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 육성, '보여주기' 말고 '진짜 필요'에 집중하라 [기자수첩-유통]
입력 2026.10.26 06:48
수정 2026.10.26 06:48
정부, K뷰티 육성책 잇따라 발표
민간 사업 반복보다 실질적 필요에 집중해야
미래 먹거리 육성에도 관심 기울여야
올리브영 미국 패서지나점 개점 첫날 매장을 찾아 K뷰티 제품을 구매하는 현지 소비자들ⓒ올리브영
바야흐로 'K뷰티' 전성시대다. 지난해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114억 달러를 기록하며 미국을 제치고 프랑스에 이어 세계 2위에 올랐다.
올해 성장세는 더욱 가파르다. 상반기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7.3% 증가한 70억 달러에 달했다. 지금의 성장세가 이어진다면 5년 안에 세계 수출 1위에 오른다는 전망이 가능하다.
이처럼 '잘 되는 집' K뷰티에 정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정부는 올해 들어 연구개발(R&D)과 해외 진출, 인공지능(AI) 기반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K뷰티 육성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정부가 K뷰티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고 산업 경쟁력 강화에 나서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지원사업이 늘어나는 만큼 정책의 방향성과 실효성에 대한 고민도 깊어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업을 추진하느냐가 아니라, 그 지원이 현장에서 실제로 필요한 곳에 닿고 있느냐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14일 정부가 발표한 'AI·융복합 K-뷰티 서비스 지원방안'이다. 이번 대책은 화장품 제조 중심의 K뷰티 산업을 AI·데이터와 관광·쇼핑, 의료 등이 결합한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으로 확장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정부는 홍대와 명동, 부산의 K뷰티 체험·홍보관에서 AI 피부진단과 가상 메이크업 서비스를 제공하고, 경주와 제주에는 뷰티 체험과 해외 바이어 상담 등을 결합한 K뷰티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문제는 이러한 사업들이 기존 민간기업의 서비스나 산업 인프라와 얼마나 차별화될 수 있느냐다.
이미 아모레퍼시픽은 AI 피부진단을 활용한 맞춤형 화장품 제조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콜마와 코스맥스 역시 관련 기술과 데이터를 자체적으로 확보하며 사업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별도의 체험시설을 확대하는 것이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민간에서 이미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를 반복하는 데 그친다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보다 기존 사업에 예산을 투입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 클러스터 조성도 마찬가지다. 현재 충북 오송·오창, 경기 오산·화성, 경북 경산, 전북 남원 등 전국 곳곳에 화장품 산업 기반이 구축돼 있다.
여기에 경주와 제주까지 새로운 거점을 조성한다면 지역별 역할 분담과 기존 인프라와의 연계 방안이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이러한 고민 없이 우후죽순 거점을 조성하고 나선다면 이 정책은 예산 낭비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정부가 제공하겠다는 피부 데이터도 실효성이 관건이다. 정부는 18개국 1만7000여명의 피부 특성 정보를 AI 학습에 적합한 형태로 개편해 기업에 제공할 계획이다.
그러나 주요 화장품 기업들은 이미 자체적으로 국내외 소비자의 피부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단순히 표본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기업들이 실제 연구개발에 활용할 유인이 크지 않을 수 있다. 기존에 확보하기 어려웠던 심층 정보를 얼마나 정교하고 활용 가능한 형태로 제공하느냐가 중요하다.
결국 정부의 지원에는 세밀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민간기업이 이미 잘하고 있는 일을 반복하기보다 기업들이 기술을 확보하고도 사업화 과정에서 마주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정부의 산업 육성 정책이 이미 성장하고있는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방향으로도 확대될 필요가 있다.
최근 주목받는 K향수와 K헤어케어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국내 향수 산업은 성장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결해야 할 구조적인 과제가 적지 않다.
국내 향수 수출액은 2021년 1109만6000달러에서 지난해 5682만5000달러로 4년 만에 5배 이상 증가했다. 국내 향수 브랜드들도 해외 시장에서 존재감을 넓히며 K뷰티의 뒤를 이을 차세대 성장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향수의 핵심 원료인 향료는 해외 의존도가 높고, 국내 전문 조향 인력과 연구개발 기반도 상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개별 기업들이 브랜드를 키우고 해외 판로를 개척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향료 연구개발과 전문인력 양성 등 산업 전반의 기초 체력을 강화하는 일은 민간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쉽지 않다.
바로 이런 분야에 정부의 선제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당장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 어렵더라도 성장 가능성이 있는 산업의 부족한 부분을 찾아 채워준다면 장기적으로 새로운 수출 산업을 키워낼 수 있다.
K뷰티의 성공은 민간기업들이 오랜 시간 기술력을 쌓고 해외 시장을 개척하며 일궈낸 성과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그 성과에 뒤늦게 숟가락을 얹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고 새로운 산업이 성장할 토양을 마련하는 것이다.
K뷰티 육성에 쏟는 정부의 관심과 예산이 단기적인 성과를 보여주는 데 머물지 않고, 현장의 어려움을 해결하며 미래 먹거리를 키워내는 실질적인 정책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