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은 떠나도 정수진은 남는다 [안덕기의 프리에이전트]
입력 2026.10.24 07:00
수정 2026.10.24 07:00
정성숙 전 유도대표팀 감독. ⓒ 뉴시스
정성숙 감독이 대표팀을 떠나면 정수진의 문제도 끝나는가. 감독의 사임 소식 뒤에 남겨진 선수의 내일을 생각해야 한다.
정수진은 제20회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 게임 유도 경기 전날 공식 계체량을 통과했다. 그러나 경기 당일 지도진으로부터 무작위 계체량 대상이 아니라는 안내를 받고 음식물을 섭취했다. 착오가 드러난 것은 정수진이 계체량 장소에 나타나지 않자 일본 측 운영 관계자가 일본어로 소통할 수 있는 허미미에게 이를 알린 뒤였다.
정수진이 자신이 대상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계체량 마감까지 약 15분밖에 남지 않았다. 먹었던 음식물을 토해내고 머리카락까지 자르며 체중을 줄였지만, 허용 체중을 100g 넘겨 매트에 서지 못했다.
명단 확인의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마저 외부의 연락이 올 때까지 작동하지 않았다. 그 실패의 대가는 선수가 자기 몸으로 감당해야 했다.
한국 유도가 거둔 성과와 선수들의 노력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만큼 정수진이 잃어버린 기회도 존중받아야 한다. 메달을 따낸 선수의 시간만 소중하고, 출발선에 서지도 못한 선수의 시간은 잊혀도 되는 것이 아니다.
책임을 지는 과정부터 석연치 않았다. 정 감독은 지난 13일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대한유도회 경기력향상위원회는 16일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당초 계약 만료일은 오는 31일이었다. 그대로라면 2년 임기를 모두 채우는 것이었다. 사직서 미제출과 계약 만료 처리에 대한 보도가 이어진 뒤, 유도회는 22일 사직서 제출 사실을 발표했다.
계약 만료와 사임, 징계는 서로 다르다. 사직서 제출만으로 관리 실패와 사후 대응의 책임까지 정리되지는 않는다. 의사결정 기구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했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책임을 흐린 결정은 결국 조직 전체의 신뢰를 훼손하지만, 그 결정을 내린 사람들의 책임은 쉽게 가려진다.
국정감사에서는 사고 이후의 대응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21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정 감독의 경위서를 공개하며, 트레이너의 명단 확인 실수는 부각됐지만 감독 자신의 관리 책임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한유도회가 사고 당일 보고를 받고도 피해 선수에게 직접 확인하지 않고 지도자를 통해 경위를 파악한 점도 질타했다.
유승민 대한체육회장 역시 경위를 확인하도록 지시했으나 단순 실격 사고로만 보고받았다고 밝혔다. 선수를 보호하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을 표하며 유도회에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발언이 실제 조사와 보호조치로 이어지는가다.
정수진이 직접 사건을 알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도자의 안내를 따른 선수에게 ‘체중 관리에 실패한 국가대표’라는 낙인만 남지는 않았을까. 보호받아야 할 선수가 자신의 억울함을 입증하고 조직의 대응까지 끌어내야 했다.
유도 정수진. ⓒ 대한체육회
대한유도회가 국제대회 6개월 출전 제한을 구제하고 심리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로 한 것은 필요한 조치다. 그러나 잘못된 불이익을 거두는 것만으로 피해 회복이 끝나지는 않는다. 감독의 사직서 역시 잃어버린 출전 기회를 돌려주거나 선수의 내일을 보장하지 못한다.
정수진은 이제 대학 3학년이다. 내년에도 학교에 다니고 훈련하며 졸업 이후의 진로를 준비해야 한다. 정성숙 감독은 용인대학교 유도학과 교수로 소개돼 있다. 향후 거취와 별개로, 피해를 호소한 학생과 사건 관련 지도자가 같은 대학에 소속돼 있다는 관계는 남는다.
여기서 용인대학교의 학생 보호 책무가 생긴다. 대학이 대표팀 사고의 책임을 대신 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학생이 사건 이후에도 안전하게 배우고 운동할 수 있도록, 수업·훈련·평가에서 두 사람의 접점과 이해충돌 가능성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불이익이 발생한 뒤에야 움직인다면 보호는 또 늦어진다.
오랜 경력과 인적 기반을 가진 지도자와 선수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대학생의 처지는 대등하지 않다. 문제를 제기한 학생이 주변의 시선에 위축되거나, 진로를 걱정해 어려움을 말하지 못하지는 않을지 살펴야 한다. 보호를 이유로 학생에게 휴학이나 훈련 장소 변경을 떠넘겨서도 안 된다.
사회적 책임은 이처럼 각 기관의 구체적인 역할에서 시작된다. 대한체육회는 조사와 후속 조치가 제대로 이행되는지 감독하고, 대한유도회는 책임 규명과 안전한 대표팀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 용인대학교는 학생이 돌아가 살아갈 일상을 지켜야 한다. 기관의 경계에서 보호가 끊겨서는 안 된다.
선수의 의사를 먼저 확인하고 독립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 책임 규명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선수의 학업과 훈련은 계속된다. 조사 결과를 기다린다는 이유로 보호를 미룰 수는 없다.
언론과 시민의 관심도 감독의 퇴장에서 멈추지 않아야 한다. 정수진이 내년에도 불안 없이 학교에 다니고 훈련하며 매트에 설 수 있는지, 약속된 지원이 실제로 이어지는지 함께 지켜봐야 한다.
약자의 편에 선다는 것은 잠깐 대신 화를 내주는 것보다 오래 걸리는 일이다.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를 제도가 나누어 감당하고,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보호의 빈틈을 메우는 일이다.
용기를 내어 말한 사람이 그 대가까지 혼자 치르게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며 어른들의 몫이다. 각 기관이 가진 권한을 한 사람의 회복을 위해 연결할 때 사회적 책임은 말이 아닌 현실이 된다.
정수진에게 필요한 것은 사건을 견뎌 낸 사람이라는 이름만이 아니다. 다시 자신의 경기와 미래에 집중할 수 있는 일상이다.
감독은 떠나도 정수진은 남는다. 이제 남겨진 시간을 함께 책임져야 한다.
안덕기 대한체육회 홍보미디어위원회 부위원장. ⓒ 데일리안
글 / 안덕기 대한체육회 홍보미디어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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