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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6주기] 삼성 운명 바꾼 27년…그 결정적 순간들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입력 2026.10.23 11:09
수정 2026.10.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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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 6주기…반도체 선행 개발·8인치 투자로 일본 추격

불량 제품 15만대 불태운 품질 혁신…10년 준비한 디자인 승부

시총 4000억원대서 196조원대로…다음 성장동력까지 구상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하고 있는 모습. ⓒ삼성전자

1993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 가전제품 매장. 이건희 당시 삼성 회장의 눈에 들어온 것은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삼성 제품들이었다. 국내에서의 위상은 그곳에서 통하지 않았다.


이 선대회장은 삼성 제품과 해외 경쟁사 제품을 비교하도록 했다. LA의 호텔 행사장에는 세계 주요 전자제품 78개가 삼성 제품과 나란히 전시됐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따져보기 위한 자리였다.


13년 뒤 삼성전자는 연간 매출액 기준 세계 TV 시장 1위에 올랐다. 그 사이 삼성에서는 차세대 반도체를 먼저 개발하고 불량 제품을 불태우는 한편, 디자인에 장기간 투자하는 선택들이 이어졌다.


오는 25일 별세 6주기를 맞는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경영에 남긴 변화다. 1987년 12월 회장 취임부터 2014년 경영활동을 중단하기까지 약 27년 동안 삼성은 세계 시장을 뒤쫓는 기업에서 주요 산업의 선두 기업으로 성장했다.


삼성은 기일을 이틀 앞둔 23일 경기 수원 선영에서 이 선대회장을 추모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이날 오전 아랍에미리트(UAE) 출장에서 귀국한 뒤 곧바로 선영을 찾았다. 홀로 부친의 묘소를 찾아 약 15분간 추도의 시간을 가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3일 경기도 수원 선영에서 열린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6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개발 끝나기 전에 다음 세대 착수…생산라인에도 승부수

이 선대회장이 일찌감치 가능성을 내다본 분야는 반도체였다. 그 인연은 19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내에는 반도체 기술과 생산 기반이 충분하지 않았고 세계 시장은 미국과 일본 기업들이 주도했다. 이 선대회장은 경영난에 빠진 한국반도체에 사재를 투자했다.


이병철 창업회장 시절인 1983년 삼성은 첨단 메모리반도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 선대회장은 1987년 회장 취임 후에도 반도체를 핵심 성장동력으로 육성했다.


추격의 속도를 높인 방법은 다음 세대를 먼저 준비하는 것이었다. 1990년 삼성전자는 16메가비트(Mb) D램 개발을 마무리하기도 전에 64메가 D램 개발에 착수했다. 눈앞의 제품을 완성한 뒤 다음 제품으로 넘어가는 방식으로는 격차를 좁히기 어려웠다.


삼성전자는 1992년 9월 세계 최초로 64메가 D램을 개발했다. 같은 해 세계 D램 시장에서 처음으로 1위에 올랐다.


생산설비에도 승부수를 던졌다. 삼성은 1992년 당시 일반적이던 6인치보다 큰 8인치 웨이퍼를 사용하는 16메가 D램 양산라인 구축을 결정했다. 8인치 웨이퍼는 생산성이 약 1.8배 높아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투자비와 기술적 위험도 컸다.


삼성은 1993년 6월 8인치 웨이퍼 양산라인을 준공했다. 같은 해 메모리반도체 전체 시장에서도 정상을 차지했다. 차세대 제품 개발과 생산 효율을 함께 높여 일본 업체들이 주도하던 시장을 파고들었다.

선언으로 끝나지 않은 신경영…불량 제품 15만대 불태웠다


1995년 3월 삼성전자 경북 구미사업장에서 임직원들이 전화기와 팩시밀리 등 불량 제품 약 15만대를 폐기하는 모습. ⓒ삼성전자

반도체의 성공이 삼성 전체의 경쟁력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이 선대회장은 다른 제품과 조직에도 세계 시장의 기준을 들이댔다.


1993년 그가 접한 '후쿠다 보고서'에는 삼성의 디자인 경쟁력과 조직 운영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생산 현장 영상에서는 작업자가 규격이 맞지 않는 세탁기 덮개를 칼로 깎아 조립하고 있었다.


그해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에 모인 삼성 경영진에게 이 선대회장은 전면적인 변화를 요구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


'신경영 선언'이었다. 얼마나 많이 만드느냐보다 얼마나 잘 만드느냐를 먼저 따지라는 주문이었다. 이후 두 달여 동안 해외 각지에서 연인원 1800여명의 임직원과 약 350시간에 걸쳐 회의와 강연을 이어갔다. 삼성은 불량이 발생하면 생산라인을 멈추고 원인을 해결하는 '라인 스톱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현장은 곧바로 달라지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무선전화기 불량률이 11.8%까지 치솟는 품질 문제를 겪었다. 이 선대회장은 불량 제품을 새 제품으로 교환하도록 지시했다.


