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약사·크로캅 ´고독한 팔방미인´
입력 2010.08.03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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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문> 황약사와 파이터 크로캅 삶 들춰보기
김용 원작의 무협소설 <영웅문> 시리즈는 활극을 좋아하는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한 번쯤 읽었을 밀리언셀러다. 판타지 소설에 <반지의 제왕>이 있다면 무협 소설에는 <영웅문>이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영웅문>은 무협 소설이 가져야 할 모든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영웅문>은 총 3부작으로 나뉘어 국내에 소개됐다. 1부 사조영웅전(射雕英雄傳), 2부 신조협려(神雕俠侶), 3부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는 각각의 다른 주인공들을 내세웠지만 작품 간에 탄탄한 연관성으로 한번 책장을 넘긴 팬들에게 다시 덮을 기회를 좀처럼 주지 않았다.
<영웅문>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주인공 외에도 수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해 각각의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주요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웅문> 1·2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중 하나는 ´천하5절´이다. 전설적인 천하제일 고수 ´중신통(中神通)´ 왕중양(王重陽)을 중심으로 ´동사´ 황약사(東邪 黃藥師)-´서독´ 구양봉 (西毒 歐陽鋒), ´남제´ 단지흥 (南帝 段智興), ´북개´ 홍칠공 (北&19984 洪七公)의 5인이 펼쳐나가는 천하패권의 스토리는 읽는 내내 팬들의 손바닥에 땀을 쥐게 한다.
그중에서도 ´도화도의 도주´인 황약사는 가장 강한 개성을 자랑하는 인물로 꼽힌다. 어찌 보면 악인 같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선인의 이미지도 풍긴다. 좀처럼 정체를 알기 어려운 성격으로 그만큼 그에 대한 팬들의 평가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그 개성만큼이나 많은 관심을 받고 있고 어떤 면에서는 누구보다도 작품의 성격을 살리는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크로캅은 친해지기가 어려울 뿐 일단 자신의 마음에 들어온 상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따뜻한 애정을 베푼다.
스스로 고독 택한 ´팔방미인´
종합격투계에서 황약사와 비슷한 인물로는 단연 ´불꽃 하이킥´ 미르코 크로캅(36·크로아티아)을 꼽을 수 있다.
다재다능함은 물론 겉으로는 무뚝뚝하면서도 속은 따뜻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다소 차갑고 오만해 보이지만 때론 그런 점 때문에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중국 저장 성 저우산 군도에 위치하고 있는 타오화 섬을 실제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매화가 만발한 아름다운 섬 도화도, 무림계의 기인 황약사는 바로 이곳에 기거하며 세상과 단절한 채 자신만의 삶을 살았다. 어찌 보면 아무런 욕심도 없는 듯하지만 누구보다도 ´천하제일´이라는 단어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으며 자존심도 무척 강하다.
황약사의 비전절기인 ´탄지신통(彈指神通)´은 모두가 두려워하는 최고의 고급기술 중 하나다. 손가락 끝에 내공을 모아 퉁기듯 발사하는 이 초식은 타점을 한곳에 모아 일시에 상대를 공격하는 만큼 그 위력이 굉장하다. 더욱이 황약사 특유의 현란한 보법이 함께 하게 되면 언제 어디서 발사될지 몰라 상대방 입장에서는 공포 그 자체다.
전성기 크로캅의 트레이드마크인 왼발 하이킥도 이와 비슷하다. 스쳐도 한방이라는 말처럼 일단 얻어맞기만 하면 받게 되는 충격이 엄청나 상대로서는 경기 내내 경계를 늦출 수 없다.
탈 헤비급 스피드와 운동신경을 갖춘 ´얼음황제´ 에밀리아넨코 표도르(34·러시아)마저 대놓고 가드와 무릎을 올린 자세를 취하게 만들었을 정도다. 단순히 무작위로 터지는 것이 아니라 경쾌한 사이드스텝과 함께 폭발해 더욱 조심스럽다는 점도 황약사의 탄지신통과 흡사하다.
재주와 열정이 남다른 반면 다소 오만해 보이는 성격으로 일반적인 예법에 메이지 않고 자유로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황약사의 재능은 끝이 없을 정도로 그 폭이 넓다.
