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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도 장면도 끝내 친일파라고?


입력 2009.11.08 18:43
수정

민족문제연, 각계 비판 불구 장소 바꿔 4389명 친일인명사전 공개

보수진영 "대한민국 건국 부정, 정략적 목적 친일조작 - 역사왜곡"

8일 오후 숙명 아트센터에서 예정된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 숙명아트센터 측의 불허로 효창동 백범 김구 선생 묘역에서 진행하기로 함에 따라 참가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일제시대 식민지배에 협력한 4389명의 해방 전후 행적을 담은 친일인명사전이 8일 공개됐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과 장면 전 총리, 음악가 안익태․홍난파, 언론인 장지연, 소설가 김동인 등 사회 지도층과 유력인사가 상당수 포함돼 논란이 예상된다. 이미 지난해 4월 사전 수록 대상자 명단을 공개하면서 이들을 포함시켜 뜨거운 감자가 됐었다.

이날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서울 효창공원 백범 묘소 앞에서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를 열고 총 3권, 3000페이지에 달하는 친일인명사전을 공개했다.

친일인명사전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일제 강점기에 친일 행위를 한 한국인의 목록을 정리한 사전이다. 총론편 1권, 인명편 3권, 부록 3권 등 총 7권으로 구성되며 그 가운데 인명편 3권이 이번에 발간됐다. 편찬 사업은 2015년까지 계속될 예정이며 일제협력단체사전(국내 중앙편·지방편·해외편) 4권, 식민지통치기구사전 1권, 자료집 4권, 백서 1권 등 총 17권의 친일문제연구총서를 완간할 계획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만주신문’의 1939년 3월 31일자 기사를 인용해 “만주국 군관으로 지원할 당시 일본에 충성한다는 혈서와 채용을 호소하는 편지를 지원서와 함께 제출했다”면서 “또 1942년에는 일본 육군사관학교 본과 3학년에 편입하고, 1944년에는 만주국군 소속 보병 제8단으로 배속돼 일본군과 합동으로 팔로군을 공격할 때 소대장으로 작전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장면 전 국무총리는 국민총력천주교경성교구연맹 이사직을 맡았던 경력으로 인해 친일인명사전에 포함됐다. 국민총력천주교경성교구연맹은 매월 첫째 주를 애국주일로 정해 ‘무운장구기원미사제’를 지내고, 신궁 또는 신사참배를 가졌다고 편찬위원회측은 밝혔다.

현상윤 고려대 초대 총장도 1942년 12월 6일자 신문 인터뷰에서 ‘황국신민화’ 교육을 위한 ‘의무교육’ 실시를 역설해, 김성수 전 부통령은 1943년 11월6일에 신문에 “대동아 성전에 대해 제군과 반도 동포가 가지고 있는 의무를 위해 목숨을 바치라”며 일본의 대동아 전쟁에의 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실은 이유 등으로 각각 사전에 이름을 올리는 불명예를 안았다.

‘시일야 방성대곡’으로 유명한 언론인 장지연도 독립투사로 알려져 있지만, 친일인사로 분류됐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 4년여 동안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700여편의 글을 실은 게 친일행적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신현확(1920∼2007) 전 국무총리와 최근우(1897∼1961) 전 사회당 창당준비위원장 등 지난해 발표된 ‘친일 명단’에 포함된 3명은 유족들의 이의 신청 등이 받아들여져 수록 대상에서 제외됐다.

민족문제연구소측은 친일사전 수록이 보류된 384명에 대해서는 추가조사를 벌여 향후 사전을 개정·보완할 때 반영키로 했다.

1994년 출간계획을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는 2001년 편찬위원회를 출범하고 8년간 3천여종의 문헌 자료를 수집․분석한 후 250만명의 인물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확인·심의 작업을 거쳐 수록대상을 선정했다.

을사늑약 전후부터 1945년 8월15일까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식민통치·침력전쟁에 적극협력함으로써 우리 민족 또는 타민족에게 신체적, 물리적, 정신적으로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끼친 사람들이 선정됐다. 주로 매국행위에 가담하거나 독립운동을 탄압한 반민족 행위자, 군수나 검사, 소위 등 일정 직위 이상 부일 협력자, 대중적 영향력이 큰 교육·언론·종교계 등 지식인과 문화예술인 등이 포함됐다.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 김구 선생 묘역에서 진행된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에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윤경로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 김병상 민족문제연구소 이사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 김구 선생 묘역에서 진행된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에서 시민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행적이 기록된 친일인명사전 페이지를 펼쳐보고 있다.