1995년 3월 경북 구미사업장에 전화기와 팩시밀리 등 불량 제품 약 15만대가 모였다. 임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망치가 내려쳐졌고, 부서진 제품들은 불태워졌다. 이른바 '애니콜 화형식'이었다.


팔기 위해 만든 제품을 스스로 폐기하는 장면은 품질 우선이라는 원칙을 조직에 각인시켰다. 삼성전자는 품질 개선과 기술 개발을 바탕으로 국내 휴대전화 시장에서 모토로라를 제치고 선두에 올랐다.


인재를 키우고 선발하는 방식도 바꿨다. 1990년 지역전문가제를 도입한 뒤 1993년 대졸 여성 공채 신설과 1995년 채용 학력 제한 폐지로 인재 선발의 문을 넓혔다.

"디자인은 1.5류"…보르도 TV 앞에 있었던 10년
삼성전자가 2006년 출시한 '보르도 TV'. 와인잔을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인기를 끌며 삼성전자의 세계 TV 시장 1위 달성에 기여했다. ⓒ삼성전자

품질을 높인 다음 과제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것이었다.


이 선대회장은 1996년을 '디자인 혁명의 해'로 선언했다. 삼성전자는 디자인 인재를 양성하고 해외 연구소를 세웠다. 1997년에는 삼성전자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올림픽 공식 파트너 계약을 맺어 세계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기반을 다졌다.


2001년에는 디자인경영센터를 최고경영자 직속 조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이 선대회장은 만족하지 않았다. 2005년 4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주요 경영진을 모아놓고 애니콜을 제외한 삼성의 디자인 경쟁력을 '1.5류'라고 평가했다. 제품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순간은 평균 0.6초에 불과하다며 혁신을 주문했다.


이듬해 나온 '보르도 TV'는 그동안의 준비가 맺은 결실이었다. 와인잔을 연상시키는 외관으로 거실 공간과 어울리는 TV를 선보였다. 2006년 4월 출시된 보르도 TV는 그해 11월까지 전 세계 누적 판매량 200만대를 돌파하며 삼성전자의 세계 TV 시장 정상 등극에 힘을 보탰다.

휴대전화 정상 오른 삼성…그다음 먹거리도 준비

휴대전화에서는 새로운 경쟁자가 시장의 질서를 바꿨다. 2007년 애플의 아이폰 출시를 계기로 경쟁의 중심이 스마트폰으로 이동했다. 삼성전자는 2010년 갤럭시S를 내놓으며 본격적인 경쟁에 나섰다. 이듬해 3분기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에서 애플을 앞질렀고 2012년에는 전체 휴대전화 출하량에서도 노키아를 넘어섰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세계 선두를 향해 달려가던 시기, 삼성은 이미 그다음 성장동력을 준비하고 있었다.


2010년 5월 10일 서울 한남동 승지원에 삼성 주요 계열사 경영진이 모였다. 당시 삼성전자 부사장이던 이재용 현 회장도 참석했다.


삼성은 이 회의를 거쳐 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LED, 바이오·제약, 의료기기를 5대 신수종 사업으로 육성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2020년까지 23조3000억원을 투자해 연간 매출 약 5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사업별 성과는 엇갈렸다. 그 가운데 자동차용 전지는 삼성SDI의 주요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바이오·제약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글로벌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선대회장 취임 직전인 1987년 11월 30일 약 4000억원이던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경영활동을 중단하기 직전인 2014년 5월 9일 196조6446억원으로 커졌다. 약 27년 사이 500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연구진과 생산 현장, 해외 시장을 개척한 구성원들의 노력이 쌓인 결과였다.


이 선대회장은 2014년 5월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경영활동을 이어가지 못했고, 2020년 10월 25일 별세했다. 6년이 흐른 지금 삼성은 인공지능(AI) 반도체를 비롯한 새로운 기술 경쟁에 직면해 있다.


돌아보면 그의 주요 결정은 성과가 보장되지 않은 시점에 나왔다. 개발 중인 D램 너머의 다음 세대와 막대한 비용이 드는 새 생산라인, 당장 매출로 돌아오지 않는 디자인과 인재에 투자했다. 세계 정상에 오른 뒤에도 다음 성장동력을 찾았다. 삼성의 운명을 바꾼 선택들은 늘 현재의 성공보다 앞을 향해 있었다.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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