무공수련에만 전념했다면 더욱 뛰어난 성취를 올렸을 것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천문지리, 의술, 역학, 기문오행 등 동양의 철학과 사상, 의술에 고르게 관심을 가지며 각각의 분야에서 평균 이상의 수준을 자랑한다.
크로캅 역시 격투가라는 직업 외에 특수경찰 출신, 국회의원, 명예축구선수 심지어는 영화계나 CF모델 등 미디어 쪽까지 영역을 넓히며 다재다능함의 극치를 보여준 바 있다. 입식무대인 K-1에서 MMA로 전향해 성공을 거뒀다는 사실 역시 그가 아니면 이루기 힘든 결과물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황약사와 크로캅은 외롭다. 자신을 좋아해주는 이들 못지않게 많은 적(안티 팬)들이 도처에 깔려있으며 구태여 세상과 타협하려하지 않는 고집불통 성격상 본의 아니게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강을 꿈꿨지만 각각 왕중양과 표도르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분루를 삼켰다는 점도 공통점 중 하나다.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정의로운 남자들
동사의 ´사(邪)´는 간사함을 뜻한다. 하지만 황약사는 결코 간사하지 않다. 남들의 비위를 맞추기 싫어했으며 자존심이 워낙 강해 변명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입을 꾹 다물어버리는 특유의 성격 탓에 만들지 않아도 될 적들을 사방에 만들어놓기는 했다.
그러나 비겁한 방법으로 상대를 살상하지 않았고 세상과 동떨어져 살면서도 나라가 위험할 때는 기꺼이 목숨을 바쳐서 싸울 줄도 알았다. 또한, 사별한 아내와 외동딸에게 한없는 사랑을 베풀 줄 아는 가슴 따뜻한 사내이기도 했다. 그는 가족에게 헌신적인 남자였으며 가까운 이들을 보이지 않게 많이 챙겨줬다.
크로캅 역시 가까운 이들이나 가족들에게는 매우 따뜻한 인물로 정평이 나있다. 자신의 모든 인생 설계를 가족들 중심으로 생각하고 구상하는 것은 물론 괴짜로 유명한 퀸튼 잭슨과 남다른 우정을 과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숙적(?) 표도르의 동생 알렉산더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그만큼 크로캅은 친해지기가 어려울 뿐 일단 자신의 마음에 들어온 상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따뜻한 애정을 베푼다.
여기에 어린 시절 전쟁을 경험한 선수답게 애국심도 강해 국회의원-특수경찰 등으로 물심양면 국가에 공헌하고 있다. 격투가로 높은 인기를 누리며 MMA팬들에게 크로아티아라는 이름을 더욱 드높인 것 역시 큰 공로다.
그래서일까, 격투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한 크로캅의 말년 행보 역시 왠지 황약사와 비슷하다. 평생 도화도에서 아내를 그리며 세상과 단절하고 살 것 같았던 황약사는 언제부터인가, 다시금 강호의 일에 간섭하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유는 단 하나다. 사랑하는 외동딸 황용과 우직한 사위 곽정을 돕기 위해서다.
이후 그는 나라가 몽골에 침략에 위기를 맞자 과감하게 전쟁터에 뛰어들며 함께 싸우게 된다. 이때의 황약사는 성격적으로도 예전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지는 모습을 보인다.
은퇴와 UFC 재계약 사이에서 고민 중인 크로캅 역시 최근 평소와 달리 웃는 모습을 자주 보이며 심리적으로 한결 편안해졌다는 인상을 풍긴다. 꼬박꼬박 인터뷰를 하는 것은 물론 각종 매체 등을 통해 근황도 자주 전한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패트릭 배리(31·미국)와의 경기는 서로 너무 정답게 싸워 팬들 사이에서 ´친선경기(?)´라는 말까지 나왔다.
물론 이러한 크로캅을 아쉬워하는 팬들도 많다. 뭐니 뭐니 해도 그의 매력은 무뚝뚝한 인상에서 풍겨 나오는 살기등등한 모습이기에 경기력이 떨어지면서 카리스마까지 잃어버렸다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크다. 하지만 그도 나이를 먹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편한 아저씨 같은 캐릭터도 나름대로 정감이 가는 게 사실이다.
시대와 배경을 건너뛰어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황약사와 크로캅, 확실한 것은 그들이 팬들의 사랑을 받을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는 점이다. [데일리안 스포츠 = 김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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