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잘 나간 노바소닉, 사라진 건 내탓이요"
입력 2011.08.1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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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했고, 꾸밈이 없었다. <데일리안>이 만난 ‘가수’ 이현섭은 그랬다. 인터뷰 내내 가수로서 살아가고 있는 그의 삶에 있어 기쁨과 좌절, 고뇌와 희망에 대한 진솔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현섭은 그룹 ‘노바소닉’의 2대 보컬 출신이다. 이현섭의 외모가 1대 보컬인 김진표와 닮았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오디션을 통해 당당히 보컬 자리를 꿰찼다. “‘27만 대 1’의 경쟁을 뚫었다”는 그의 얘기처럼 록밴드계의 전설적 그룹인 ‘노바소닉’의 보컬을 맡았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가창력은 이미 인정받은 셈이다.
하지만, 이현섭의 노바소닉은 김진표가 이끌던 당시만큼의 인기를 누리진 못했다. 음악적 변화를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먹히지 않았다. 대중들에겐 래퍼인 김진표가 보여주던 랩 메탈의 색깔이 너무나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노바소닉의 생명력이 죽었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가슴 아프지만 다 제 탓이다. 래퍼였던 진표 형이 (노바소닉) 1집부터 3집까지 했다. 당시 노바소닉은 강한 음악에 맞는 강한 목소리를 가진 보컬을 찾았다. 오디션을 봐서 내가 보컬이 됐다. 그런데 앨범 색깔이 틀어졌다. 대중적으로 치우쳐버린 것이다.
강한 음악을 하기 위해 내가 뽑혔는데, 음악은 대중적으로 치우쳐 버렸고, 보컬도 진표 형이랑 이미지는 비슷한데 딱히 매력은 없고...거기다 내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공중파에 나오니 어리바리 돼 버렸다.
금전적 수익도 노리고 대중적으로 가니 음악 색깔이 모호해져 버렸다. 내 주장을 어필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또한 진표 형의 이미지를 깨질 못한 내 자신에 대한 자책감이 들었다. 팀 멤버들 사이에서도 보이지 않는 채찍이 나한테 돌아왔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노바소닉에서) 나오게 됐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2004년 1월 방영된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의 OST에 참여하게 됐다. 이현섭은 작곡가 박준수가 만든 ‘My Love’를 통해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원래 메인 타이틀곡이 아니었지만, 조인성 소지섭 하지원 등 당대 최고 배우들의 연기와 어우러진 노래의 인기에 힘입어 메인 타이틀곡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커피숍, 길거리, 공항, 스키장 등 곳곳에서 내 노래가 나왔다. 기분이 정말 좋았죠.”
하지만 ‘My Love’의 대히트에도 불구하고 이현섭의 ‘무명’ 신세는 여전했다. 사람들은 ‘난 안 되겠니 이 생에선 다음 생에선 되겠니’라는 가사는 기억했지만, 정작 노래를 부른 이현섭은 기억하지 못했다. 대중들은 가사 때문에 또 다른 OST곡인 ‘안 되겠니’를 부른 조은으로 착각했다.
“그렇게 내 노래가 인기를 얻었지만, 사람들은 나에 대해 잘 모르더라. 답답하기도 하고, 마음도 아프고 했다. 행사에서 내 노래를 부르는데 사람들에겐 ‘모창 잘한다’는 말까지 들었을 정도로 씁쓸하다.”
그래도 ‘My Love’로 주목받은 덕분에 이현섭은 한 소속사와 계약을 하게 된다. 당시 그 소속사엔 요즘 <나는 가수다>에서 ‘대세’로 통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김범수가 있었다. 지금에 비하면 그 때의 김범수는 ‘노래 잘 하는 가수’ 중 한 명 정도였다.
‘보고싶다’와 ‘약속’ 등의 곡으로 당시 꾸준한 인기를 누리던 김범수와 달리 이현섭은 소속사와 계약한 후 앨범은 내보지도 못한 채 ‘연습생’ 생활을 해야만 했다. 한달 정도로 생각했던 앨범 준비는 6개월, 1년을 넘어 4년이나 딜레이 됐다.
결국 2007년 이현섭은 1집 앨범 ‘휘루(揮淚)’를 내긴 하지만, 무대에서 노래할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잡지 못한 채 별다른 활동 없이 앨범활동을 마감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그는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당시엔 사는 의미가 없었다. 자포자기를 하게 되고, 내 스스로도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도 느꼈고, 그래서 음악하는 사람들도 만나지 않았다. 망가질 수 있을 만큼 망가졌다.”
궁금증이 생겼다. 지금에 와서 김범수와 이런 격차가 생기게 된 원인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이현섭에게 물었다.
“내가 너무 자만했기 때문”이라는 게 이현섭의 답변이었다. 그는 “난 록커니까, 이런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부연했다.
“회사 핑계도 댔지만, 내 자신한테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마음을 잡으면 됐었는데, 회사 핑계를 대면서 내 스스로는 나태해졌다. 앨범을 안 내준다고 점점 연습이나 노력도 안 했다.”
김범수가 원망스러웠을 수도 있었을 터다. 소속사는 ‘이현섭이 아닌 김범수를 선택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결과가 오늘 날 김범수의 성공을 견인했을 수도 있다. 이현섭에게 김범수는 어떤 존재일까.
