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들이 이름도 안불렀는데 꽃중년 됐다
입력 2012.06.07 11:08
수정 2013.05.22 15:01
<김헌식 칼럼>지위의 상징으로 격상, 이에 따른 문화 신드롬
KBS 드라마 '넝쿨째 들어온 당신' 포스터.ⓒ KBS
<빛과 그림자>의 안재욱은 강기태를 통해 손담비, 남상미 등 만인의 여성들에게 호감을 한 몸에 받는 쇼 비즈니스의 열혈남아로 꽃중년의 매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중년임에도 총각으로 드라마 내내 당당하게 등장했다. 요즘 드라마에서 꽃중년 총각은 또 있다.
<바보 엄마>에서 신현준은 김선영ㅡ하희라를 사랑하는 최고만 역을 통해 꽃중년의 매력을 독특하게 발산한다. 최고만은 상류층 중에 상류층이지만 더 개성이 독특한데 원숙한 품격의 중년과는 코드가 다르다. 품격의 꽃중년 캐릭터는 따로 있었다.
<신사의 품격>에서 장동건은 건축사로 등장해서 꽃중년의 최고봉을 이룰 것으로 주목되었는데, 영화 <건축학 개론>의 건축기사 엄태웅의 매력을 뛰어넘을지 궁금증을 일으켰다. 물론 그 자체로는 장동건이 낫다는 건 불문율. 한 기혼 여성 커뮤니티의 조사에 따르면 최고의 꽃중년은 차승원이었다. <최고의 사랑>이라는 드라마 덕을 톡톡히 보았다. 그리고 중년 같지 않는 중년 캐릭터를 소화했던 김갑수, 정보석, 한석규이 순위를 차지했다.
여기에서 꽃중년은 40대의 미남스타를 가리킨다. 꽃미녀보다 꽃미남이 어울리듯 애써 꽃을 더 붙이는 건 남자다. 꽃미남이 주로 20대를 가리키는 것과 대조된다. 나이는 40대이지만 외모와 감각은 젊은이들과 다를 바 없는 이들이다. 이병헌, 배용준, 서태지, 박진영, 유재석 등은 40줄에 든 지 오래지만 여전히 젊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철저한 관리와 절제에서 비롯한다. 남성들도 이제 피부 관리와 화장, 그리고 성형에도 나서고 있다.
사실 예전에는 40대라고 하면 노숙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중늙은이라는 말도 들었다. 어쩌다 이런 40대가 꽃중년이 된 것일까. 이제 40부터 중년이라는 종말을 고해야할 시대가 된지 모른다. 40대에 노총각인 경우는 지탄의 대상이 되기에 알맞았다. 하지만 지금은 40살이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이는 어쩌면 평균 수명 탓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예컨대, 2012년 현재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86세다. 앞으로는 더 늘어날 전망인데, 2020-2025년 즈음에는 100세에 이른다고 한다. 평균 수명에서 전반과 후반을 나눈다면, 50세까지는 인생 전반에 해당한다. 평균 40살의 사회에서는 10대 후반에 결혼을 해야 한다. 평균 수명이 50세였을 경우에는 60에 환갑잔치도 했고, 서른 살은 정말 꽤나 나이가 든 축에 속한다.
노총각의 기준은 이에 따른 것이었다. 오늘날 환갑잔치는 유명무실하고 칠순도 잔치가 아니라 간단한 식사로 대체한다. 현재 86세의 평균 수명이라면 43세까지는 아직 청춘인 셈이다. 실제로 40대 남성 일곱 명 가운데 한명은 총각이다. 아직 어른이 아닌 것이다. 앞으로 평균수명이 길수록 꽃중년의 나이는 뒤로 미뤄질 것이다.
그런데 꽃중년에는 여성들도 있는데, 이들은 거의 남자들에게 회자가 되지 않는다. 회자가 된다고 해도 일부 배우에 한정된다. 그 이유는 남성들은 끊임없이 젊고 예쁜 새로운 배우들을 상품 처음 찾는 경향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몰입한 배우들을 지속적으로 지지해간다.
따라서 젊은 시절의 꽃미남 오빠는 중년이 되어서도 꽃중년이 되어야 한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양정아가 윤빈 역의 꽃중년 김원준 을 계속 추종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한편으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꽃중년의 부각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꽃중년 현상은 배우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꽃중년을 가리키는 유사한 말로 노무족이나 레옹족 등은 자기관리와 투자에 집중하는 남성들을 가리킨다. 그루밍족은 최근에 각광받는 꽃중년 족의 사촌이다. 이들 종족의 공통점은 더 이상 아저씨 불리기를 거부하는 것. 그들은 실제로도 젊은 오빠 같은 이미지를 추구한다. 단적으로 꽃을 든 남자가 아니라 화장하는 남자들이며 외모에 대한 자기 투자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꽃중년이 되려고 하는 것일까? 본능적으로 젊어지고 싶고 화면 빨을 잘 받기 위해서일까? 자신만의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일까. 여성만이 외모를 꾸민다는 담론에서 차별을 받은 남성들의 반란일까. 물론 그러한 점이 있을 수 있다. 미에 대한 취향과 선호는 남녀를 불문한다.
꽃중년 이미지 뒤에는 우아한 백조의 물갈퀴질 같은 필사적인 행위들이 있음을 간과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꽃중년으로 불리는 이들은 매우 혹독한 관리와 트레이닝, 개인 통찰의 연속성이 추구되어야 한다. 그들은 다름 아닌 생존의 경쟁의 와중에 있는 것이다.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이를 악물고 매니지먼트에 임해야 한다. 외모에 신경을 쓰는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단지 아름다움의 추구를 넘어서 조직과 환경에서 자신의 매력을 증대시켜 원래 자신이 추구하는 혹은 성공 로드맵을 진행시키기도 한다.
생존 경쟁에서 이겨내려는 고군분투이지만 노화 현상의 본격화에 따른 왕따의 공포감과 불안감이 배어 있다. 노화는 고독이다. 노화는 소외와 배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버림받지 않는 길은 부지런히 좋은 상태를 유지하려고 각고의 노력을 하여부려는 것이다.
아저씨 같다는 말을 듣는 순간 배제와 소외 고독한 감정에 휩싸인다. 아저씨 같은 이들과 어울리려는 사람들은 없기 때문이다. 조직구성원들만이 아니라 고객들도 마찬가지다. 젊었을 때만이 아니고 나이가 들어 노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미(美)의 트렌드를 따라가야 할 운명이다.
외모와 패션 등에 자기 취향과 소신이 있는 이들에게 화장하는 남자론은 환영할만하다. 하지만 외모가 하나의 자산으로 남자들에게도 갖추어야 할 강력한 조건이 되는 바에야 이 때문에 눈물을 흘려야 하는 이들은 생겨나는 법이기도 하다. 외모 때문에 치별을 받는 여성처럼 남성들도 그러한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예쁜 남자의 범람에서 우려되는 점이다. 이대로라면 여성판 <미녀는 괴로워>같이 남성 버전도 조만간 만들어지는 것도 낯선 일은 아니게 될 법 하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