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줄 세울 ‘포용금융 성적표’…정성평가 잣대는 ‘모호’
입력 2026.10.29 06:20
수정 2026.10.29 06:20
평가위원 5명 중 4명 금융당국·유관기관
향후 출연금 최대 20% 가감·과징금 감경 연계
금융위 ‘평판 효과’ 기대…은행권 “압박 우려”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금융당국이 은행의 포용금융 실적을 상대평가해 출연금과 과징금 등에 연계하기로 했지만 일부 정성평가 기준은 아직 구체화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평가 결과 공개에 따른 ‘평판 효과’까지 은행의 참여를 유도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방침이어서 모호한 기준으로 은행을 줄 세워 포용금융 확대를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국내 은행 17곳을 대상으로 ‘포용금융 종합평가체계’를 도입한다.
평가 대상은 대형은행 6곳과 중소형은행 8곳, 인터넷은행 3곳이다. 은행 특성에 따라 가·나·다군으로 나눠 각 군 안에서 상대평가한다.
평가 항목은 지배구조 10%, 자금공급 35%, 채무조정 35%, 사회적 배려 10%, 비금융서비스 10% 등이다.
평가 결과는 단순한 순위 공개에 그치지 않는다. 향후 서민금융진흥원 출연금을 최대 20% 가감하고 금융소비자보호법상 과징금 감경과 경영실태평가에도 반영할 예정이다.
그러나 실제 은행의 부담과 직결될 수 있는 평가임에도 일부 평가 기준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특히 지배구조 부문은 정성평가로 이뤄진다.
금융위는 이날 백브리핑에서 최고책임자를 두거나 전담조직을 설치하면 몇 점을 부여하는 식의 구체적인 체크리스트는 마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량적인 기준을 적용할 경우 형식적인 평가에 그칠 수 있는 만큼 실질적으로 포용금융을 추진하려는 의지가 충분한지 등을 살펴보겠다는 설명이다.
오유정 금융위 서민금융과장은 “형식적으로 흐를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봤을 때 진짜 의지가 충분히 느껴지는지를 보려고 한다”며 “지금 정확한 체크리스트가 있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평가위원회 구성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평가위원회는 총 5명으로 금융위가 추천하는 민간위원장이 위원장을 맡는다.
나머지 4명은 금융위와 금융감독원, 서민금융진흥원, 신용회복위원회 관계자로 구성된다. 사실상 금융당국과 유관기관이 평가위원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구조다.
금융위는 기존 지역재투자 평가위원회와 기술금융 평가위원회 등을 참고해 위원회를 구성했으며 평가체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은행권 의견도 들었다는 입장이다.
평가위원회 구성의 공정성에 대해 오유정 과장은 “은행의 의견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것도 공정성 측면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은행의 의견은 평가지표를 설계하는 단계에서 은행연합회를 통해 충분히 수렴했다”고 말했다.
상대평가 방식에 따른 형평성 문제도 남아 있다. 특히 인터넷은행은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토스뱅크 등 3곳끼리 평가받는다.
상대평가인 만큼 3개 은행이 모두 포용금융 실적을 확대하더라도 이들 사이에서 순위가 갈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금융위 역시 상대평가 특성상 우수한 등급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낮은 등급이 나오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인정했다.
이번 시범평가를 통해 문제가 있는지 등을 살펴보겠단 입장이다.
포용금융 확대에 들어가는 비용과 비교해 인센티브가 충분한지도 과제다.
중·저신용자에 대한 금융 공급이나 자체 채무조정 등을 확대하면 은행이 부담해야 할 비용도 늘어난다.
하지만 금융위는 서금원 출연금 감경 등 경제적인 인센티브만으로 이 같은 비용을 상쇄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오 과장은 포용금융에 들어가는 비용과 출연금 감경 규모에 대해 “경제적으로 비교는 사실 안 될 것 같다”며 “훨씬 출연금이 그거에 미치지는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가 기대하는 것은 평가 결과 공개에 따른 평판 효과다.
오 과장은 “은행은 평판이 매우 중요한 기관”이라며 “내년에는 출연금도 연동되지 않는데 평가 결과가 공시된다는 것만으로도 은행들이 굉장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평가 결과를 공시한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유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은행권에서는 포용금융 확대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평가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상대평가와 결과 공개를 앞세우면 실질적인 포용금융 확대보다 점수 경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포용금융을 확대하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평가 기준과 그에 따른 상벌이 아직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상대평가부터 도입하면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사실상 평판을 활용한 압박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가 기준이 구체화되지 않으면 은행들이 실질적인 포용금융 효과보다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항목에 집중하면서 불필요한 경쟁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고도 했다.
그는 이어 “기존 업무를 다시 취합해 평가표에 맞춰 제출하는 또 하나의 보고 업무로 끝나지 않도록 객관적인 평가 기준과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먼저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