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무죄, 무권유죄…남의 말하듯 [정상환의 시대읽기]
입력 2026.10.29 06:00
수정 2026.10.29 06:00
李, 중수청장 국무회의 배석 "비정상의 정상화"
'유권무죄 무권유죄' 강조…남의 말하듯
권한 있다는 것과 적절하다는 것은 다른 문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대통령도 국민"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조지 오웰의 풍자소설 '동물농장'의 마지막 문장이다.
섬뜩하지 않은가.
농장 동물들은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며 혁명을 일으켰다. 권력을 잡은 돼지들은 처음에는 모두가 지켜야 할 일곱 계명을 만들었다.
하지만 돼지들은 다른 동물들에게는 금지했던 침대에서 자고, 술을 마시고, 동료 동물들까지 죽였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행동에 맞춰 계명을 조금씩 고쳐나갔다. 처음에는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고 외쳤지만, 나중에는 두 발로 걸으며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더 좋다'고 했다. 원칙을 어긴 것은 자신들이었지만, 고쳐야 할 것은 원칙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지난 27일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중대범죄수사청장의 국무회의 참석을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했다. '유권무죄, 무권유죄'라는 말까지 꺼내며 법 앞의 평등을 위협하는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에 앞서 중수청장의 국무회의 배석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반박하겠다며 생성형 AI인 제미나이의 답변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대통령이 'AI도 내 말이 맞다고 하잖아'라는 듯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모습. 천진하다 해야 할까.
권한이 있으니 참석시킬 수 있다는 것과, 참석시키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법적으로 가능한가 와 수사기관의 독립성 측면에서 바람직한 가는 별개다.
대통령의 권한은 수사기관을 가까이 불러 앉히는 데서 무게가 생기는 게 아니다.
오히려 권한이 있어도 절제할 줄 아는 권력이 더 빛난다.
그런데 대통령은 왜 하필 '유권무죄, 무권유죄'를 말했을까.
남의 말하듯…좀 얼굴 간지럽지 않았을까.
유권무죄, 무권유죄. 권력자에게는 관대하고 힘없는 사람에게는 가혹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지당한 말씀이다.
그렇다면 제일 큰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솔선해야 하지 않을까.
이 대통령은 당선 전 여러 재판을 받아왔다. 재판 출석과 지연을 둘러싼 논란도 있었다.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재판이 중단됐다. 또한 여권은 관련 사건을 조작 기소라고 규정하며 국정조사를 실시했고, 특검법 처리도 고려하고 있다.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 인사들이 국회의원과 주요 공직에 진출했고, 박균택 의원은 법무부 장관 후보군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이 모든 일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가능했겠는가.
물론 각각의 사안에는 따져야 할 법적 절차와 판단이 있다.
대통령의 사법적 결론을 미리 단정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권력을 갖기 전과 후, 왜 원칙은 달라지는지 묻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과거 "대통령도 죄를 지으면 감옥에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골프를 비판할 때는 국민이 새벽 일찍 만원 버스를 타고 나가 피땀 흘려 번 돈의 가치를 강조하기도 했다.
권력자에게도 예외 없이 엄격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남에게 요구했던 잣대는 어디다 버렸나.
공자님 말씀은 아무나 할 수 있다.
법 앞의 평등, 공정과 정의, 비정상의 정상화. 모두 멋진 말이다.
하지만 말의 무게는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삶의 궤적에서 나온다.
'동물농장'의 돼지들은 자신들이 계명을 어길 때마다 슬그머니 문구를 고쳐 예외를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계명 위에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는 모순을 새겨 넣었다.
대통령은 ‘유권무죄, 무권유죄’를 비판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럴수록 '나부터' 예외가 없어야 한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대통령도 국민이다.
침대에서 자고, 술을 마시고, 다른 동물을 죽이고 두 발로 걷는 특별한 돼지...
소설 '동물농장'에서나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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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상환 자유시장연구소 연구위원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