“범수는 나랑 동갑내기 친구 사이다. 요즘은 바빠서 그런지, 중간 중간 (내가) 잘 못했었고 그러다 보니 위치적으로도 그렇고... 너무 멀어져 버렸다. 범수는 정말 열심히 하는 친구였다. 원래 노래를 잘했지만, 꾸준히 준비하고 노력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범수를 있게 한 것이다. 참 본받을만한 친구다.
범수가 잘 되는 모습을 보여주니 나는 용기를 얻는다. 나도 열심히 하면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나도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 ‘열심히 하는 가수’라고 인정받지 않을까 생각한다. 노래연습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고등학교 1학년 때로 돌아가 발성연습부터 다시 하고 있다. 예전엔 무의미하게 보냈는데, 지금은 하루하루 알차게 보내려고 하고 있다.”
김범수를 칭찬하고 있는 이현섭의 눈빛이 밝아보였다. ‘희망’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의 입에선 “전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는 말이 나왔다. 1집 앨범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 이후 침체기를 겪던 이현섭은 3년 전 16년지기 친구와 사무실을 냈다. 경제적으로는 힘들지만,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하다 보니 마음이 즐겁다고 한다. 이런 행복감은 그를 노래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솔로활동을 시작한 후 이런 기분에 연습하고 노래하는 것은 처음이다. 항상 목표를 좇아 노래했다. 그런데 지금은 주위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너무 많아 연습을 게을리 할 수 없다. 감사하는 마음과 여러 사람들의 (응원의) 기를 받으면서 노래를 하니 기분이 좋다. 행복한 상황에서 노래한다. 이제는 무대를 즐기면서 노래한다.”
마음껏 노래할 수 있는 행복감은 지난 6월 홍대에서 가진 콘서트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무대를 즐기면서, 함께 호흡할 수 있는 팬들 앞에서 노래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마음이 울컥했다. 그래선지 그는 무대에서 눈물을 보였다.
당시 이현섭은 “아이돌가수에 밀리고 높은 인지도 가수의 밀려 자신이 설 무대가 많이 없다”며 “생각보다 많은 관객이 찾아주시고 호응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무대를 가리지 않고 내가 설 수 있는 무대라면 어디든지 뛰어가겠다”고 팬들에게 말했었다.
“1집 앨범 후 시간이 흘러가면서 나이가 어설프게 돼 버리니 지금 방송을 보면 아이돌이 대세다. 나이 있고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설 무대가 없다. ‘나가수’는 대체로 인지도 있는 사람들 위주로 구성되기 때문에 인지도가 없으면 나갈 수가 없다.
결국 내가 설 무대는 방송 상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설 수 있는 무대는 소규모의 라이브 무대나 콘서트다. 하지만 이런 무대가 나에겐 너무나 소중하다. 이런 무대에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내 노래를 듣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열심히 하고 있는 가수가 있다는 것을 대중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현섭은 홍대에서 관객들과의 뜨거운 만남을 시작했다. 세 번째 공연을 앞두고 있는 그는 긴 설명 대신‘비밀 콘서트’라고 짧게 표현한다. 자신의 노래를 좋아하는 팬들과 즐겁고 행복하게 노래하는 게 전부다보니 굳이 설명으로 포장할 필요가 없어서다. 공연 만큼은 수익과 무관하게 꾸준히 이어간다는 게 자신의 공연에 대해 장담하는 전부다.
이런 저런 대화가 오간 후 갑자기 그에게 ‘닮고 싶은 가수가 누구냐’고 던져봤다. ‘노바소닉’ 보컬 출신인데다 그가 가수로서 꿈꾸는 미래가 궁금해서였다. 이 질문을 던지면서 기자의 머릿속엔 ‘임재범’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현섭의 대답은 기자의 생각을 비껴나갔다. 이현섭은 “김장훈”을 지목했다.
“김장훈 선배의 공연을 보면 공연철학도 그렇고 내가 추구하는 것 같다. 그의 공연과 그 안에서 흘러나온 노래 속 감정에서 인간미와 정을 느낄 수 있다. 김장훈 선배가 언젠가 여름에 공연을 하는데 팬들에게 ‘눈을 보여드리겠다’고 하더니 공연이 끝날 때쯤 제설기를 가져와 눈을 뿌려주더라. 팬들이 감동을 안 받을 수 있겠느냐. 나도 그런 공연을 하고 싶다. 재미도 있고, 팬들에게 무언가 남겨줄 수 있는 그런 공연을 말이다.
김장훈 선배의 기부하는 삶도 닮고 싶다. 나도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지만 ‘자선공연’이라는 연락을 받으면 무조건 한다. 물론 아직까진 자선공연을 가도 사람들이 알아봐주진 않지만...그래도 김장훈 같은 삶을 살고 싶다.”
1시간 30여분 동안 진행된 인터뷰 마지막에 그의 ‘좌우명’을 물었다. 그는 한 동안 고민에 빠지는 듯 했다. 짧은 침묵 이후 나온 그의 답변은 “대중은 나를 버려도, 나는 대중을 버리지 않는다”였다. 이현섭이 왜 노래를 하는지 알 수 있게 해줬다. ‘My Love´라는 자신의 노래 제목처럼 이현섭은 대중들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