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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잠갔다 풀었다…총량제의 불편한 민낯 [기자수첩-금융]

손지연 기자 (nidana@dailian.co.kr)
입력 2026.10.23 07:07
수정 2026.10.23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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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 목표 제시 후 넉 달 만에 3%로 상향

실수요자 불편 커지자 집단대출까지 총량서 제외

“자율관리”라면서 목표 초과엔 페널티

법적 근거·정책 기준 모두 논란

이억원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재정경제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지난 4월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을 1.5%로 관리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목표를 지키지 못한 금융회사에는 ‘엄격한 페널티’까지 예고했다.


그런데 불과 4개월여 만인 8월 13일 목표는 3%로 두 배가 됐다. 이주비·중도금·잔금대출 등 집단대출은 금융회사별 총량목표에서 아예 100% 제외됐다.


대출을 잠갔다가 다시 푼 셈이다. 당초 정했던 1.5%는 대체 무엇을 근거로 한 숫자였을까.


금융위원회는 당시 지난해 가계대출 증가율 1.7%보다 관리 강도를 높이고 올해 경상성장률 전망치 4.9%의 절반 이하로 관리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왜 하필 1.5%인지에 대한 정량적인 산정 근거는 뚜렷하게 언급하지 않았다.


이후 목표를 3%로 높이면서 가계대출 총량이 성장률에 따라 산식처럼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할 뿐이었다.


1.5%가 현실과 맞지 않다는 사실은 몇 달 만에 드러났다.


5대 은행은 7월 말 이미 연간 가계대출 증가 목표를 넘어섰다. 일부 은행은 대출 한도를 낮추고 비대면이나 대출모집인 채널까지 막기 시작했다.


연말 ‘대출절벽’을 막겠다며 월·분기별 관리까지 도입했지만 정작 한여름부터 대출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KB국민은행은 지난 7월 정부가 허용한 주택담보대출 최대한도 6억원을 자체적으로 3억원까지 낮췄다.


이환주 국민은행장도 국정감사에서 지난해 총량목표를 위반한 은행이 국민은행뿐이었다며 올해 더 강하게 관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정부가 6억원까지 허용한다고 해도 실제 은행에서는 절반밖에 빌리지 못하게 됐다.


문제는 총량제가 이처럼 은행 영업과 소비자 자금조달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데도 법적 성격은 선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당국은 총량제를 금융회사가 스스로 목표를 세우는 ‘자율관리’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목표를 넘기면 다음 해 대출 여력을 줄인다.


금융위 스스로는 이를 ‘페널티’라고 부른다.


자율이라면서 지키지 않았다고 불이익을 주는 것은 어쩐지 자연스럽지 않다.


반대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제라면 그에 맞는 명확한 근거와 기준을 갖추는 것이 먼저다.


과거 헌법재판소 판단도 생각해볼 대목이다.


헌재는 2023년 시가 15억원 초과 아파트 주담대를 금지한 금융당국 조치를 두고, 형식은 금융행정지도였지만 은행들이 현실적으로 따르지 않기 어려운 만큼 공권력 행사라고 봤다.


다만 위헌이라고 판단하지는 않았다.


금융위에 관련 규제 권한이 있었고 향후 감독규정 개정도 예정돼 있었으며, 무엇보다 이를 따르지 않더라도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 명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적어도 ‘따르지 않아도 불이익은 없다’는 전제가 있었다.


지금 총량제는 자율관리라고 하면서도 목표를 넘긴 금융회사에 이듬해 페널티를 부여한다.


운용 방식도 모호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총량 관련 기준이 명확한 문서 하나로 전달되기보다는 당국과 수시로 협의하고 구두로 안내받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1.5%에서 3%로 상향됐을 때도 변경된 수준이 구두로 안내됐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렇게 강한 영향력을 가진 정책은 정교하게 운용되지도 못했다.


금융위는 지난 8월 총량관리 목표를 맞추는 과정에서 실수요자의 자금 애로가 발생했다고 인정했다.


결국 1.5% 목표를 3%로 높였고 이후 신축 입주단지의 이주비·중도금·잔금대출은 총량에서 100% 제외했다.


처음부터 예상하기 어려운 수요도 아니었다. 분양받은 사람에게 잔금 날짜는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입주 물량과 집단대출 수요 역시 어느 정도 미리 파악할 수 있다.


가계부채를 방치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차주의 상환능력을 따지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있고 금융회사 건전성이 우려된다면 위험에 맞춰 자본을 더 쌓게 하는 방법도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개별 금융회사가 한 해 동안 빌려줄 돈의 규모까지 사실상 통제하겠다면 적어도 숫자는 현실적이어야 하고 기준은 예측 가능해야 한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가계대출 총량관리가 “굉장히 오래된 제도”라고 했다.


하지만 오래된 제도가 꼭 잘 만든 제도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래된 정책이라면 그만큼 시행착오를 줄일 경험도 쌓였어야 한다.


은행 대출은 정부가 필요할 때마다 잠갔다 풀었다 할 수 있는 수도꼭지가 아니다. 그 끝에는 집을 사고 잔금을 치르고 계획했던 돈을 제때 마련해야 하는 금융소비자가 있다.


총량제를 계속 주요 정책수단으로 쓸 생각이라면 ‘관리 필요성’에 앞서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누가 어떤 근거로 숫자를 정하고, 그 숫자가 현실과 맞지 않을 때 생기는 혼란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손지연 기자 (nidana@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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