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떠난 안준호 감독 ´명장 혹은 개그맨´
입력 2011.04.08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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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경력 불구 평탄하지 않은 행보
‘삼성 황금기’ 함께한 언변과 쇼맨십도 화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온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안준호 감독의 지도자 인생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최근 전격 자진사퇴를 결정한 서울 삼성 안준호 감독은 한국농구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독특한 ´캐릭터´로 꼽힌다.
지도자의 권위가 절대적이고 선수들을 압도하는 강한 카리스마가 감독의 덕목으로 평가받는 한국 스포츠계에서 부드럽고 온건하다 못해 다소 희화화된 면이 많아 안준호 감독의 이미지는 이질적이기까지 하다.
2004년 5월부터 전임 김동광 감독의 뒤를 이어 삼성 구단의 3대 감독으로 취임한 안준호 감독은 7시즌 간 팀을 이끌며 챔피언결정전 우승 1회, 준우승 2회의 업적을 세웠고 재임기간동안 단 한 번도 플레이오프 진출을 놓치지 않으며 삼성농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재임기간 7년은 프로 이후 삼성 감독으로서는 역대 최장수 기록이기도 하다.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온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안준호 감독의 지도자 인생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는 1997년에 청주 SK(현 서울 SK)의 창단 감독을 맡아 서장훈-현주엽이라는 당대 최고의 선수들을 동시에 보유하는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1998-99시즌 초반 방콕 아시안게임 대표차출로 두 선수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성적부진으로 경질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사실 삼성 감독 시절은 평가가 엇갈리는 부분도 있다. 한 팀에서 7년 이상 장수 감독으로 머물며 재임기간 100% 플레이오프 진출과 우승의 대업을 동시에 이뤄낸 것은 한국 프로농구에서 안준호 감독과 대구 오리온스 시절의 김진 감독, 단 2명밖에 없다.
안준호 감독은 특유의 부드럽고 유연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항상 개성강한 스타플레이어들이 넘쳐나던 삼성농구를 잘 조율해내며 꾸준한 성적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특히 2005-06시즌 2위로 챔프전에서 올라 정규리그 1위 모비스를 챔프전 사상 첫 4전 전승으로 완파하며 팀에 두 번째 우승을 안긴 것은 안준호 감독의 지도자 생활에서 가장 화려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꾸준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안준호 감독만큼 유독 리더십과 ´선수장악력´에 대한 논란이 따라다녔던 인물도 드물다. 안준호 감독의 삼성 시절은 내내 스타선수들과의 불화설이나 긴장관계로 점철돼 있었다.
2005-06 시즌 모비스와의 챔피언결정전 작전타임에서 터져 나온 이규섭의 벤치 항명은 팀의 우승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큰 논란으로 남았을 정도였다. 안준호 감독은 팀의 간판스타였던 서장훈, 이상민과도 한때 불화설에 시달렸고, 올 시즌 막판에는 귀화혼혈선수 이승준의 항명 논란으로 한동안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감독의 권위가 절대적인 한국 스포츠에서 선수가 감독의 지시에 이의를 달거나,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다른 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그런데 삼성에서는 경기 중 이런 장면이 흔하지 않았다. 작전타임 때마다 안준호 감독과 베테랑 선수들이 왁자지껄하게 작전을 상의하고 때로 이견을 연출하거나, 선수의 뜻대로 감독의 전술이 바뀌는 장면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작전토론´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좋게 말하면 선수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민주적 리더십이었지만, 소위 전창진이나 허재, 유재학 같은 ´카리스마´ 감독들이 이끄는 팀에서도 선수들에게 그런 장면이 가능했겠냐는 점에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팬들은 삼성의 스타 선수들이 감독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너무 무례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안준호 감독이 7년간 삼성을 이끌고 꾸준한 성적을 이끌어냈다는 점은 의혹에 대한 충분한 해답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항명파동 이후에도 이규섭은 지금까지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잔류하고 있고, 이상민이나 이승준도 안준호 감독과의 사이에서는 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오히려 안준호 감독이기에 이런 개성강한 선수들의 자기주장을 모두 끌어안고 포용할 수 있었던 게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2007년에는 간판스타 서장훈의 FA 이적으로 우승전력에서 멀어졌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상민을 중심으로 한 가드 위주의 농구로 짧은 시간에 팀 색깔을 바꾸는데 성공하며, 오히려 2년 연속 챔프전에 진출하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다.
2008-09시즌에는 4강에서 1위 모비스를 탈락시키는 한국 프로농구 사상 최고의 업셋(뒤집기)을 선보이며, 정규시즌 4위 팀의 사상 첫 챔프전 진출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올 시즌에도 시즌 초반 국가대표 3인방의 아시안게임 차출 공백을 딛고 식스맨들을 앞세워 초반 리그 선두권을 질주했다. 삼성이 꾸준히 플레이오프 단골손님으로 장수할 수 있었던 데는 안준호 감독의 노련한 위기대처능력과 유연한 전술운용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는 평가다.
한편으로 안준호 감독은 근엄해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유머러스한 언변과 친근한 쇼맨십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안준호 감독은 ´사자성어´의 달인으로 불릴 만큼 인터뷰 때마다 촌철살인의 사자성어로 숱한 어록을 만들어낸 인물이었다.
우보만리, 교병필패, 수사불패, 성동격서, 유구무언, 절치부심 등 톡톡 튀는 사자성어로 결전에 임하는 각오와 팀의 상황을 묘사한 안준호식 화법은 인터뷰 때마다 숨은 볼거리였다.
안준호 감독은 전창진 감독과 함께 미디어와의 대화에 가장 적극적이었고, 직접 인터뷰를 위해 별도로 대화술 교육을 받기도 했을 만큼 개방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자연스러워진 하프타임 인터뷰도 초기에 감독들이 꺼려하던 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인물이 바로 안준호 감독으로 알려졌다.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과는 상반되게 작전타임이나 인터뷰 때마다 어눌한 말투, 스타선수들의 관계에 대한 루머 등은 안준호 감독의 이미지를 다소 희화화시킨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삼성은 안준호 감독과 함께 구단 역사의 황금기를 함께했다는 점이다. [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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