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상 파울로에 가면 봉헤찌로로 가라”
입력 2004.03.31 18:25
수정 2004.04.03 11:12
‘솔빛별가족’ 세계일주기(1)-브라질 상 파울로(1) / 조영호
만일 아무 연고 없이 브라질에 처음 가는 한국인들은 앞으로 상 파울로 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무조건 봉헤찌로(Bom Retiro)로 가라’고 적극 권장한다. 상 파울로의 한국교민들이 대부분 봉헤찌로에 모여있기 때문이다. 봉헤찌로에 가면 따끈따끈한 육개장을 비롯한 한국식사에서부터 호텔 잠자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
특히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브라질에서 포르투갈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모든 일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봉헤찌로다. 길거리를 5분만 걷다보면 전후좌우에서 반가운 한국말을 쉽게 들을 수 있고, 상가를 기웃거리다 주인이 동양인으로 보이는 가게가 있다면 다짜고짜 들어가 우리말로 물어보면 99%가 한국교민이기 때문에 한국말로 답변을 들을 수 있다. 봉헤찌로에는 한국교민들이 운영하는 모든 종류의 상가가 다 있다.
상 파울로의 일본인 거리가 리베르다지의 동양거리라면, 봉헤찌로는 코리아타운인 셈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은 아니지만) 브라질의 코리아타운을 꿈꾸며 발돋움하고 있는 곳이 봉헤찌로다. 이곳 봉헤찌로 이외에도 한국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 몇 군데 있다. 봉헤찌로 외에 교민들의 가게가 많이 모여있는 곳은 브라스(Bras) 지역과 루스/센트로 지역이다.
물론 교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주거지역인 아끌리마썽이나 리베르다지 지역에도 식당이나 가게들이 더러 있긴 하다. 하지만 우리 교민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곳이 봉헤찌로이고, 심지어 한국마켓에서는 브라질 남자종업원이 “라면이 20원, 배추가 5원, 김치가 100원…”하며 한국말로 계산을 한다.
하루는 봉헤찌로에 있는 ‘브라질한국학교’를 찾아갔다. 그런데 교실을 둘러보던 중 아내는 그곳에서 대학동창을 너무도 우연히, 20여년만에 극적으로 만나게 됐다. 그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지구 반대편에서 재회한 아내와 친구는 한동안 서로 손을 맞잡고 이야기를 나눈 뒤, 눈물을 뿌리며 기약없는 이별을 했다. 아내의 친구는 그곳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지난 98년에 허가를 받은 국제학교인 ‘브라질한국학교’는 2003년 현재 65명의 교직원이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2학년과정까지 350여명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이곳 학생들은 오전에는 포르투갈어로 브라질 정규교육 과정을,오후에는 한국어와 영어로 한국 정규교육 과정을 배우고 있다. 따라서 이 학교를 졸업하면 브라질과 한국의 정규교육 과정을 모두 이수하게 돼 브라질과 한국의 대학으로 진학할 수도 있다고 한다.
하여튼 한국에서 브라질의 상 파울로에 가실 기회가 있는 분이라면 ‘봉헤찌로’란 지명 하나쯤은 기억해두시면 좋을 것 같다. 봉헤찌로란 곳은 서울의 ‘봉천동’ 하듯 동네 이름이다. 그러나 봉천동처럼 1동부터 11동까지 있는 엄청 넓은 지역이 아니라, 몇 개의 거리가 이어진 블록(block)이고,남대문 시장처럼 옷가게 등 상가가 줄지어 이어진 곳이므로 택시를 타고 가다 맥스 마리(Max Marie)의상실,형제약국,한강식당,정미용실,털보네정육점 등 반가운 한글간판이 보이는 곳이면 아무데서나 내리면 된다. 봉헤찌로에는 한국교민이 세운 호텔도 영업중에 있고, 브라질 한인교회,성당도 모여있어 원스톱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돈많은 일본인으로 비춰질까 노심초사
그러나 우리는 봉헤찌로에 도착하기까지 하루종일 헤맸다. 상 파울로에 도착한 다음날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제일 먼저 간 곳이 시내 한가운데인 쎈트로였다. 거기서부터는 길을 몰라 택시라도 잡아타고 봉헤찌로를 찾아가고 싶으나 택시 기사들은 우리 식구 다섯 명을 한꺼번에 태워주지 않는다. 정원이 네 명이라서 안 된다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택시 두 대에 나눠타고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브라스(Bras) 지역이나 봉헤찌로(Bom Retiro) 지역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몇번의 택시를 타는 동안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두 대의 택시로 이동을 하다가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이곳 브라질에서 자칫 이산가족이 될 경우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택시가 아니면 시내버스나 지하철을 타야 하는데 카메라나 귀중품을 들고 다섯명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타야 하므로 그것 또한 쉽지가 않았다. 이곳은 동양인들이 그리 많지 않아 쉽게 눈에 띄는 데다가, 동양인이라면 우리나라나 중국인 관광객은 거의 없고, 유독 일본인들이 많아 우리를 돈많은 일본인쯤으로 생각하기 십상이었다. 특히 SONY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다니면 더욱 그럴 가능성이 컸다.