편찬 과정에는 150여명의 각 분야 교수와 학자 등의 편찬위원으로 참여했고 집필위원으로 180여명, 문헌자료 담당 연구자도 80여명이 투입됐다.

지난해 8월 친일인명사전을 출간할 계획이었지만 유족들의 이의신청 처리와 발행금지가처분 소송, 방대한 작업 분량 등으로 발행이 연기됐다.

민족문제연구소측은 연구소 “단순히 친일행적을 기록한 인물사전이 아니라 한국근현대사를 아우르는 역사 인물 정보의 집적이 될 것”이라며 “세계 어디서도 역사적 과제를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맞선 적은 없었다. 한국 근현대사 금기의 영역이 최초로 공개돼 국민의 역사인식에 경종을 울리고 과거를 차분하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 공개 때마다 이념적 편향성과 자의적 기준 등 논란이 불거졌던 만큼 이번 사전 공개의 여파도 상당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민족문제연구소측은 선정 기준으로는 자발성·적극성·반복성·중복성·지속성 여부, 사회적·도덕적 책무와 영향력 등을 고려했다며 “좌익이든 우익이든에 관계없이 증거에 의해 선정했다. 다수의 월북 지식인과 문화예술인이 포함된 것은 이를 반증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당시의 사회, 역사적 상황 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반발 또한 적지 않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인적 구성과 이념적 지향점이 한쪽에 쏠려 있다면서 “민족과 국가에 대한 끼친 행위 대해선 정당과 정파, 이념 논쟁의 도구로 삼아선 안 된다”며 공과를 두루 서술하겠다고 밝힌 것과 달리 진보좌파적 시각에 의한 또 하나의 ‘역사바로세우기’라는 게 보수우파 진영의 비판이다.

특히 기준의 객관성과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구여권 실세 의원들의 부친 등이 대부분 제외됐다. 일본군 소위 출신이라는 이유로 박 전 대통령은 포함됐으나 헌병 오장(하사관급)과 순사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이들 의원들의 부친들은 제외됐다. 이들 가운데는 ‘극악친일파수용소’에 수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인물도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영친왕 이은도 역시 일본군 준장에 올랐지만 신분상 특수한 지위였고 권을 상실해 자의에 의한 활동이 아니었다는 점이 고려돼 또다시 제외됐다.

벌써부터 “용공좌익세력들의 국가정통성 훼손을 기도하고 있다” “좌익이나 친북성향의 인사들에 대해서는 관대하다”는 보소우파의 비판과 “말도 되지 않는 색깔론” “의무이자 필연인 작업이었다”는 진보좌파의 반박이 나오고 있다.

이미 이날 오후 발간 보고국민대회 이틀을 앞두고 대관이 취소된 숙명아트센터 앞에서 보수우파 단체와 민족문제연구소 측 간에 한 차례 설전이 벌어졌다.

국론통합운동본부, 나라사랑실천운동 등 20여개 보수우파 성향 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민족문제연구소는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하고 정략적 목적에 의한 친일조작, 역사왜곡으로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을 근거 없이 음해하고 있다”며 “체제수호와 국가안보차원에서 민족문제연구소를 반국가이적단체로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측은 “해방공간에서도 독재정권하에서도 친일세력은 반공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했다. 친일에서 친미·친독재로 권력과 부를 좇아 기회주의적인 변절을 거듭한 자들과 반성하지 않는 그들의 후예들이 치부를 감출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반공”이라며 “좌파 인물이나 월북 인사들에 대한 (친일의) 객관적 증거가 확보되고 기준에 부합한다면 어떤 인물이라도 사전에 등재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들은 길을 사이에 두고 언성을 높이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양측은 “소극적 친일과 적극적 친일도 구분하지 못하느냐”(보수우파) “일사봉공 혈서까지 쓰고도 친일파가 아니냐”(민족문제연구소) 등 폭언이 오갔고, 몇몇은 욕설과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양측의 신경전은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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