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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명창 하나가 열 사람의 소리 명창 만든다”…동료들이 기억한 평론가 강헌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10.21 17:05
수정 2026.10.2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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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 윤일상 등 동료들 애도 잇따라

“귀 명창 하나가 열 사람의 소리 명창을 만든다.”


싱어송라이터 정태춘은 20일 별세한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을 이 옛말로 추모했다. 그는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더 좋은 소리를 만들어 낸다”며 “강헌 선생은 대중음악을 더 높은 안목으로 만들고 들을 수 있도록 오랫동안 대중과 예술인들을 독려했고, 대중음악의 담론을 지적인 영역까지 연장시켰다”고 적었다. 이어 “그이가 졸지에 우리 곁을 떠났다. 안타까운 일”이라고 애도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왼쪽)과 대중음악평론가 강헌 ⓒ뉴시스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 비평을 이끈 강헌이 향년 64세로 세상을 떠나자, 고인과 인연을 맺었던 음악·평론·언론계 인사들의 추모 글이 SNS에 잇따르고 있다.


가수 정태춘 ⓒ뉴시스

대중음악 칼럼니스트 최규성은 SNS를 통해 “새벽에 갑작스런 부고 문자를 받고 깨어났다”며 한국일보 차장 시절 좌담회에 고인을 추천하며 인연을 맺은 일화를 꺼냈다. 그는 2001년 무렵 ‘추억의 LP여행’ 칼럼을 시작한 자신에게 고인이 “차장님, 이 바닥에 먹을 거 별로 없어요. 너무 깊게 들어가지 마세요”라고 조언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는 대중가요를 거시적으로, 나는 음반과 자료를 중심으로 미시적으로 풀었지만 음악을 사회와 역사의 관점에서 보려는 태도는 통했다”며 “진짜 말 잘하는 달변가였고 문장이 참 유려했다”고 적었다.


고인이 주도한 잡지 ‘리뷰’와의 인연을 떠올린 이도 있었다. 원종우 작가는 “30년 전 처음 만나 그분이 주도하던 잡지 ‘리뷰’에 기고한 것을 시작으로” 이어진 관계를 돌아보며 “64세, 너무 이르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감사하다는 말씀 제대로 못 드려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작곡가 윤일상은 “평생 예술을 향해 품으셨던 깊은 애정과 열정, 그리고 남기신 수많은 이야기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며 “사랑하셨던 음악과 더 아름다운 예술 속에서 온전한 평안을 누리시길 바란다”고 추모했다. 영화평론가 정지욱은 “늦은 밤 심사를 마치고 귀가하다 비보를 전달받았다”며 먼저 세상을 떠난 전운혁, 황정윤을 언급하고 “그곳에선 모두 다 함께 또 행복하시길”이라고 적었다.


작곡가 윤일상 ⓒ뉴시스

정부 차원의 애도도 나왔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1일 SNS를 통해 “대중음악 평론가이자 교육가로서 오랜 시간 우리 문화예술의 지평을 넓히고 후학을 길러내셨다”고 고인을 기렸다.


고인은 1990년대 서태지와 신해철을 비롯한 대중음악 평론으로 이름을 알렸고, 영화와 음악극, 문화행정, 교육, 명리학을 넘나들며 활동했다. 1991년 가수 김현식의 음악 세계를 분석한 ‘김현식론: 통기타에서 블루노트까지’를 발표하며 평론가로 이름을 알렸다. 임진모 평론가와 함께 활동하며 ‘가요는 강헌, 팝은 임진모’라는 평가를 받았고, 1994년 문화 계간지 ‘리뷰’ 창간호에서는 서태지와 록 음악, 립싱크, 샘플링, 방송계의 구조적 문제 등을 주제로 대담했다.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와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 제5대 회장을 지냈으며, 2025년 12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에 임명됐다. 별세 직전까지 조선일보에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칼럼을 연재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3일 오전 7시이며, 장지는 용인 평온의 숲이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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