더군다나 이곳 상 파울로는 치안상태가 남미에서도 알아주는, 거의 치안부재의 상태다. 경찰이 보는 데서도 버젓이 손목시계나 목걸이 등을 날치기해 가거나, 심지어 자동차가 신호대기 중에도 유리창을 깨고 손가방을 꺼내 유유히 사라지는 곳이라고들 이곳 교민들은 겁(?)을 단단히 준다.
하긴 이곳 신문을 보니 2002년 한해 동안 상 파울로 시내에서만 4,631명(하루 12.7명꼴이다)이 피살됐다고 한다. 이는 8년간의 전쟁으로 주민 10만명당 33명의 사망자를 낸 알제리 전쟁이나 10만명당 20.8명의 사망자를 낸 보스니아 전쟁 피해자 보다 훨씬 많은 10만명당 43.7명에 달하는 높은 비율이라고 한다. 또 지난 2001년 한해동안 상 파울로 주변 고속도로 강도사건은 모두 973건이 발생했는데 2003년에는 한 검사가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강도를 만나 살해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열악한 치안상태에서 정원초과라는 이유로 택시 타기도 힘든 데다가 그렇다고 무방비 상태로 거리를 활보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자동차를 렌트하기로 했다. 렌트비도 크게 비싸지 않아(하루에 2만2천원꼴) 제일 작은 승용차를 빌렸다. 그러나 정작 차를 빌린 다음부터가 정말 큰 일이었다. 도대체 길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길 찾는 데는 어느 정도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곳 상 파울로에서는 도저히 명함도 꺼낼 수가 없는 것이다.
렌터카 보다 택시가 더 편리해
뉴욕과 동경에 이어 세계 3대도시라는 상 파울로는 만만한 도시가 아니었다. 남미 최대의 도시인 상 파울로는 계획도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서울과 마찬가지로 1960년대와 1970년대를 지나면서 근대화 과정을 겪으며 도시 자체가 팽창할 대로 팽창해 도시계획을 세울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져 갔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도시 외곽의 어떤 빈민지역에는 경찰도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치안부재의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길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리꼬불 저리꼬불 제멋대로 생긴 길로 인해 교통소통이 제대로 되질 않자 상 파울로 시당국은 도시 전체를 일방통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모든 길을 한쪽 방향으로만 소통을 하도록 정함으로써, 우리 같은 초보 운전자는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 가기가 최악의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한참 운전해서 가다가 보면 일방통행의 길이 앞을 가로막고 있고, 그 길을 우회해서 돌아가면 이제 찾아가고자 하는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도무지 지도를 보고서도 제대로 길을 찾을 길이 없다. 거기다가 나처럼 포르투갈 말과 글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도로표지판도 무용지물이다. 길 이름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때문이다.
자동차를 빌린 첫날에는 무려 6시간여를 헤맨 끝에 마지막에는 택시기사에게 길을 찾아 앞장서도록 부탁하고서 우리가 머무는 숙소까지 겨우 찾아갔는데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미로 같은 길을 찾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물론 운전을 하며 나혼자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뒷자리에 앉아서 커다란 상 파울로 지도를 펴놓고는 우리가 지나가는 도로의 표지판을 하나씩 확인하며 내비게이터(Navigator) 역할을 하지만 역시 마찬가지다. 빨리 달리는 자동차에 타고 휙휙 지나치는 포르투갈어 도로표지판을 확인하고 앞에 앉은 나에게 길을 가리켜주기엔 역부족이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렌터카를 다시 반납하게 된 것은 택시 요금이 그다지 비싸지 않아 하루종일 택시를 대절해서 다녀도 택시비가 얼마되질 않는 것이다. 그래서 3일만에 렌터카를 반납했다. 그동안 길찾기로 골몰했던 터라 자동차를 반납하고나니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했다. 그리고는 곧장 택시기사를 물색해서 그 다음날부터 시내 관광에 나섰는데 택시기사와는 서로 이야기가 전혀 통하지 않아 택시를 대절해 다니는 며칠동안 좀 고생하기는 했지만 길찾는 스트레스가 없으니 그래도 한결 나았다.
포르투갈어를 모르면 아예 그림이 낫다
이곳 브라질 사람들은 어떻게 된 셈인지 영어로 길을 물어봐도 모두다 철저히 자기네 포르투갈어로만 이야기한다. 이 사람들은 학교에서 단 한마디도 영어를 배우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죽어라 포르투갈어만 사용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옛날 브라질이 경제대국 및 선진국이었다는 자존심 때문인가? 아마 브라질 인구중에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제대로 배우지 않았거나, 배웠더라도 생활에 큰 불편이 없으니 사용하지 않아서 그럴 것으로 생각됐다. 이곳에선 철저히 벙어리가 되는 수밖에 없다.
이럴 땐 만화가이자 여행가인 조주청 씨의 글이 생각난다. 조주청 씨는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의사소통에 불편을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말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면 무슨 일이나,어떤 상황이나 금세 의사소통이 됐다고 한다. 만화의 장점,아니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나도 이곳 브라질에 와서는 그림이라도 잘 좀 그렸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모름지기 앞으로 세계 여행을 다닐려면 미리미리 만화학원에라도 다니며 한 3개월쯤 커리커쳐 연습을 열심히 해서 출발함이 어떨지? 답답해서 하는 진심어린 말이다(하기야 간단한 커리커쳐를 배우는 것이 영어,불어,독어,스페인어,이태리어,중국어,일본어 등 각종 회화를 골고루 공부하기 보단 쬐끔 쉽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