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아이 살려줄 의사들이 떠나도 '안타깝다'면 그만인가[기자수첩-ICT]
입력 2026.10.28 15:04
수정 2026.10.28 15:45
전문의 9명 중 7명 사직 의사…소아응급실 위기
경찰의 ‘안타깝다’는 말로 해소되지 않는 불안
환자 안전 위한 수사, 의료현장 특수성도 살펴야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안타깝다.’ 뜻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보기에 딱하여 가슴 아프고 답답하다. 국어사전은 이 말을 이렇게 풀이한다. 최근 보건복지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아주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압수수색 논란에 경찰은 이 표현으로 답했다.
참 편리한 말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도 유감을 표할 수 있고, 상대의 처지에 공감하는 듯하면서도 책임 있는 설명은 피할 수 있다. 압수수색 이후 의료진이 사직 의사를 전하고 소아응급의료체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경찰은 마치 논란에서 벗어난 제3자인양 그저 ‘안타깝다’는 말로 입장을 대신했다.
대체 무엇이 안타까웠을까. 의료진이 현장을 떠나려는 상황인지, 자신들이 주장하는 '적법한 수사'에 의료계가 반발하는 현실인지 알 수 없다.
중증 소아환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으니 진상을 규명해야 하는 건 경찰의 의무다. 그 일에 충실한 건 나무랄 일이 아니다. 의료행위라는 이유로 수사의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수사의 필요성과 방식의 적절성은 별개의 문제다.
방식의 적절성이 중요한 건 그로 인해 초래될 결과 때문이다. 아주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에서는 전문의 9명 가운데 7명이 병원 측에 사직 의사를 전달했고, 일부 소아응급센터에서는 지정 반납까지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는 지난 5월 기준 14곳에 불과하다. 숙련된 의료진이 빠져나가더라도 당장 대체할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만큼 한 곳의 진료 기능이 위축되면 그 부담은 결국 환자와 보호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번 논란을 대강 덮고 넘어간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의료계에는 이미 트라우마가 새겨졌다. '안타깝지만 적법한 수사'였다는 얘기는 앞으로도 같은 일이 반복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준다.
중증환자를 진료하다 예상치 못한 결과가 발생했을 때 형사수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부담이 커질수록 의료진은 고위험 진료를 주저할 수 있다. 가뜩이나 소아응급 현장은 인력난으로 아우성이다. 이런 불안까지 더해진다면 나가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들어오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정부가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며 내놓은 각종 대책들도 공염불이 된다. 정작 의료진이 안심하고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는데 누가 필수의료 살리기에 동참하겠는가.
다시 '안타깝다'라는 표현의 의미로 돌아가 보자. 사과의 의미도 없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도 없는 이 표현은 언젠가 또 의사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현장에 경찰이 들이닥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긴다.
경찰은 진료 방해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의료계는 환자에 대한 처치와 처방이 계속 이뤄지는 현장에 경찰이 들이닥쳤다고 반박한다. 상식적으로도 상급종합병원의 응급센터가 텅 비어 있는 경우는 상상하기 힘들다.
안타깝다는 말은 책임 회피일 뿐이다. 그날 어떤 상황에서 압수수색을 진행했는지 명확히 검증하고 압수수색이 꼭 필요했는지, 그 과정에서 의료현장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했는지 솔직히 설명하는 게 책임 있는 자세일 것이다. 문제가 있었다면 공식적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도 이뤄져야 함은 물론이다.
의료계가 '기분 나쁘니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떼를 쓰는 것이라면 차라리 다행이겠다.
아픈 아이를 들쳐 업고 반쯤 정신이 나가 맨발로 응급실에 뛰어갔는데 의사가 없어 절망하는 상황을 상상해 봤는가. 그게 내 일이거나 우리 주변의 일일 수도 있다. 그날 압수수색을 결정한 경찰 본인의 일일 수도 있다. 그때도 그저 “안타깝다”고 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