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산 [조남대의 은퇴일기(110)]
입력 2026.10.20 14:03
수정 2026.10.20 14:03
붉고 푸른 산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유영국 화백의 그림을 마주했다.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는 회고전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가 열리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였다. 기대와는 달랐다. 산의 바위와 나무, 계곡이 어우러진 자연풍경을 떠올렸지만,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예리한 선과 강렬한 원색의 면으로 이루어진 추상의 산이었다.
유영국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앞에 선 작가 ⓒ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라는 화가가 남긴 말 앞에서 한동안 발길이 머물렀다. 단순하면서도 힘찬 산의 형상은 마음 깊이 잠들어 있던 기억을 흔들어 깨우는 듯했다. 낯선 그림 앞에 서 있었지만,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풍경을 마주한 것처럼 가슴 한편이 뭉클해졌다. 그는 왜 평생 산을 그렸을까. 그림을 바라보는 동안 그 물음은 나에게로 향했다. 수십 년을 살아오며 마음속에 나만의 산 하나를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전시장을 따라 걸으며 지나온 세월과 환갑이 넘어 시작한 수필 쓰기를 되돌아보았다.
유영국은 도쿄 문화학원 재학 시절 독립미술협회전에 출품하며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젊은 시절 일본에서 기하학적 추상을 접했지만, 그림은 서구의 조형 양식에 머물지 않았다. 해방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계를 위해 잠시 붓을 놓았어도 마음속 산만은 놓지 않았던 듯하다. 전시장에 펼쳐진 산은 실제 풍경을 그대로 옮긴 모습이 아니었다. 단순한 선과면, 강렬한 색채가 겹쳐지며 산은 살아 있는 생명처럼 다가왔다. 붉은 산 앞에서는 뜨거운 의지가 느껴졌고, 푸른 능선 앞에서는 깊은 고요가 마음속으로 번졌다. 오래 바라보고 있자 그것은 눈앞의 산이 아니라 화가가 견뎌온 세월과 끝내 지켜낸 내면의 풍경처럼 보였다. ‘산은 내 안에 있다’는 말이 비로소 가슴에 와닿았다.
강렬하고 뜨거웠던 유영국의 초기 작품 ⓒ
초기 작품들은 뜨겁고 강렬했다. 캔버스 한가운데에는 붉은 삼각형이 찌를 듯 솟아 있었고, 곁으로 검은 직선이 서늘하게 뻗어 있었다. 서로 물러서지 않으려는 듯 맞부딪친 원색의 면에서는 젊음의 긴장과 거친 힘이 느껴졌다. 붉은색 앞에서 나의 이삼십 대가 떠올랐다. 가난하고 고단한 시절을 지나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내 마음도 저 삼각형처럼 날이 서 있었다. 세상에 내 존재를 증명하고 싶었고, 승진과 평가에 마음을 빼앗겼다. 경쟁에서 뒤처질까 조바심을 내며 앞만 보고 달렸다.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설익은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무모한 열정이 있었기에 어려운 시절을 버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작품을 관람하는 시민들 ⓒ
다음 전시실로 들어서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격렬하던 색과 선은 수평과 수직으로 자리를 잡았고, 화면에는 깊은 군청색과 짙은 초록빛이 넓게 펼쳐졌다. 화가는 세부를 덜어내고 산의 골격만 남겼다. 짙은 면과 굵은 선으로 이루어진 산은 아무 말 없이 화면의 중심을 지키고 있었다. 유영국은 심장박동기를 달고 여덟 차례의 큰 수술과 거듭되는 입원 생활을 겪으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화단의 파벌과 명리를 멀리한 채 조수도 두지 않고 일곱 평 남짓한 화실에서 혼자 하루 열 시간씩 작업했다. 유행을 좇지 않고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걸으며 조금씩 자기 화풍을 완성해 갔다. 화폭에 남은 단단한 선들은 그가 견뎌 온 시간을 말해 주는 듯했다.
선은 수평으로, 색은 군청색과 초록으로 바뀌는 중기 작품 ⓒ
푸른 산을 바라보며 삼십여 년 간 직장에 몸담았던 중년의 시간이 떠올랐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채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음 졸이면서도 맡은 일은 묵묵히 감당해야 했다. 세월을 지나면서 불필요한 감정을 조금씩 덜어내는 법을 배웠다. 젊은 날의 조급함은 인내로 가라앉았고, 쉽게 흔들리던 마음도 차츰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말없이 견딘 시간은 훗날 글을 쓰는 바탕이 되었다. 오랜 직장생활에서 배운 절제와 인내 덕분에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서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유영국이 산의 세부를 덜어내고 단단한 골격을 남겼듯, 나도 글을 쓰며 복잡한 기억 속에서 꼭 필요한 장면과 감정을 가려내고 싶었다.
완만한 곡선과 따뜻한 색으로 바뀐 후기 작품 ⓒ
전시의 막바지에서 후기작품과 마주했다. 젊은 날의 날카로운 삼각 봉우리는 완만한 능선으로 바뀌어 있었고, 차가운 푸른빛 사이로 노란 면이 따뜻하게 스며들었다. 초기 작품에서 느꼈던 긴장은 한결 누그러지고, 색과 선에는 오랜 세월을 건너온 사람의 여유가 배어 있었다. 유영국 화백은 일찍이 “나는 60세까지는 기초를 닦고, 그 이후에 비로소 내 진짜 그림을 그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년에는 죽을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작업했으며, 평생 그림 그리기를 참 잘했다고 회고했다.
환갑을 넘겨 직장을 떠나 본격적으로 수필을 쓰기 시작한 나에게 그의 말은 남다르게 다가왔다. 사람들은 흔히 은퇴를 한 시대의 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유영국에게 예순은 자신의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나이였다. 나도 오랫동안 공직에 몸담으며 사람과 세상을 배웠다. 기쁨과 슬픔을 겪었고, 때로는 영광을 누렸으며 상처를 입기도 했다. 당시에는 그저 지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돌아보니 어느 것 하나 글감이 아닌 것이 없다. 젊은 날의 날카로운 모서리가 세월에 닳아 조금은 둥글어진 지금, 비로소 다른 사람의 기쁨과 아픔도 함께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나 역시 삶의 마지막 날 원고지를 덮으며 “마음속에 품고 살아온 산을 글로 쓰기를 참 잘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유영국 작품 앞에 선 작가 ⓒ
미술관을 나서자 덕수궁 돌담길을 스치는 바람과 도심의 소음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들어갈 때와 마음가짐이 같지 않았다. 유영국이 정해진 시간에 화실로 들어가 날마다 캔버스를 채웠듯, 나도 흔들림 없이 꾸준히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젊은 날에는 앞만 보고 달렸고, 중년에는 가족을 부양하고 직장에 몸담으며 여러 고비를 건넜다. 이제는 시간을 돌아보며 무엇을 글에 남기고 무엇을 덜어낼지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펼쳤다. 빈 화면을 오래 바라보다 가슴 깊이 묻어 두었던 한 장면을 끌어올려 첫 문장을 힘주어 새겼다. 이제 나도 내 안의 산을 한 줄씩 써 내려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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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대 작가 ndcho5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