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 고구려 4보루’ 1500년 역사를 뚫고 섰다
입력 2010.10.3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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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연의 우리 터, 우리 혼>경기도 구리시, 국내 70개 보루 중 처음복원
아차산과 용마산은 구리와 동서울 인근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아차산 좌우로, 동쪽은 왕숙천, 서쪽은 중랑천을 따라 남북으로 옛 부터 교통로가 연결돼 있다. 북쪽은 의정부에서 내려오는 길목이, 남쪽으로는 한강이남 지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지형이다. 이곳은 백제, 고구려, 신라가 서로 영토를 차지하기위해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던 역사의 현장이다.
복원된 아차산 4보루
당시 삼국 중에서 이 일대를 점령한 세력은 적의동태를 살피는 목적으로 봉우리마다 크고 작은 보루를 쌓았다. 아차산 긴 줄기에는 현재까지 확인된 보루만도 20여 개소에 이른다. 이들 보루들은 대체적으로 둘레가 300m 이내의 소규모로 쌓았으며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집중 분포돼 있다. 보루는 일반적인 산성처럼 규모가 크지 않아 유적전문가가 아니면 좀처럼 식별하기가 어렵다.
아차산 주변의 보루가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4년 구리시에서 지표조사가 실시되면서다.조사당시 이들 성벽은 조선시대 목장성과 관련된 유적으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조사 중 아차산 4보루에서 토기편과 철제 유물이 출토되고, 그 중 토기 5점은 완형 복원이 가능한 상태로 수습됐다. 복원된 토기들이 고구려계로 밝혀지면서 아차산 일대 보루들이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점령할 때 쌓은 군사요새로 추정하는데 결정적 증거자료가 됐다.
아차산 4보루 전경
이어 구리시로부터 용역을 받은 서울대학교 박물관 팀이 1997년부터 1년에 걸쳐 아차산 4보루를 전면 발굴하기에 이르렀다. 이 발굴은 남한지역에서 처음 시작한 고구려유적 발굴이라는 점에서 학계에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발굴결과 많은 양의 고구려 유물이 출토됐으며 성벽과 치, 건물지 7개, 배수시설, 저수시설 2기 등이 밝혀졌다.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정책으로 한강유역을 장악했던 고구려가 한강지역 방어를 위해 쌓았던 보루의 하나인 아차산 4보루 성벽이 1500년의 역사를 뚫고 우리 앞에 섰다. 아차산 보루조사가 시작된지 15년 만에 국내 70여개소의 보루 중, 처음 복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아차산 주변 보루군 분포지역
구리시청 구선옥 학예사는‘현재까지 아차산 보루는 6보루까지 확인됐다고 했다. 그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4보루의 성벽 복원이 마무리 됐으며, 내년 초부터는 일반인들도 성벽을 볼 수 있으며, 군사시설인 건물도 복원할 계획이라고’밝혔다.
그동안 구리시와 서울특별시에서 아차산 보루군들의 유물을 조사한 결과 아차산 보루군들은 고구려가 5세기 한강유역에 진입한 후 551년 신라와 백제에 의해 한강유역을 잃기 전까지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삼국의 영토다툼 때 쌓은 것으로 밝혀졌다.
아차산 일대 보루들은 아차산공원 아래 홍련봉 보루부터 이어진다. 하지만 홍련봉은 특별한 임무가 없는 사람은 찾지 않고 있다. 아차산 1보루는 아차산 남쪽 끝자락인 팔각정 뒤편에 있다. 전체 둘레는 100m 남짓하다. 동쪽 성벽 일부가 등산로로 이용되면서 훼손이 심한편이다.
4보루 고구려 막사 조감도
1보루에서 2보루 가는 중간 왼쪽의 높은 봉우리가 5보루다. 둘레는 160m, 보루정상에서 보는 조망권은 압도적이다. 새해 해맞이 장소로 가장 인기 좋은 장소다. 한강 남쪽 암사동에서 풍납토성, 몽촌토성 등 잠실까지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고, 발치아래 아차산성과 멀리 남한산성과 이성산성이 눈에 또렷하다. 정상과 북쪽 비탈면에서 석축일부가 노출되었으나 보존차원에서 복토했다. 5보루에서는 고구려가 아닌 통일신라시대의 토기조각이 여러 점 발됐다. 고구려의 보루를 파괴하고 통일신라시대의 고분이 이곳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보루 성벽
2보루는 3보루 가는 길에서 동쪽능선에 자리 잡았다. 둘레가 아차산 보루 중에서 가장 작은 40m다. 보루남쪽에는 치 형태의 시설물이 보이고, 정상에는 불에 탄 붉은 흙과 토기편이 발견되기도 한다. 보루동쪽은 암봉의 절벽이며, 70m 아래는 대성암이 있다.
아차산 6보루는 3보루에서 남쪽으로 약 200m 떨어진 지점이다. 2005년 3보루에서 디딜방아의 흔적인 볼씨가 나와 조사에 참여했던 사람이 발견하면서 알려졌다. 보루는 등산로 한가운데 있어 윤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학계에서는 지형 등을 확인해볼 때 또 하나의 보루로 인정했다. 둘레는 80m 정도이며 노출됐던 볼씨는 흙을 덮어 보존하고 있다.
2보루 성벽
3보루는 아차산의 정상으로 평탄지가 넓게 조성돼 있다. 아차산 보루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며 전체 둘레는 304m다. 형태는 북에서 남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 또한 보루동쪽에 두 줄의 성벽이 있는데, 안쪽 성벽은 건물의 벽체로 추정하고 있다. 성벽간격은 6,5m다. 이곳에서 4보루로 가는 등산로에는 목장성 또는 장성으로 알려진 무너진 석축이 3m 폭으로 남아있다.
3보루 정상 평탄지
아차산 4보루는 용마산 정상으로 가는 등성이에 자리 잡았다. 아차산 보루 중에서 가장 핵심 시설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는 곳이다. 전체 둘레는 238m로 성벽 높이가 4m 나 된다. 한강이 보이는 동쪽성벽이 가장 많이 남았으며 치도 5곳에 설치했다. 보루에서 7기의 건물터가 확인됐고, 3칸의 온돌방과 저수, 배수시설까지 발견됐다. 이런 규모로 보아 100여명의 병력이 주둔했을 것으로 학계서는 보고 있다. 여기서 수습된 토기의 명문을 볼 때 상당한 신분의 소유자가 아차산 보루에 파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4보루에서 나온 유물은 모두 고구려 것으로 판명됐다. 4보루를 지나 용마산 길은 가파른 지형이다. 무너진 성돌이 당시 긴박했던 상태로 여기저기 너부러져 있다. 그 성 돌들은 등산객들의 발길에 밟히면서 깎여나가고 있다. 아차산 보루군은 맞은편 용마산 보루군과 함께 오르다가 용마산 5보루에서 만나 망우산 까지 길게 뻗었다.
5보루에서 본 한강
산성은 고분과 더불어 우리역사의 시대를 연구하는 핵심적인 유적이다. 산등성이에 뒹구는 성돌 하나에도 조상들의 숨결이 있으며, 언제 이곳에 놓여 졌는가를 알게되면 단순한 돌이 아니라 당당한 역사의 복원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유적은 그동안 상당한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성곽은 1980년대 후반까지 부진을 면치 못했다. 1990년 중반부터 불기 시작한 성곽 연구기관들이 늘어나면서 이제 산성조사는 활발한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데일리안 = 최진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