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백계산(白鷄山)과 풍수지리(風水地理)
입력 2006.02.1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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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계산(白鷄山)은 어떤 산 일까?
2.풍수지리(豊水地理)로 본 백계산(白鷄山)
데일리안에서 특집 기획으로 보도하는 “옥룡사 가짜”기사에서 옥룡사가 위치한 백계산(白鷄山)은 도대체 어떤 산이고 어떤 연유에서 도선국사는 백계산에 옥룡사를 중수 했다는 것일까?
그 의문점을 하나 하나 풀어보자
1.백계산(白鷄山)은 어떤 산 일까?
전남 해안에 있는 광양의 백계산(白鷄山)은 예로부터 지금의 백운산(白雲山 1,218m)을 통칭하던 이름이었으나 조선후기에 주산은 백운산으로, 백계산은 그 혈처인 추산(秋山)의 명칭으로 분리되고 바뀌었다.
오늘날 백계산은 (505.8m)은 주산인 백운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어내린 지맥에서,한 맥이 나와 동쪽으로 흘러, 백운산 남쪽 중앙부에 형성된 추산리 도선국사의 탑이 있는 산을 말하고 조선중기 이전의 기록은 주산인 백운산과 혈처인 운암사를 함께 통칭했었던 말이다.
대표적으로 도선국사 비문에서 “백계산유고사왈옥룡(白鷄山有古寺曰玉龍)”즉 “백계산(백계산)에 옥룡 이라는 옛 절이 있다”는 기록에서 ,백계산은 주산인 옥룡산을 말하고 경보선사의 비문에서 “백계산동지운암강(白鷄山東之雲巖崗)” 즉 백계산을 동쪽 운암사 산 능선이라 한 것은,백계의 혈처인 추산리 백계산을 말하는 것으로,운암사 동쪽 산 능선에 탑을 세웠다는 기록이다.
삼신산의 우두머리인 방장산(지리산)과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좌측에 있는 백운산은 그 자체가 “순천 서면(西面)”과 “구례 간전면(墾田面)”에 두 발(鷄足山)을 딛고 ,동서(東西)로 날개를 펴고 ,북쪽을 향하여 날아오르는 닭의 형국이다.
백계산의 혈처라는 도선국사의 비가 서 있는 산은 보는 사람마다 이견이 있겠지만 날아오르는 닭의 등에 해당 하는 것으로, 즉 이러한 전체적인 풍수는 학(鶴)을 타고 승천하는 신선도(神仙圖)와 같은 의미이고,혜철국사가 이 산을 크게 중용한 것은 북쪽의 한반도를 안정시키고 국가의 태평성대를 위한 포석을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풍수지리로 본 백계산(白鷄山)
- 백계산에는 왜 물이 귀할까?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백계산(白鷄山)은 현의 북쪽 20리에 있는 진산(鎭山)이다.산 머리에 바위가 있고 바위 아래 샘이 있으며,샘 밑에서 흰 구름이 때로 일어나는데,소원을 빌기만 하면 문득 영험이 있고 몸과 마음이 깨끗이 하고 부정(不淨)한 일을 멀리 하지 않으면 샘물이 마른다”는 기록에서 보듯이,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을 알 수가 있으며, 또한 이곳은 백계(白鷄)라는 풍수로 보아도,수맥이 있어서도 안되는 곳이다.
즉, 계(鷄)는 물이 없어야 하고, 용(龍)은 물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계(鷄)와 용(龍) 둘의 조건은 ,물이 있고 없음에 따라 생사(生死)가 갈리는 극과 극이다.
다시 말하면 백계(白鷄)의 혈처에 옥룡(玉龍)이 있는 것은 상극(相剋)이고 현무(玄武)의 혈처에 옥룡이(玉龍)이 있다는 것은 상생(相生)이니,풍수로 보아도 백계의 혈에 옥룡이 있다는 것은, 합이 맞지 않는 잘못된 것으로 ,자자손손 패가망신(敗家亡身)할 혈이다.
도선국사가 처음 이곳에 왔을때 커다란 연못이 있었고, 그 연못에 백룡(白龍)이 살고 있었는데,숯으로 연못을 메우고 법당을 지었다는 전설에서 보듯이 ,백룡(白龍)은 옥룡(玉龍)과 같은 “흰 용”으로 옥룡(玉龍)의 혈처에 지은 법당이라면,그것이 연못이든 물구멍이든 당연히 수맥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추산이 백계산 옥룡사는 전설과는 거리가 먼 땅이다.
