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공자와 반란자 구분도 못하나" 베트남 참전 노병들 화났다
입력 2010.02.1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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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 상대로 ‘시위 대장정’ 돌입…법정단체 인정이 관건
찬비가 내리는 10일 아침, 베트남 참전 노병들이 여의도 국가보훈처 앞에 모여들었다. 대한민국 베트남 참전 유공전우회(중앙회장 이중형) 회원들. 주름이 파인 얼굴에 지팡이를 짚기도 했지만, 훈장을 패용한 얼룩무늬 군복 차림에 기백은 젊은날의 모습 그대로였다.
노병들은 국가보훈처를 상대로 1차 10일부터 12일까지, 2차 16일부터 19일까지 1일 8시간씩 7일간의 전례없는 ‘시위 대장정’을 예고하고 있다. 단단히 화가 났다.
10일 첫날, 보훈처 직원들이 구내 출입을 통제하고 경찰 병력이 투입돼 긴장이 감돌았으나 노병들이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아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노병들은 김양 보훈처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의 분노는 참전 전우들에 대한 차별대우와 명예 왜곡. 실질적인 대표성을 지닌 대한민국 베트남 참전 유공전우회(이하 ‘참전 전우회’)를 국가보훈처가 법정단체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참전 전우들의 법정단체는 고엽제 전우회가 유일하다.
문제는 베트남 참전 전우들에 대한 홀대와 형평성을 잃은 국가유공자 선정에 있다. 노병들은 엉터리 보훈 심사로 공무원 국가유공자 30%가 결격으로 드러난 감사원 감사 결과를 지적하며 “공무원은 음주사고를 내도 국가유공자냐”라고 항의하고, 민주화운동 관련 반국가적 인물을 국가유공자로 선정해온 난맥상을 아울러 비난하면서 “가짜 공무원 유공자 양산한 국가보훈처 해체하라”, “유공자와 반란자를 구분 못하는 몰상식한 김양 처장은 즉각 사퇴하라”고 외쳤다.
이날 모인 노병들은 200여명. 참전 전우회 16개 시도지부를 대표해 이날 시위를 주도한 지영수 경기도 지부장은 2009년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것으로 알려졌던 베트남 참전 전우의 국가유공자 인정이 포함된 보훈체계 개편안이 무산된 국가보훈처의 직무유기를 비판하면서 “우리는 국가의 부름을 받고 공산주의와 싸웠고 국가경제의 밑거름이 됐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우리가 큰 지원을 바라는 것 아니다. 국가유공자 인정과 우리 전우회의 법정단체 인정은 참전 전우들의 명예와 정체성의 문제다”라고 말했다.
참전 전우회는 16개 시도지부, 220개 시군 지회에 8만명의 회원 규모로 고엽제 전우를 제외한 95%의 전우들이 가입해 있는 것으로 파악돼 있고, 법원 판결로 베트남 참전단체의 대표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베트남 참전 노병들이 10일 국가보훈처 앞에서 김양 보훈처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참전 전우들의 명예왜곡에 항의하는 장례 퍼포먼스.
노병들의 주장은 법원 판결을 이행하라는 것.
국가보훈처 제대군인지원과의 주영원 사무관은 필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베트남 참전군인 전체를 대표하는 요건이 있어야 한다. 몇몇 임의단체가 있는데 어느 단체에 배타적 독점권을 갖는 법정단체 인정을 하면 다른 단체에서 가처분신청을 할 것이다. 법정단체 인정은 정부와 단체의 문제가 아니라 단체와 단체간의 갈등이다”라고 핵심을 비켜갔다.
이에 대해 참전 전우회 정충남 기획국장은 “한심한 소리”라고 일축하며 대한민국 6.25참전 유공자회의 사례를 들었다. 6.25 관련 임의단체 중에 가장 규모가 큰 단체에 대표성을 부여해 법정단체로 인정하니까 여타 자생단체들이 모여들어 통합되었다는 것.
“어떤 분야든 처음에는 임의단체가 여럿 생기게 마련이고 국가사회적 차원에서 일원화시키는 조정 역할의 일부는 정부 쪽에 있는데 국가보훈처가 그것을 외면하고 몸을 사리고 있다”며 보훈행정의 안일무사주의를 비판했다. 그는 이어 “우리 전우회는 국가보훈처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해서 대표성을 인정받는 단체로 판결을 받아 이겼다. 고등법원에서 패소한 국가보훈처는 상고도 포기했다. 그러고 이제 와서 무슨 해괴한 궤변인가”라며 울분을 토했다.
한편 참전 전우회 인천시지부의 김경만 전우는 이명박 정부의 통치철학 빈곤에 화살을 날리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라면 우리를 이렇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국가지도자의 통치철학 문제다”라면서 그는 지난해 ‘국가 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이 정부 법안으로 상정되었을 때 베트남 정부가 이 법률안의 베트남 관련 부분을 문제삼아 “우리나라(베트남)가 세계평화를 수호하지 않는 나라냐”하며 강력히 항의하자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이 베트남에 찾아가 베트남전쟁에 대한 명칭을 빼기로 한 사실을 지적했다.
이어서 그는 “대한민국이 6.25전쟁사를 기술하고 있는 것을 북한이 남북대화에 문제삼은 적이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전쟁사는 남이 왈가왈부할 수 없는 그 나라 정체성에 관한 자존(自尊)의 기술이다”라고 말하면서 “찬비 내리는 날 노병들이 길거리에 나와 장시간 고생해야 하는 참전 전우회의 실정은 이명박 정부의 통치철학 빈곤에 따른 ‘국격(國格) 훼손’과 연관돼 있다”고 진단했다.
이날 집회를 이끈 지영수 경기도 지부장은 “우리의 뜻이 관철될 때까지 인원을 증가시켜 나가겠다”며 대규모 시위를 강력히 경고했다.
그러나 국가 보훈행정 담당자들 자세가 바뀌지 않는 한 베트남 참전 전우들에 대한 국가적 예우 문제는 상당한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