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를 만났다고 말하는 사람들 —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외국인에게서 배우다 [김희선의 글로벌 K-컬처 이야기㉜]
입력 2026.10.30 17:45
수정 2026.10.30 17:46
해외 파트너들과 일할 때 제 영어가 가장 초라해지는 순간은 뜻밖에도 발표장이 아닙니다. 발표와 미팅이야 대본을 준비하면 그만이고, 준비된 문장으로도 정보는 충분히 전해지니까요. 정작 말문이 막히는 건 그 사이사이, 관계를 여는 즉흥의 한마디가 필요한 때입니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둔 밍글링, 처음 만난 사람과 거리를 좁혀가는 첫 대화, 현장에서 몸을 부대끼며 일하다 한 뼘 더 가까워지는 순간들. 그럴 때 한 발 더 들어가는 재치 있는 한마디를 꺼내고 싶어도 제 서랍에는 늘 비슷한 단어 몇 개뿐이라, 결국 ‘Great’와 ‘Thank you’같은 말을 되풀이하다 자리를 뜨곤 합니다. 의사소통은 되지만, 관계는 딱 그 어휘만큼의 깊이에서 멈춰 섭니다.
얼마 전 릴스 피드에서 곱슬머리 외국인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들판에서, 거실에서, 해변에서 그들은 한국어로 조곤조곤 대화를 나눕니다. "이번 주말에 뭐 했어?" "오랜만에 바다에 다녀왔어." "바다에서 뭘 했어?" "갈매기를 만났어. 그리고 파도 소리를 한참 들었어." 어려운 어휘도, 유창한 발음도 없었지만 오래 걸리더라도 한국어로 말하려는 태도, 단어를 고르고 골라 천천히 건네는 그 호흡이 이상하리만치 아름답고 선했습니다. 댓글창에는 한국어 실력을 칭찬하는 말도 많았는데, 정작 오래 남은 건 다른 고백이었습니다. 한국어가 이렇게 아름다운 언어인 줄 처음 알았다는 것,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외국인의 입을 통해 새삼 발견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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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들이 지금 세계 곳곳에서 줄을 서 있습니다. 한국어능력시험 지원은 2020년 약 22만 건에서 지난해 57만 건으로 늘었고, 세종학당에는 자리가 없어 수강을 기다리는 사람만 1만 1천 명이 넘습니다. 우리가 머라이어 캐리의 가사를 통째로 외우고, 웨스트라이프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발음을 흉내 내고, 디즈니가 좋아 미녀와 야수의 대사를 받아 적던 것처럼, 지금 독일의 어느 소녀는 BTS의 ‘봄날’ 가사를 공책에 한 줄씩 옮겨 적고 있을 겁니다. 그들에게 한국어는 시험 과목이기 이전에 좋아하는 세계로 들어가는 입장권이니까요. 말은 언제나 선망을 따라갑니다.
그 법칙은 우리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루 몇 시간씩 숏폼을 흘려보내다 보면 그 어휘가 입에 붙고, 그 논조가 어느새 말투가 됩니다. 아이들만의 이야기도 아니어서, 어른들의 단톡방 역시 ‘밤티’, ‘야르’, ‘샤갈’ 몇 개로 그날의 감정을 정산하곤 합니다. 재미있고 경쾌한 말들이지요. 문제는 그 말들이 다른 말의 자리까지 차지할 때입니다. ‘밤티’ 한 단어에 어설픔과 촌스러움, 아쉬움과 짠한 귀여움이 뭉뚱그려 담기면, 그 결을 가려 보는 눈도 함께 흐려지기 마련입니다. ‘심심한 사과’에 사과가 왜 심심하냐며 화를 내던 소동이나 ‘금일’을 금요일로 알아들었다는 이야기는 그 끝이 어디인지를 보여줍니다. 외국인은 바다를 갈매기와 파도 소리로 들려주는데, 우리는 ‘와, 바다 미쳤다’ 한마디로 끝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국가교육위원회 문해력 특위가 한자 교육을 테이블에 올린 것도 이 고민의 연장선일 겁니다. 표준국어대사전 표제어의 약 57%가 한자어이니, 깊을 심(甚) 한 글자로 심심한 사과가 깊은 사과로 읽히는 경험은 분명 힘이 됩니다. 다만 한자가 정답의 전부는 아닙니다. 외국인들이 감탄한 우리말의 아름다움은 갈매기, 파도, 윤슬, 노을 같은 고유어에도 가득하고, 햇빛에 반짝이는 물결을 한 단어에 담아내는 ‘윤슬’ 같은 말은 다른 언어로 옮기기조차 어렵습니다. 한자어가 개념을 정확하게 짚는 말이라면 고유어는 감각을 섬세하게 살려내는 말이어서, 두 결을 모두 알아야 비로소 상황에 꼭 맞는 단어를 고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고 급수 시험으로 아이들을 줄 세우기보다, 책을 읽고 긴 대화를 나누며 말을 고르는 경험을 쌓는 일이 먼저입니다. 한자는 그 서랍을 넓혀 줄 여러 열쇠 가운데 하나입니다.
언어를 잘한다는 건 결국 말을 잘 고르는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단어를 많이 아는 사람이라야 같은 마음을 더 정확하게, 더 다정하게 건넬 수 있습니다. 지금 세계는 서툰 발음으로 우리말을 한 단어씩 골라 가며 한국에 다가오고 있는데, 정작 그 말의 주인인 우리는 고르기를 멈추고 쉽게 집히는 말만 쓰고 있습니다. 말을 고른다는 건 상대를 한 번 더 생각한다는 뜻이고, 그 짧은 망설임이 곧 대화의 품격입니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외국인에게서 거꾸로 배우는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다시 말을 고르는 사람이 되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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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 Team8 Partners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