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떠난 소아응급실, 의사들도 떠난다…응급의료 현장 '초비상'
입력 2026.10.20 14:52
수정 2026.10.20 15:00
소아응급센터 압수수색 후 소아응급 전문의 3명 사직서 제출
센터 지정 반납 논의까지…중증환자 진료 공백 우려 커져
“떠난 의사 대신할 사람도 없어…소아응급센터 존립마저 위태”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경찰의 아주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소아응급센터) 압수수색 파장이 응급의료 현장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이번 사태 이후 의료진의 이탈 움직임이 나타나고 소아응급센터 지정 반납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가뜩이나 인력난을 겪고 있는 소아응급의료체계가 더욱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의료계는 추가적인 인력 이탈을 막기 위해 이번 사태에 대한 철저한 책임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20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은 아주대병원 소아응급센터 소속 전문의 1명이 최근 사직서를 제출했고, 다른 소아응급센터에서도 전문의 2명이 사직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소아응급센터 지정 반납 움직임도 일고 있다.
앞서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달 30일 아주대병원 소아응급센터를 압수수색했다. 지난 7월 병원에서 청색증으로 치료받던 생후 4개월 영아가 숨진 사건의 의료과실 여부를 수사하기 위해서였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진료에 차질이 있었는지를 두고는 경찰과 의료계의 주장이 엇갈린다. 이지숙 아주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장은 지난 15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당시 응급실에서는 생후 6개월의 영아가 경련을 일으켜 응급처치를 받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센터장은 “아이가 간신히 안정화되고 난 다음에 경찰이 와서 응급실을 다니기 시작했다”며 경찰이 약 1시간 30분 동안 의료진의 컴퓨터를 확인하고, 간호파트장도 별도 공간에서 약 1시간 동안 자료 요청 등에 대응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환아 사망 당시에도 경찰의 현장 조사로 진료에 차질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센터장은 “모든 처치 행위가 끝나지도 않은 소생실을 카메라로 사진 촬영하면서 현장에 있던 간호사들과 의사들을 범죄자 취급했다”며 당시 다른 환자들의 진료가 약 40분간 지연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경찰은 증거 위·변조 우려가 있어 강제수사가 불가피했으며, 압수수색은 17분 만에 종료돼 진료를 방해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김택우 대한의사협회장이 지난 15일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소아응급센터 압수수색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의료진의 사직을 넘어 소아응급센터 운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한소아응급의학회에 따르면 소아응급센터 2~3곳에서 지정 반납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증환자 진료 과정에서 발생한 사망 사건이 형사수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부담이 커지면서 의료진의 이탈은 물론 소아응급의료체계 전반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5월 기준 전국의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는 14곳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아주대병원은 올해 상반기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체계(KTAS) 1·2등급에 해당하는 중증환자 비율이 30.4%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이처럼 중증 소아환자 진료를 담당하는 의료기관에서 인력 이탈이 이어질 경우 가뜩이나 부족한 소아응급의료 기반이 더욱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의 여파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시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신생아 4명이 숨진 사건으로 담당 교수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구속되면서 의료진의 형사책임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이후 대법원에서 해당 의료진에 대한 무죄 판단이 내려졌지만,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2017년 112.1%에서 2023년 25.5%로 떨어졌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소아응급센터는 이미 7~8년 전부터 기피 현상이 이어져 왔다”며 “의료진이 그만두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빈자리를 채울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채용 공고라도 냈지만 지금은 지원자가 없어 공고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소아청소년과와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모두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존 의료진마저 떠나면 대체할 인력이 없다”며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는 소아응급센터가 인력 부족으로 문을 닫게 된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압수수색이 소아응급실을 넘어 응급의료 현장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회장은 “앞으로 이 같은 압수수색이 일상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의료계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대한의사협회에도 대응을 요청한 상태로, 향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