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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 출품하면 매국노? …과녁 잃은 분노, 엇나간 보이콧 불똥 [이슈]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10.19 15:02
수정 2026.10.1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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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기획사 '아시안 팝' 부문 미출품속 아이브·키키·박효신 등 출품

출품은 아티스트·소속사의 자율적 판단…비판은 제도 향해야

미국 그래미 어워즈의 ‘아시안 팝’ 부문 신설에 맞선 케이팝 업계의 보이콧이 엉뚱한 곳으로 불똥을 튀기고 있다. 해당 부문에 작품을 낸 일부 케이팝 아티스트와 소속사를 향해 팬덤 일각의 비판이 이어지면서다. 시상식 제도를 겨냥했던 문제 제기가 아티스트를 향한 손가락질로 번지는 모양새다.


그래미 어워즈를 주관하는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는 지난 6월 16일(현지시간) 내년 2월 열리는 제69회 시상식부터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등 5개 부문을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하나 이상의 아시아 언어를 유의미하게 사용한 곡을 대상으로 케이팝·제이팝·씨팝 등을 아우르는 부문이다. 아카데미는 아시안 팝의 커진 영향력을 인정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음악계에서는 케이팝이 이미 주류 시장에 들어선 상황에서 본상 대신 별도의 칸을 마련해 구색을 맞추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잇따랐다.


그룹 방탄소년단 ⓒ빅히트뮤직

반발의 신호탄은 방탄소년단(BTS)이 쏘아 올렸다. 방탄소년단은 7월 29일 멤버들의 SNS를 통해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며 출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3월 발매한 정규 5집 ‘아리랑’으로 해당 부문의 유력 수상 후보로 꼽히던 터라 파장이 컸다.


아카데미는 8월 부문 개편 가능성을 내비치며 한발 물러서는 듯했지만, 10월 1일 끝내 부문 유지를 공식화했다. 하비 메이슨 주니어 레코딩 아카데미 CEO는 아시아 음악계 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은 결과 부문 신설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더 컸다며 “음악 산업 전반을 위한 올바른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이튿날 JYP엔터테인먼트는 스트레이 키즈 역시 출품하지 않았다고 확인했다. 지난 15일에는 그래미 분석 사이트 ‘더 그래미 구루’를 통해 하이브·SM·JYP·YG 등 4대 기획사 소속 아티스트 전원이 해당 부문에 출품하지 않은 사실이 알려졌다. 아카데미가 12일 후보 선정을 위한 1차 투표에 들어가면서 출품작의 윤곽이 드러난 결과다.


반면 18일 연합뉴스 취재에 따르면 이 부문에 출품한 케이팝 가수는 아이브(‘뱅뱅’), 키키(‘404 (뉴 에라)’), 피프티피프티(‘스타스트럭’), 박효신(‘AE’) 등 네 팀이다. 출품 사실이 알려지자 팬덤 일각에서는 차별 논란이 제기된 부문에 출품하는 것이 맞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수상 기회를 잡는 것 역시 아티스트의 현실적 선택이라는 반론도 맞서고 있다.


그룹 아이브 ⓒ스타쉽 엔터테인먼트

그러나 출품 여부는 애초에 업계 공동 결의로 정해진 사안이 아니다. 보이콧의 출발점인 방탄소년단 측부터 선을 그었다. 하이브는 방탄소년단의 결정이 회사 차원의 보이콧은 아니라며, 멀티 레이블 체제에 따라 다른 소속 아티스트의 출품 여부는 각자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업계의 대응 방식도 그래미 투표에는 참여하되 출품만 하지 않는 등 제각각이었다. 그룹 에이티즈의 리더 홍중은 방탄소년단의 행보에 공감한다면서도 스스로 더 고민해 보고 싶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시상식 출품은 아티스트와 소속사가 커리어의 방향성과 시장 전략에 따라 자율적으로 판단할 문제다. 세계 무대에서 이미 입지를 다진 팀과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팀에게 그래미 후보 지명이 갖는 무게는 같을 수 없다. 보이콧은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이 내린 선택이고, 출품 역시 각자의 처지에서 내린 선택이다. 어느 한쪽만을 정답으로 규정할 근거는 없다.


무엇보다 비판의 과녁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방탄소년단의 보이콧이 던진 질문은 음악을 지역과 언어로 나누는 것이 정당한가였다. 화살이 향해야 할 곳은 부문을 설계하고 반대 여론에도 유지를 결정한 레코딩 아카데미다. 출품한 아티스트를 배신자로 몰아세우는 순간, 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는 케이팝 내부의 편 가르기로 변질된다. 이 경우 가장 손쉽게 논란에서 빠져나가는 쪽은 오히려 그래미다.


연대는 자발적일 때 힘을 갖는다. 특정 시상식에 대한 비판 여론이나 집단적 움직임이 아티스트 개인의 선택을 비난하고 제한하는 근거로 쓰인다면, 보이콧은 스스로 지키려던 가치마저 훼손하게 된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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