도선국사가 점지했다는 백계산 운암사라는 지명과 풍수를 보고, 세상 사람들은 이곳이 백계(白鷄)가 알을 품고 홰를 치는 명당이라는 등등.......저마다 그럴 듯 한 이유를 들어 명당이라고 주장을 하는데, 이는 운암사의 존재가 무엇인지, 그 실체는 물론 풍수의 기본도 모르는 잘못된 해석이다.
계(鷄)와 수(水)는 상극인데, 닭이 알을 품은 백계포란(白鷄抱卵)의 혈처에,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운암(雲巖), 즉 구름과 바위가 있고, 더구나 그 알을 훔쳐 먹고 사는 뱀 즉 용(龍)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은, 패가망신하고 자손이 멸절(滅絶)될 뿐, 백해무익(百害無益)한 것임에도, 엉뚱한 전설이 이어져 온 것은, 부질없는 사람들의 허욕이, 도선국사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낸 망상일 뿐, 이곳에 운암사를 세운 도선국사의 마음은 분명 아니었다.
또 다른 전설에서, 도선국사가 절을 세울 때, 땅의 기운이 약한 것을 보충하려고 심었다는 주위의 동백나무숲 역시 이른바 풍수들이 밥을 빌기 위한 말장난이다.
세상이 이야기 하는 것처럼, 동백나무숲이 백계산 백계포란(白鷄抱卵)의 혈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면, 그곳에 구멍 즉 우물을 파는 순간, 흰 닭이 품고 있던 신령한 알은 깨어져버렸고, 다시 사람이 머물며 불을 지핀 것은, 곧 그 백계마저 죽여 태워버리는 사혈(死穴) 즉 사지(死地)가 되었고, 사람의 시신을 그곳에 묻는 것은, 신성(神聖)해야 할 신의 땅을 오염시키고, 포란을 부패시키는 일이므로, 아마도 도선국사 이후, 그곳을 살아서 들어가, 살아서 나온 이는 없었을 것이며, 오늘날까지도 그 터가 온전하게 보존되지 못하고, 끝없이 수난을 당하는 이유라 할 것이다.
- 백계산과 풍수와의 모순
이러한 풍수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이 무엇이든, 백계의 혈에 우물을 파고, 구들을 만들어 불을 피우고, 시신을 묻고, 탑과 비를 세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절대 금기사항인데....... 임금의 명령으로 백계산에 비를 세운 경보선사는 말할 것이 없지만, 천하 풍수의 대가라는 도선국사가 자신이 살아생전에 신을 위해 마련한 신의 땅을, 죽어서 침범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유언으로 남겼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백계혈이 있다는 땅을 중심으로, 동서 골짜기에, 조성된 동백 숲을 가지고, 굳이 풍수를 논한다면, 그것은 닭의 깃을 아름답게 장엄하여, 장천(長天)을 날아가려는 신선사상(神仙思想) 즉 백계산 산신령을 위한 배려이다.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수많은 풍수들이 백계산을 거론했지만, 도선국사 이후 “이곳에 옥녀탄금혈(玉女彈琴穴) 즉 선녀가 거문고를 연주하고, 옥녀배혈(玉女拜穴) 즉 선녀가 엎드려 절하는 명당이 있다.”고 말했다는 당나라에서 온 양맥수란 사람만이, 겨우 담 너머로 도선국사의 뜰 마당을 보고, 자신의 이름값을 했을 뿐이었다.
한마디로 백계산 운암사(현 추산리 옥룡사)는 도선국사가 국가의 안녕을 도모하기 위한 비보(裨補)로써, 백계산 산신령을 위해 마련한 자리이고, 인간들의 탐욕이 만든, 백계포란(白鷄抱卵)의 혈처라는 전설로 보아도, 사람들이 머물러 살거나, 시신을 묻어서는 안 되는 지세(地勢)이므로. 사람의 거처를 위한 구들을 없애고, 우물도 메우고, 냄새나는 사람의 시체까지 들어내어, 처음 그대로 솔바람 물결소리 향기로운 청정한 도량을 만들어, 백계산 주인이신 산신령님께 돌려드리고, 국태민안을 비는 것이, 당장의 국리민복을 위하고, 다시 천년의 사직을 비보하는 역사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