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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의 4년㊤] '절박하다'던 취임 일성…4년 만에 답 내놨다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입력 2026.10.22 06:00
수정 2026.10.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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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재용, 95번 법정 출석…4년 만에 사법·상속 짐 벗었다

테슬라 23조·엔비디아 GPU 5만장…빅딜로 이어진 'JY 네트워크'

취임 첫 현장 광주, 4년 뒤 400조 반도체 투자 후보지로 부상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2022년 10월 27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회장으로서의 첫날을 법정에서 시작했다. 이사회가 회장 승진을 의결한 그날도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의혹 재판은 예정대로 열렸다. 취임식은 없었다. 이 회장은 사내게시판에 '미래를 위한 도전'이라는 글을 올리는 것으로 취임사를 대신했다.


글에는 위기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최근 글로벌 시장과 국내외 사업장들을 두루 살펴봤다. 절박하다." 이 회장은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새로운 분야를 선도하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진단했다. 그러면서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며 "제가 그 앞에 서겠다"고 약속했다.


그로부터 4년. 23일 선대회장 6주기 추도식에 이어 27일 취임 4주년을 맞는 이 회장은 그 약속에 하나씩 답을 내놓고 있다.

4년10개월 재판 끝 '전부 무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022년 12월 6일(현지 시각) 아랍에미리트(UAE)에 위치한 바라카 원자력 발전소 건설 현장에 방문해 건설 현장을 둘러보고 임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삼성전자

회장으로서의 첫 3년은 법정과 경영을 오가는 시간이었다. 부당합병 사건 1심에서만 106차례 공판이 열렸고 이 회장은 해외 출장 등 법원 허가를 받은 11번을 빼고 95번 법정에 섰다. 많을 때는 일주일에 두 번 법원을 찾았다.


그 사이에도 현장 경영은 이어졌다. 2022년 12월에는 회장 취임 후 첫 해외 사업장으로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건설현장을 찾았다. 2023년 추석 연휴에는 헬기를 타고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공사현장을 둘러봤다.


취임 1주년이던 2023년 10월 27일에도 그는 오전 9시41분 서울중앙지법 서관 앞에 섰다. 소회를 묻는 취재진에게 그는 말없이 법정으로 들어갔다. 그해 11월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그는 "부디 모든 역량을 온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결론은 '전부 무죄'였다. 2024년 2월 1심과 2025년 2월 2심에 이어 2025년 7월 17일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했다. 재판에 넘겨진 지 4년10개월 만이었다.


짐은 하나 더 있었다.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 유산에 매겨진 12조원 규모 상속세다. 2024년 한 해 정부가 거둔 상속세 전체보다 많은 액수다. 삼성 일가는 5년간 6차례 나눠 낸 끝에 올해 4월 완납했다. 이 회장은 자기 몫인 2조9000억원을 계열사 주식 한 주 팔지 않고 배당금과 신용대출로 마련했다.

깐부치킨에서 타임스스퀘어까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0월 3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 지포스 게이머 페스티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사법 족쇄가 풀리자 이 회장의 경영 보폭은 눈에 띄게 넓어졌다. 무죄 확정 이후 100여일 사이 테슬라 애플 오픈AI 엔비디아와의 협력 소식이 잇따랐다.


첫 신호는 열흘 남짓 만에 왔다. 2025년 7월 28일 삼성전자는 테슬라와 22조8000억원 규모 파운드리 공급 계약을 맺었다. 삼성 파운드리 단일 수주로는 역대 최대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직접 SNS에 "실제 파트너십을 논의하기 위해 삼성 회장 등 고위 경영진과 화상 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8월에는 애플이 미국 텍사스 오스틴 삼성 공장에서 차세대 칩을 만들기로 했고 10월에는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서초사옥을 찾아 AI 인프라 협력 의향서에 서명했다.


정점은 서울 삼성동의 한 치킨집이었다. 10월 30일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마주 앉은 '깐부 회동'은 이 회장의 4년을 상징하는 장면이 됐다. 바로 다음 날 엔비디아는 삼성전자에 그래픽처리장치(GPU) 5만장 이상을 공급해 반도체 AI 팩토리를 함께 짓겠다고 발표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도 이어졌다. 이 회장은 황 CEO의 밴 플리트상 수상 축사에서 약 25년 전 CES에서 처음 만난 인연과 20년 전 같은 상을 받은 부친 이야기를 함께 꺼냈다. 삼성전자는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 축하 영상을 띄웠다.


