론인 셈. 사실 발은 김 감독의 롯데가 나갈 장기적인 리빌딩의 바로미터로 해석할 수 있다.
확률 낮은 ‘뜬금포’ 보단 확률 높고 기복 없는 스피드를 중시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발로 대변되는 김시진 야구는 롯데에서 무엇보다 기초와 기본기를 강조할 가능성이 크다. 그게 발야구로 구체화된 것일 뿐.
롯데는 발야구를 강화하기 위해 모토니시 인스트럭터를 영입했다. 모토니시 인스트럭터는 김시진 감독의 150도루에 20개를 더 보태 170도루를 시즌 목표로 삼았다. 170도루는 리그 1위 수준, 넥센에 근접하는 야심찬 목표다.
김주찬이 빠졌지만 황재균과 손아섭이 있다. 하지만 그야말로 바람의 아들과 같은 '대도의 후예'로 성장할 준족은 눈에 띄지 않는다. 김시진의 롯데가 발야구를 필살기로 보유하기 위해선 시차 적응이 필요해 보이는 이유다.
발야구를 주창하는 롯데를 보니 30년 전 롯데가 자연스레 오버랩 된다.
서말구. 31년 간 한국 100m 기록(10초34) 보유자였던 서말구를 1983년 대주자로 영입했던 구단이 바로 롯데다. 한국에선 가장 빠른 사나이 서말구가 대도로 성장하지 못했던 이유는 소위 도루의 '3S' 중에서 스피드는 있었지만 센스와 슬라이드의 노하우를 단기간에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
2013 롯데의 목표는 지금 당장 '전 타자의 서말구화(化)'는 아닐 게 분명하다. 최소한 본헤드성 주루사로 찬물을 끼얹지 않고 스피드를 중시하는 롯데로의 변신을 꾀하는 출발선 정도다.
롯데는 큰 야구는 강했지만 세기(細技)에 약했다. 가을야구에 나가고도 번번이 늦가을 야구엔 실패했다. 그 이유가 바로 '기본'에 약했기 때문이다. 페넌트레이스 1위를 넘보던 롯데가 10월 초 와르르 무너진 이유도 공수 기본기 부족이 결정적이었다. 롯데는 하고 싶은 것은 잘했지만 하기 싫은 것은 못하는 대표적인 구단이다.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다.
2013년 롯데의 뜬금없는 발야구 선언은 그런 연장선상에서 의미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방망이만 보던 다저스의 시선을 발 아래로 옮긴 '대도' 모리스 모닝 윌스의 기적을 김시진의 롯데가 2013년 꿈꾸고 있는 건 아닐지 모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