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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5.16 회고, 왜 쿠데타 아닌 혁명인가

김소정 기자 (bright@dailian.co.kr)
입력 2011.05.13 12:19
수정

"4.19 혁명을 잇는 청년 장교들의 정군운동이 5.16으로 귀결된것"

"6.25때 살아남은 젊은 장교들이 나라 위해 두 번째로 죽음 각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자료사진)
5.16, 왜 쿠데타가 아닌 혁명으로 봐야하는가.

5.16의 50주년을 사흘 앞둔 13일 이 사건을 혁명으로 재해석하는 기사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5.16을 기획하고 실행했던 김종필(85) 전 총리의 인터뷰를 통해서다.

김 전 총리는 '5.16이 혁명이냐 쿠데타냐'는 기자의 도발적 질문에 "쿠데타는 같은 계층에 있는 사람이 반란을 일으키는거고 레볼루션(혁명)은 민심을 기초로 아래서 일어나 권력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레볼루션"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한 생생한 회고담을 풀면서 3.15 부정선거로 인해 발발한 4.19 혁명을 잇는 젊은 장교들의 정군운동이 결국 5.16혁명으로 귀결된 것이라고 설파했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제2군 부사령관인 소장 박정희와 8기생 주도세력은 장교 250여 명 및 사병 3500여 명과 함께 한강을 건너 서울의 주요기관을 점령했다.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해 전권을 장악하면서 군사혁명의 성공과 6개항의 ‘혁명공약’을 발표하는 것으로 제2공화국은 무너졌다.

김종필 전 총리는 당시 미국 CIA(중앙정보국)도 장면 정권의 혼란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고, 박정희 소장 대신 박병권 장군과 장도영 장군을 접촉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유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선 6.25 전쟁 전까지 자신조차도 빨갱이로 의심했을 정도였다는 것.

김 전 총리와 박 전 대통령의 5.16에 대한 교감은 3개월 전에 이뤄졌다. 처음 박병권 장군도 논의됐으나 그는 군대 내 족청(조선민족청년단) 지도자였고, 이미 5.16에 대한 많은 계산을 끝낸 그와는 결국 함께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4.19 혁명을 촉발시킨 3.15 부정선거 이후 군대 내에서 일었던 정군운동이 결국 5.16의 배경이 됐다고 강조하며 당시를 회고했다.

“3.15 부정선거는 방첩대가 주로 한 짓이에요. 군대 내 투표장 천장에 붓두껍을 매달아놓고 병사의 손이 야당 쪽으로 가면 붓두껍 매단 위에서 ‘여당 쪽 찍으라’는 목소리가 들렸지요.” 당시 부정선거는 전원 찬성표를 미리 찍어놓고 따로 투표를 시킨 다음 투표지를 몰래 다 태워버리는 식으로 이뤄졌다.

정군운동이 시작되면서 김 전 총리는 CIC(방첩대)에 잡혀간 일이 있다. “송요찬 참모총장을 만났는데, 송 장군이 ‘도대체 나더러 뭘 어떻게 하라는 거냐’ 물어요. ‘다 아실텐데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그만두고 나가십시오’ 했어요.”

김 전 총리는 송 장군에 대해 “선거가 끝난 뒤 육군본부에 들어서서 당당하게 ‘1군 산하에서는 110% 달성했어’라고 외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송 장군이 전역한 뒤 김 전 총리는 방첩대에서 석방됐지만 해가 바뀌어 다시 헌병대로 잡혀갔다고 한다. 그가 “‘잘못이 있으면 군법회의에 회부해라’는 주장을 하자 헌병감 조흥만 장군이 와서 ‘네 뒤에 누가 있다고 알고 있는데, 박정희 장군의 뒤를 캘 것이다’며 전역을 종용했고, 그는 결국 1961년 2월 15일 ‘내가 그만두겠다’며 군을 나왔다”고 했다.

김 전 총리는 송 장군의 다음 후임인 장도영 장군을 몰아낸 이유에 대해서도 “장 장군이 자꾸 이북 출신 장군들을 포섭하고, 헌병을 배치하는 등 자기 주변에 세력들을 규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러다간 박 소장 결딴난다’는 생각에 중앙정보부 요원 20여명이 헌병들을 먼저 제압한 뒤 장 장군을 연행해 약식 군법회의를 거친 뒤 본인의 희망대로 미국으로 보냈다.

혁명 당일 피흘리는 무력충돌을 피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일이 잘 되려고 했던 것”이라고 답했다. 의정부에서 서울 가는 길목마다 미 1군단 헌병들이 6명씩 보초를 서고 있었지만 6군단 포병들이 중포로 무장하고 새벽에 서울로 들어가는 행렬을 보고도 훈련인줄 알았던지 저지당하지 않았다.

김 전 총리는 회고담을 통해 혁명을 구상한 장교들은 박정희의 강직하고 청렴함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정군운동이 혁명으로 발전했지만, 그때 장군들 다 썩었다구. 박정희는 웬만큼 생각 있는 장교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어. 이분밖에 없다. 그런 생각이 퍼져 있었지. 그땐 내가 (박정희의) 조카를 (아내로) 맞이하기 전이야.”

그는 또 박 전 대통령의 유능함에 대해서도 “1949년 종합적정보고서라는 걸 만든 적이 있는데, 그걸 보고 박정희가 이북이 곧 쳐들어온다고 하는 거야. 6·25전쟁 때 보니까 박 대통령이 6개월 전에 예상했던 침투경로 그대로 내려왔어”라고 밝혔다.

김 전 총리는 ‘박정희는 떠받들어졌다. 실제로 기획하고 집행하고 성사시킨 사람은 김종필이다’라는 말이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중앙 일은 네가 해라, 박 대통령이 그랬어요, 서울은 네가 맡아라, 네가 주가 되라, 나머지 외곽은 내가 하마, 이미 손써놨다, 이것이 합쳐진 것이지요”라고 답했다.

그는 또 “5·16이 성공하고 한참 후의 일인데 그와 관련된 일이 있어. 우리 집 네 귀퉁이를 중앙정보부가 감시했어. 내가 참다 참다 청와대로 가 박 대통령에게 불평을 했어. 아니, 제가 나세르입니까? 뭘 감시를 합니까. 저 그런 놈 아닙니다. 그러니까 내가 당신 자리를 넘보겠느냐, 그렇게는 안 한다 하는 것을 나세르를 인용해 표현했지. 그러니까 박 대통령이 눈 감고 아무 말 않다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뭘 그럴 수도 있지…’ 그러는 거야. 내가 그 장면을 잊어버리지 않아”라고 했다.

‘영원한 2인자’로 불리는 김종필 전 총리는 5.16의 의미에 대해 “6.25전쟁에서 살아남은 젊은 장교들이 나라를 위해 두 번째로 죽음을 각오하고 덤빈 숭고했던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데일리안 = 김숙현 기자]

김소정 기자 (bright@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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