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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정상적인 계획인가 싶었다"…2100조 투자도 불가피한 AI 생존전쟁(종합)

정진주 기자 (correctpearl@dailian.co.kr)
입력 2026.11.05 20:53
수정 2026.11.05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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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특강서 450여명과 약 2시간 강연·질의응답

2100조 투자 거론하며 달라진 글로벌 경쟁 규모 설명

"먼저 죽을 수 없다" 국가·기업의 AI 생존경쟁 진단

AI 국가 전환·한일 경제연대 등 한국 경제 해법 제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1층 김종섭홀에서 열린 경제학부 '자유와 시장' 특강에서 발언하고 있다.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천문학적으로 불어난 인공지능(AI) 투자 규모를 두고 정상적인 계획인지 되물을 정도로 글로벌 경쟁의 양상이 달라졌다고 진단했다. SK의 2100조원 규모 AI·반도체 분야 중장기 투자 구상을 거론하며 수익성을 입증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더라도 국가와 기업의 생존이 걸린 경쟁에서 투자를 피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한국 역시 기존 수출 중심 성장모델을 넘어 AI 국가 전환과 한·일 경제연대 등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 회장은 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1층 김종섭홀에서 열린 경제학부 '자유와 시장' 특강에서 '인공지능(AI) 시대, 세계 경제 패러다임 변화와 대한민국의 비전'을 주제로 이같이 밝혔다.


이날 최 회장의 강연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은 시작 전부터 뜨거웠다. 수시간 전부터 학생들이 모여들어 강연 시작 직전에는 이미 객석과 계단까지 가득 찼다. 자리를 잡지 못한 학생들은 2·3층에서도 강연을 지켜봤고 내용을 필기하는 모습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날 특강에는 경제학부 재학생 등 450여명이 참석했다. 강연이 끝난 뒤에는 함께 사진을 찍으려는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들고 무대 앞으로 몰려들었고 최 회장은 기념촬영 요청에 응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학생들의 질문이 끊이지 않았고 최 회장이 'AI로 만든 질문이 아니냐'고 농담을 건넬 만큼 수준도 높았다. 최근 관심사를 묻는 학생에게 AI와 거시경제에 대한 고민을 설명한 최 회장은 개인적으로는 "언제까지 테니스를 계속 칠 수 있을까"가 관심사라며 체력에 대한 걱정을 꺼내 웃음을 자아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서울대 경제학부 '자유와 시장' 특강을 앞둔 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1층 김종섭홀에 학생들이 모여 있다.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최 회장은 지난 6월 발표한 '3대 메가프로젝트' 투자 구상을 돌아보며 "이거 이렇게 발표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SK의 2100조원에 삼성의 투자 구상까지 더하면 두 기업의 투자액이 수천조원에 달한다며 정상적인 계획인지 되물을 만큼 투자 경쟁이 과거와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투자가 선택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전 세계는 이미 이런 게임에 들어와 있다"며 "저희도 이렇게 베팅하지 않고서는 쫓아갈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200조원도 막대한 투자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그 열 배를 넘어설 만큼 필요한 자금의 규모 자체가 달라졌다는 설명이다.


막대한 AI 투자가 이어지는 배경으로는 미·중 패권 경쟁과 빅테크의 생존 경쟁을 꼽았다. AI 기술 확보 여부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미국과 중국이 경쟁적으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투입한 자원에 상응하는 성과가 나와 선순환하는 구조인지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는 시장의 지적에는 동의했다. 그는 "증명이 되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고 말했다. 다만 수익성을 입증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과 경쟁을 지속해야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봤다.


최 회장은 빅테크의 입장을 설명하며 "내가 먼저 죽을 수는 없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먼저 살아남아야 경쟁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막대한 자금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1층 김종섭홀에서 열린 경제학부 '자유와 시장' 특강에서 발언하고 있다.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위험 관리의 필요성도 함께 강조했다. AI에 투자와 경제 성장, 주가 상승이 집중된 상황에서 그 흐름이 무너지면 한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가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다.


한국의 기존 성장모델 역시 전환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소비와 중국의 제조를 중심으로 유지됐던 글로벌 분업 구조가 바뀌면서 한국은 미국의 투자 요구와 중국의 기술 추격에 동시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는 설명이다.


최 회장은 "저성장, 부채 증가 등으로 내부의 기초체력이 약해진 가운데 G2 패권과 AI 혁명, 자본전쟁에 의한 외부 위협까지 더해졌다"고 말했다. 개별 현안에 대응하는 것만으로는 복합적인 경제·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졌다는 판단이다.


이에 대응할 해법으로는 사회적 가치에 보상하는 '뉴 캐피탈리즘(신 자본주의)', 지능 수출국으로 도약하는 'AI 네이티브 국가', 한·일 경제연대를 통한 '확장 옵션', 성장을 촉진하는 '인센티브 시스템' 등 네 가지를 제시했다.


AI 네이티브 국가로의 전환에서는 에너지와 반도체, AI 데이터센터, 거대언어모델(LLM), 애플리케이션 등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 확보를 주문했다. 인프라 구축에 머물지 않고 실제 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를 빠르게 만들어 한국이 지능 수출국으로 도약해야 한다는 방향이다.


경제 규모를 키울 협력 상대로는 일본을 꼽았다. 최 회장은 "자유무역체제가 옅어지는 가운데 국내총생산(GDP) 2조달러의 한국과 4조달러인 일본의 경제가 묶이면 그 파급력은 단순히 3배가 아닌 그 이상 커질 것"이라며 "양국이 겪는 저출산, 고령화 등 사회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1층 김종섭홀에서 열린 경제학부 '자유와 시장' 특강을 마친 뒤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유럽연합(EU)의 발전 과정을 사례로 들며 협력이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만 머물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당장 실행할 확정적인 해법이 아니라 장기간 발전시켜 필요할 때 선택할 전략적 옵션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기업 지원 체계는 성장에 초점을 맞춰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을 벗어나면 지원은 줄고 규제가 늘어나는 구조가 기업의 성장 의지를 약화시킨다는 지적이다.


최 회장은 "대한민국의 수많은 중소기업은 중소기업을 벗어날 생각이 없다"며 이런 구조가 새로운 대기업의 등장을 어렵게 해 기존 대기업에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 기업이 성장한 만큼 혜택을 주고 규모가 커진 이후에도 성장 유인을 유지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뉴 캐피탈리즘은 사회문제 해결 자체가 경제활동이 되도록 보상 체계를 만드는 구상이다. 민간이 낸 세금으로 정부가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존 구조만으로는 빠르게 복잡해지는 문제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는 진단이다. 민간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그 성과에 금전적 인센티브를 제공해 문제 해결에 참여할 유인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SK의 AI 전환 방향도 설명했다. AI 에이전트를 활용한 조직 운영 효율화, 반도체 제조공정 개선, 기존 업종의 경험을 활용한 AI 솔루션 사업으로의 전환 등이다.


미국 중간선거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계열사에 미칠 영향을 묻는 질문에는 시장의 변동성에 주목했다. 그는 "이미 돈은 너무 많이 풀렸다"며 "AI가 돈이 된다고 하니까 너무 많이 들어갔고 우리나라에서도 반도체가 오른다고 하니까 한꺼번에 몰려가서 사버렸다"고 말했다. 과잉 유동성이 작은 신호에도 충격을 증폭시키는 만큼 '롤러코스터' 같은 장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


한편, 최 회장이 서울대 경제학부 학생들과 만난 것은 2022년 4월 '시장의 변화, 미래의 기업'을 주제로 강연한 이후 약 4년 반 만이다.

정진주 기자 (correctpearl@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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