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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에겐 호통, 치료엔 진심…박규주 교수가 말하는 'AI시대의 명의' [명의열전]

김효경 기자 (hyogg33@dailian.co.kr)
입력 2026.10.22 13:24
수정 2026.10.22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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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주 서울대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 인터뷰

30년 넘게 수술대 지키며 2만명 이상 환자 치료

호통과 농담 속에 담긴 환자 향한 진심과 소신

“의학은 주관식…환자의 삶 이해하는 게 중요”




환자를 향한 사'명'감으로 의료 현장을 지켜온 '의'료인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전'달하겠습니다. 각 분야에서 환자 치료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분을 제보해주시면 바로 찾아뵙겠습니다.



박규주 서울대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가 지난 2일 데일리안과 서울대병원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인공지능(AI) 시대에 명의가 대체 뭘까요?”


명의의 조건을 물으려던 기자에게 오히려 질문이 돌아왔다. 30년 넘게 수술대 앞을 지키며 2만명이 넘는 환자를 치료한 박규주 서울대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명쾌한 답을 내놓는 대신 명의의 의미부터 되짚었다.


박 교수는 지난해 방송 토크쇼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환자에게 때로는 호통을 치고 농담도 건네는 '친근한 명의'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최근 데일리안과의 인터뷰에서 '좋은 의사의 조건'을 이야기할 때 만큼은 방송에서의 거침없는 입담은 잠시 접어두고 '진지 모드'로 전환했다. 의학 지식과 치료법이 갈수록 표준화되는 시대에 과연 무엇이 좋은 의사를 만드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것이다.


박 교수는 “예전에는 공부를 많이 하고 머릿속에 의학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뛰어난 의사였지만, 지금은 AI가 필요한 정보를 모두 찾아준다”며 “의학 지식과 치료법이 표준화되는 시대에 과연 무엇이 좋은 의사를 만드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술대에서 쌓은 30년의 경험…“의학은 주관식”

박 교수는 지난 30년을 의학이 빠르게 발전한 시기로 기억한다. 새로운 항암제가 등장하고 복강경·로봇수술이 확산하면서 과거에는 치료가 어려웠던 환자들에게도 새로운 선택지가 생겼다. 다만 의료기술의 발전이 모든 환자에게 똑같은 치료 효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지금은 진료지침과 빅데이터를 통해 치료법이 표준화되고 있지만, 같은 질환이라도 환자마다 상태와 치료 반응이 다르다”며 “의학은 과학에 기반을 둔 예술이다. 모든 환자를 하나의 틀에 넣고 정답을 고르는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판단의 바탕에는 오랜 임상 경험이 있다. 지금까지 집도한 환자는 2만명이 넘고, 이 가운데 암 환자만 1만명 이상이다. 박 교수는 새로운 환자를 진료할 때마다 논문과 통계뿐 아니라 과거 직접 치료했던 환자들의 사례를 함께 떠올린다. 같은 병기라도 수술에서 확인되는 암의 상태와 주변 조직의 특성 등에 따라 치료 경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인생이 주관식이듯 의학도 주관식”이라며 “지금은 모든 것이 표준화됐지만 환자마다 예외적인 부분이 있는 만큼 그 차이를 찾아내고 환자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지금도 수술이 끝나면 환자의 상태를 직접 그림으로 남긴다. 진단명과 병기만으로는 수술 당시 암의 진행 범위나 주변 조직의 상태를 충분히 전달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기록한 그림은 이후 외래에서 환자의 경과를 확인하고 치료 방향을 검토하는 데 활용한다. 환자에게 수술 내용을 설명할 때도 유용한 자료가 된다.


호통 속에 담긴 진심…“환자의 삶까지 살펴야”
지난해 4월 서울대병원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암 환자에게 호통치는 이유는?’ 영상에서 박규주 교수가 제때 검사를 받지 않아 병을 키운 환자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환자를 향한 걱정이 담긴 ‘무언의 호통’이다. 서울대병원 유튜브 캡처.

