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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133, 드라마로 재현 "명량대첩은 민초의 승리"

손은수 기자 (dmstn0467@paran.com)
입력 2009.10.12 07:37
수정

2009 명량대첩축제 해상전투, 스턴트맨까지 참여 완벽재현 한편의 영화를 본 듯

해상전투 재현에 앞서 진행된 ´약무호남 입성식´ 에서 장군의 호령 "진군하라"

‘드디어 1597년 9월 16일 새벽 133척의 일본수군이 명량해로 진입하자 벽파진에서 우수영으로 진지를 옮긴 이순신은 불과 13척의 조선수군을 진두지휘하며 일자진을 형성하도록하여 왜선을 향해 돌진했다.

어란진을 떠난 일본군이 점점 명량해로 다가오고 있다.

일본군에 맞서 이순신은 일자진을 형성하고 진군을 명령하였다.

압도적인 일본수군에도 굴하지 않고 이순신은 안위와 김응함 등으로 하여금 적진으로 돌진하도록 명령하고 일본군이 안위의 배에 올라 격전이 한창인 가운데 총통을 쏘아 3척을 격파하는 등 이순신은 후퇴를 모르고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해남군 문내와 진도군 녹진 사이의 명량해협은 간만이 교차하면서 바다가 소리를 내며 급류하는 좁은 목으로 이를 이용하면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내다본 이순신은 마침내 북서류 해류가 남서류로 바뀌자 안택선의 일본 전선들은 서로 뒤엉키기 시작했고 판옥선의 조선군은 승리의 조짐으로 더욱 사기가 승천하게 된다.

드디어 이순신은 구루시마 미치후사, 도도 다카토라 등이 이끄는 왜선 31척을 격파하였고 왜군은 패주하게 이른다. 그 결과 왜군은 서진하려는 기력을 잃고 임진왜란의 막바지 정유재란의 대세를 이곳 명량해에서 꺾이고 만다.’

드디어 전투는 시작되고...

빠른물살을 가르며 극심한 전투는 계속됐다.

구국의 일념으로 이순신의 부하들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지난 9일부터 ‘2009년 명량대첩축제’ 가 열린 우수영 수변무대 앞 울돌목에서는 412년전 정유재란 당시의 명량해전을 재현하는 행사가 10일과 11일, 2회에 걸쳐 150여척의 지역 어민들이 직접 참여한 가운데 극단 토지의 최 솔 감독이 총 연출하여 영화같은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특히,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재현된 올해 해상전투재현에서 올해는 스턴트맨과 특수효과팀까지 더해 현장감이 배가되는 연출의 완성도에 2만여명의 관람객들로부터 힘찬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이번 재현전투의 각본이 된 ‘칼의 노래’ 작가 김훈은 “명량대첩은 세계 어느 해전에서도 볼 수 없는 드라마와 같은 승리로 임진과 정유 7년 왜란의 종지부를 찍게 하는 전환점이 되는 승첩” 이라면서 “충무공의 22전 22승이 조선 해군과 이순신의 승리였다면 명량대첩은 충무공과 이 지역 민초들의 승리였다” 고 밝혔다.

적선에서 적선으로 넘나들며 육박전을 치루다 장엄한 최후를 맞았다.

드디어 승리한 조선군이 퇴각하는 일본군을 뒤쫒고 있다.

총 연출한 최솔 총감독은 "412년 전 명량대첩의 재현을 준비하면서 이순신 장군과 전라도민들이 이 물살에서 얼마나 힘들게 전투를 했는지 절실히 느꼈다"면서 "해전 재현행사에 열성적으로 참여해 준 해남·진도지역 어민들에게 감사한다"고 전했다.

한편, 해상전투 재현에 앞서 멋진 해군 의장대 시범은 관람객의 큰 박수를 받았다.

한편, 재현행사가 큰호응을 얻자 전남도 관계자는 “관광상품으로 상품화해 상설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며 명량대첩축제는 해남군민과 진도군민의 화합의 축제를 떠나 전남 대표축제에 이어 세계화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내놨다.

손은수 기자 (dmstn0467@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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