해외의 평가도 달라졌다. 미국 경제지 포춘이 선정하는 '비즈니스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서 이 회장은 첫 발표인 2024년 85위에서 지난해 47위로 뛰어올랐다. 2년 연속 국내 그룹 총수 가운데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한때 경쟁에서 밀렸던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반격에 성공하며 '세상에 없는 기술'이라는 취임 일성도 결과로 돌아왔다.

위기엔 '사즉생', 노조엔 '한 몸 한 가족'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5월 16일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 비즈니스센터로 귀국하며 취재진 앞에서 총파업이 예고된 노사 현안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뉴시스

위기 때도 호황 때도 메시지는 같았다. 지난해 3월 9년 만에 열린 전 계열사 임원 세미나에서 이 회장은 영상 메시지로 "삼성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며 '사즉생'을 주문했다.


열 달 뒤 삼성전자의 실적은 반등했다.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20조원을 넘어서며 오랜 부진에서 벗어났다. 그런데도 올해 1월 임원들에게 보낸 메시지는 더 매서웠다. "자만할 때가 아니다. 지금이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부친 이건희 선대회장의 '샌드위치 위기론'도 19년 만에 다시 꺼내 들었다.


노사 관계는 4년 사이 가장 크게 달라진 영역이다. 2024년 창사 첫 파업에 이어 올해는 성과급 갈등이 총파업 예고로 번졌다.


총수가 직접 나섰다. 총파업을 닷새 앞둔 5월 16일 해외 출장 일정을 바꿔 귀국한 이 회장은 김포공항에서 세 차례 고개를 숙였다. 회장 취임 후 첫 공개 사과였다. "노동조합 여러분 삼성 가족 여러분 우리는 한 몸 한 가족입니다." 그러면서 "매서운 비바람은 제가 맞고 다 제 탓으로 돌리겠습니다"라고 했다.


결국 노사는 총파업을 1시간30분 앞둔 5월 20일 밤 잠정합의에 서명했다. 합의안이 조합원 투표를 통과하면서 삼성 노사는 공존의 틀을 갖췄다.

출발점 광주, 다음 도약의 후보지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이 지난 2022년 10월 28일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삼성전자 협력회사 '디케이'에서 생산라인을 둘러보며 김보곤 디케이 대표(왼쪽)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삼성전자

이 회장의 4년은 광주에서 시작해 다시 광주로 이어진다.


취임 다음 날인 2022년 10월 28일 이 회장은 회장으로서 첫 현장 행보로 광주를 찾아 1994년부터 삼성전자와 거래해 온 가전 부품 협력사 디케이를 방문했다. 이 회장은 생산 라인을 둘러보며 "협력회사가 잘 돼야 우리 회사도 잘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올해 6월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 이 회장은 "기흥 화성 평택에 이어 용인 국가산단의 투자 일정이 많이 빨라졌고 새로운 단지를 준비해야 할 시점도 앞당겨졌다"며 광주를 신규 반도체 공장 후보지로 제시했다. 삼성은 광주에 400조원 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장기 구상을 내놨다.


다만 전제를 분명히 했다. 이 회장은 "여러 지역 중 전력 용수 인력 확보 그리고 여러 인프라 등 많은 인센티브 지원이 기대되는 광주를 후보지로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건이 갖춰져야 실제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4년을 숨 가쁘게 달려온 이 회장에게 남은 과제는 이사회 복귀다. 그는 2019년 10월 등기이사 임기를 마친 뒤 미등기임원으로 삼성을 이끌어 왔다. 사법과 상속 문제를 모두 정리한 만큼 이사회 복귀 시점에 재계의 관심이 모인다.


이 회장은 이번에도 별도 행사나 메시지 없이 조용히 취임 기념일을 맞을 것으로 알려졌다. 4년 전 "제가 그 앞에 서겠다"던 약속에 대한 답은 숫자가 대신한다. 기념일 이틀 뒤인 29일 삼성전자가 3분기 확정 실적을 내놓는다. 잠정 영업이익은 107조4000억원이다.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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