환자들에게 때로는 호통도 마다하지 않는 그의 진료 방식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건강관리에 소홀한 환자에게는 쓴소리를 건네지만, 치료 방향을 결정할 때는 환자가 처한 상황과 앞으로 원하는 삶을 세심하게 살핀다. 같은 질환을 앓더라도 환자마다 치료를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의사에게 20%는 낮은 확률일 수 있지만 환자에게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며 “야구에서 3할 타자가 열 번 중 일곱 번 실패한다고 타석에 세우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중요한 것은 단순한 확률보다 환자의 상태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기억하는 환자 중에는 다른 병원에서 치료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재발암 환자가 있다.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묻자 환자는 자녀가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만 살고 싶다고 답했다. 박 교수는 환자의 상태와 수술 가능성을 검토한 뒤 치료를 이어갔다. 환자는 이후 네 차례 수술을 받으며 약 8년을 더 살았고, 자녀가 대학에 입학해 졸업하고 취업하는 모습까지 지켜볼 수 있었다.


박 교수는 “의학적인 확률만 보면 치료를 결정하기 쉽지 않은 환자였지만, 그 환자에게는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며 “환자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히 몇 년을 더 사느냐가 아니라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라고 회상했다.


다만 그는 치료를 이어가는 것만큼이나 그 과정에서 환자와 가족이 감당해야 할 부담도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치료 효과와 부작용, 환자의 건강 상태뿐 아니라 본인의 의사와 가족의 상황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중요한 것은 단순히 생존기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이해하는 것”이라며 “의사는 환자의 입장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치료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년 뒤 정년 앞둔 외과의사…“경험과 공감 이어져야”
박규주 서울대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가 지난 2일 데일리안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환자 상태와 수술 기록을 꼼꼼히 정리한 진료노트를 펼쳐 보이고 있다. 수많은 수술을 집도한 베테랑 의사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긴 기록이다. ⓒ서울대병원

박 교수의 현재 고민은 후배 의료진의 양성이다.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 등 수련환경이 변화하는 만큼 젊은 의사들이 충분한 수술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교육체계도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전공의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교육과 진료체계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며 “의사 수를 늘리는 것뿐 아니라 충분한 임상 경험을 쌓고 어려운 수술을 담당할 의료진을 지속적으로 양성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숙련된 의료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고난도 수술에 대한 보상체계도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발암이나 여러 장기가 얽힌 복잡한 수술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고 위험 부담도 크지만, 그에 따른 보상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어려운 재발암 수술 한 건을 할 시간이면 다른 수술을 두세 건 할 수 있는데 보상은 충분하지 않다”며 “이런 구조에서 누가 위험하고 어려운 수술을 맡으려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AI의 확산도 의학교육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과거에는 풍부한 의학 지식이 뛰어난 의사의 중요한 조건이었다면, 이제는 AI를 통해 누구나 다양한 의료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정보를 암기하는 것보다 정확성을 판단하고 개별 환자에게 적용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예전에는 공부를 많이 하고 의학 지식을 풍부하게 갖춘 사람이 뛰어난 의사였지만, 이제는 AI가 필요한 정보를 순식간에 찾아준다”며 “AI가 알려주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과 특정 환자에게 적절한지 판단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환자가 AI가 추천한 치료법을 요구했는데 의사가 다른 치료를 선택해 결과가 좋지 않다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AI가 발전하면 의사의 일이 편해질 것 같지만 오히려 판단과 책임을 둘러싼 문제가 더 복잡해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정년까지 남은 시간은 약 2년. 30년 넘게 수술대 앞을 지켜온 박 교수는 퇴임 이후에도 변화하는 의료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후배들이 꾸준히 양성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가 좋은 의사의 조건으로 끝까지 강조한 것은 경험과 지식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환자에 대한 공감이다.


그는 “슈바이처가 왜 명의로 기억되겠느냐. 환자에게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동정과 공감은 다르다. 의사는 환자를 설득하기에 앞서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의학 지식과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환자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중요하다”며 “좋은 의사에게는 풍부한 경험과 판단력뿐 아니라 환자의 상황을 헤아리고 공감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효경 기자 (hyogg33@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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